스탕달 <적과 흑>을 읽고...
The Red and The Black...! 무엇을 The Red라 하고, 무엇을 The Black이라 할까?
<1830년대의 연대기>라는 부제가 책의 첫 페이지 <적과 흑> 제목 바로 아래에 적혀있다. 즉, 프랑스의 1814년 나폴레옹의 통치가 몰락하고, 왕정 복고가 되어가는 1830년대의 시대적 배경임을 미리 독자에게 전한다. 그렇다면, 그 당시, 상류층 귀족신분의 기득권 회복 후, 곤고히 해 가던 시기라고 볼 때, 소위 흙수저로 태어나 신분상승의 염원을 이루어 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었을까? 그나마, 나폴레옹의 통치하에서는 전쟁에 참전하여 혁혁한 공을 세우기라도 하면 되었을텐데 말이다. 그런 금수저의 대표적인 색깔인 적(Red)과 흑(Black)은 바로 당시 권력의 두 축을 상징하는 색이라 하겠다. 전자가 당시 프랑스의 고위 권력이나 부를 나타냈다면, 후자는 바로 가톨릭 성직자의 의복을 뜻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의 제목으로봐서는 그런 권력을 갖고 있는 집단 혹은 무리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다, 흙수저로 태어난 잘생기고 영민한 주인공 쥘리앵은 바로 적(Red)의 세상도, 또한 흑(Black)의 세상도 같이 경험한다. 그리고 적(Red)의 세상에서는 레날 부인과의 내연관계와 라 몰 양과의 연인관계가 그토록 갈망한 신분상승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또한 흑(Black)의 세상을 통해 적(Red)의 세상으로 쉽게 발을 들여놓을 수 있기도 했다. 물론, 작가 스탕달은 적과 흑의 세상에 깔려있는 위선, 거짓, 차별, 권태, 야욕 등을 이야기의 중간중간에 가미하여 상류사회의 냄새나는 역겨움을 고발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평민 출신 청년 쥘리앵으로부터는 높은 지위로 가기 위한 극도의 계산된 반응, 끊임없는 욕망, 열정 등을 보여주기도 한다.
인간이 살아 온 어느시대를 막론하고, 우리가 쉽게 근접하지 못한 상류사회의 이야기는 이미 많은 드라마, 영화나 소설의 소재가 되어 왔다. 게다가, 그 상류사회에 들어가 막강한 지위와 권력을 누리고 싶어하는 야심에 찬 평민 출신의 청년이라는 소재는 풍부한 이야기꺼리를 만들어 내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한번 상상을 펴서, <적과 흑>의 등장인물을 현실의 재벌가로 적용시켜나 볼까? 쥘리앵을 어느 노동자의 똑똑하고 잘 생긴 아들로 보고, 레날 가(家)를 신세계 재벌가 정도로, 그리고 라 몰 가(家)를 삼성 재벌가 정도로 놓고 봐도 그리 어색하지 않을 것 같지 않은가? 아니면, 어느 정계의 가문으로 대비시켜 보아도 마찬가지이겠다. 게다가 일반 평민으로는 범접할 수 없는 그들의 생활 방식이나 사고, 행동양식 등은 작품을 창조해 내는 자의 입장에서는 마음껏 상상을 뿜어내도 그닥 큰 거부감도 없이 받아들여질테고, 아니 어쩌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더라도 우리에게는 먼 세상에 대한 호기심 어린 흥미거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을 읽은 후, 뒷 부분에 포함된 해설부분을 대략 훑어보던 중, 이 작품 속 이야기가 당시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배경으로 했음을 알게 되었다. 즉, <적과 흑> 작품 속 이야기 전개가 실제 사건과 거의 흡사함을 보고서는 작가로서의 작품의 소재는 상상보다는, 역시 현실에 기반을 두고 얼마나 주의깊게 관찰하느냐에 달렸다는 것을 새삼 재확인한다. 게다가 작가가 살아가던 때의 시대상, 즉, 정치, 사회, 문화 등의 환경을 가미하고, 당시 특별한 인물들을 조화시키다보니, 200년이 되도록 사랑받는 작품이 탄생되어질 수 있다는 예를 보여준 것 같기도 하다. 일독이라 그런지, 문장 하나하나에서 발견되는 작가의 통찰력이나 삶의 관점을 알아차리기 보다는 흘러가는 내용을 자연스럽게 따라갔던 시간인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내용 전개상, 쥘리앵에게 발생되는 우연의 반복이나 상황에 따라 너무 과도하게 들어맞는 억지스러운 면에 다소 실망을 가지며 읽기는 했다. 하지만, 상류사회에 대한 비판적 현상, 퇴폐, 역겨움 등의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민낯의 모습을 전했던 문장들도 많았지만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친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남녀간의 애정관계에 있어서의 밀당(밀고 당기기)에는 그닥 관심이 없는 나이가 된 건지, 워낙에 그쪽에 문외한이라 그런지, 쥘리앵의 마틸드에 대한 짜여진 사교기법 - '밀당'을 어떤 말로 표현할 지 생각해 보다가 이 단어로 정한다. - 에서는 현실적 반영보다는 짜놓은 맞추기 식은 아닌가하는 의구심도 갖곤 했다. 이미 결과를 만들어 놓고, 과정을 입혀가는 식으로... 2권의 책을 읽는 동안, 2개의 독서모임을 이끌어야 겠기에 잠시 멈추기도 했던 독서의 시간이었다. 지루함도 때론 흥미로움도 느끼면서 하이라이트해 놓은 몇 문장들을 다시 읽어보며 <적과 흑> 독서일기를 마치기로 한다.
