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적으로 남은 냄새

폐액

by 이재원

아침을 시작하는 TBM 시간, 동료 한 명이 보이지 않았다.
차가 밀려 늦나 싶었지만, 생산동 폐액 펌프에서 리크가 발생해 벌써 현장을 점검 중이라고 했다.


폐액은 공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고, 그 폐액을 외부 탱크로 이송한다. 해당 펌프는 평소처럼 가동하였고, 압력도 충분했고 이송도 원활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펌프 씰 부근에서 작은 리크가 발생하여 담당자에게 연락한 것이었다. 즉시 펌프를 정지하고, 병렬로 연결된 스페어 펌프를 가동해 이송은 중단 없이 이어졌다. 비치된 흡착포로 바닥을 정리하고, 고장 난 펌프는 업체와 일정 조율을 하였다고 했다. 조치는 짧은 시간 매끄럽고 비교적 깔끔하게 이루어졌다.


사무실로 돌아온 동료는 '폐액 작업 하고 왔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아도, 주변에 있던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작업복에 밴 냄새, 신발 바닥에 살짝 묻은 흔적 때문인지 사무실 안에도 한동안 미세한 폐액 냄새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불쾌하다기보다는, 계속해서 코끝을 건드리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작년부터 매주 유해·위험요소를 발굴하고 공유하며 개선해 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놓치기 쉬운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위험요소는 대개 눈에 잘 보인다. 끼임, 충돌, 낙상, 베임처럼 즉각적인 상해로 이어지는 것들이다. 하지만 유해요소는 다르다. 몇 시간 뒤에 나타나기도 하고, 며칠 뒤에 영향을 주기도 하며, 때로는 훨씬 더 먼 미래까지 영향을 남긴다. 심지어 우리의 다음 세대까지.


화학 공장은 본질적으로 유해한 물질을 다루는 공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위험 공정을 없애거나 대체하고, 공학적으로 노출을 차단하고, 관리 절차를 만들고, 마지막 단계로 개인보호구(PPE)를 착용한다. 이 모든 것은 법과 기준 안에서 설계되고 운영된다. 하지만 현장에서 장비와 설비를 직접 만지는 입장에서는, 그 기준만으로는 늘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익숙함이 생기는 순간, 경계심은 가장 먼저 무뎌지기 때문이다.


오늘의 폐액 리크는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다.
스페어 펌프가 있었고, 대응도 빨랐다. 하지만 작업 후 남은 냄새는 오래도록 생각을 붙잡았다. 정말 경계해야 할 것은 눈에 보이는 사고만이 아니라, 이렇게 조용히 스며드는 유해 요소라는 것을.


익숙한 설비와 공정과 냄새.
그 익숙함 자체가 가장 경계해야 할 유해 요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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