<수익을 가져오다.> 이것이 바로 베리에르에서 모든 것을 결정짓는 대원칙이다. 주민 대다수가 머릿속에 습관처럼 떠올리는 생각들은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부자가 아무리 흥정에 능하다 해도 그 일에 먹고사는 문제가 걸린 사람의 흥정 솜씨를 당해 내지는 못하는 법이다.
잠시 성당에 들르는 것이 자신의 위선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선이라는 말이 놀라운가? 이 가증스러운 단어를 가슴에 품기까지 시골 청년의 내면은 많은 구비를 넘고 돌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발을 들여놓은 이 상류 사회에 대해 증오심과 역겨움만을 느끼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구나. 성직자가 되어서도 네가 구원받을 수 있을지 나는 걱정이다."
그 눈길에서 더없이 잔인한 복수를 꿈꾸는 어떤 어렴풋한 바람을 읽거 냈을 테니까 말이다. - 중략 - 부자들에 대한 쥘리앵의 증오심은 끓어오르다 못해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이것이 바로 이 젊은 야심가의 영혼에 소용돌이치는 열정의 힘, 감히 말하자면 그 열정의 위대함이 낳은 결과였다. 이 특이한 존재는 거의 매일 폭풍우가 몰아치는 삶을 살고 있었다.
돈 때문에 저자들에게 내 영혼을 파는 이 장한 습관을 대체 언제부터 들인 거지?
그의 머릿속에 레날 부인은 없었다. <귀하게 태어난>이라는 말이 여전히 그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언제나 뭔가 궁리에 빠져 있는 데다 계산을 한 뒤에야 움직이는 것 같거든.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야.'
쥘리앵은 자신이 베리에르 주임 신부의 면직을 이처럼 약삭빠르게 이용할 계산을 해낸 게 뿌듯했다.
쥘리앵은 이런 생각과는 한참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의 사랑은 여전히 야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구박 덩어리인 자신이 그처럼 지체 높고 아름다운 여인을 차지했다는 기쁨으로 빚어진 사랑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때는 출세가 위험한 전투를 무릅쓴 대가로 얻는 보상이었어. 그런데 지금은 비열하게도 가엾은 자들을 짓밟아야 출세를 할 수 있으니!
성직자들은 기부금 문제에 관한 한 무엇이든 농담으로 넘기지 않는 법이다.
이때부터 쥘리앵은 끊임없는 주의를 기울여 자신을 감시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완전히 새로운 성격 하나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겪어 보니 <다르면 미움을 산다>라는 말이 맞다는 것을 똑똑히 알겠어.
<폭군들이 가장 유용하게 써먹는 관념은 신이라는 관념이오.>
출세하려면 옳지 못한 짓이라도 얼마든지 저지를 수 밖에 없어. 그러면서 그런 옳지 못한 짓을 감상적인 미사여구로 치장해 숨길 줄도 알아야만 해.
좋은 가문은 많은 자질을 부여해 주지.
대체 이곳에 와서 내가 본 게 뭐야? 메마르고 거만한 허영심, 오만 가지 색깔의 자존심, 그 외에는 없잖아.
귀족 계층의 살롱이란 거기 다녀오는 길이라고 자랑하기에는 좋지만, 그 이상의 매력은 없다. 위선조차 기가 꺾일 정도로 의미 없는 그 대화들, 특히나 <틀에 박힌> 그 표현법들은 온화하다 못해 역겨울 정도여서 결국은 누구라도 진이 빠지고 만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가문이며 재산 등 그 모든 조건을 갖춘 만큼 다른 여잡다 더 큰 행복을 누릴 거라는 아첨을 퍼부었고, 그것은 그대로 그녀 자신의 믿음이 되고 말았다.
정치란 문학의 목에 매단 돌맹이 같아서 여섯 달도 안 돼 문학을 물속에 가라앉히고 맙니다. 상상력이 자아내는 재미 속에 끼어드는 정치는 연주회 도중에 울리는 권총 소리와 같아요. 그건 생동감도 없이 그저 찢어질 듯 시끄럽기만 한 소리입니다.
죽음 자체는 <무섭지> 않았다. 지금까지 자신의 온 생애가 이런 불행에 도달하기 위한 긴 준비 과정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그를 견딜 수 없게 했다. 게다가 이것은 모든 불행 가운데 최악의 것이었다.
삶의 종말을 바로 눈앞에 두고서야 비로소 삶을 즐기는 법을 알게 되다니 참 묘하기도 하지.
인간은 자기 안에 두 개의 존재가 있다는 게 사실이야.
강들의 제왕인 나일 강이 아직 작은 물줄기일 때 인간의 눈은 그것이 나일 강인지 알아보지 못하거든.
파리 살롱에 모여드는 신사들도 내 아버지나 저 교활한 악당 도형수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거야.
나는 진실을 사랑했어...... 그런데 그 진실이란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 사방을 돌아봐도 위선뿐인걸. 아니, 많이 양보해서 허풍뿐이라고 하자. 가장 덕성스럽다는 사람들도, 가장 위대한 사람들도 예외는 아냐. 이런 생각과 동시에 쥘리앵의 입가에 혐오감이 번져 나갔다...... 그러니 인간은 인간을 신뢰할 수 없는 것이지.
신과 [성서]와 성직자 이 셋을 하나로 놓는 순간부터 하느님이라는 저 거룩한 이름을 믿기란 틀린 일이 되고 말지. 우리 성직자들이 행하는 그 놀라운 악덕들을 보면서 어떻게 신을 믿을 수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