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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령 Jan 09. 2024

부럽다! 부러워~

낼모레 오십 시즌 1

     머리카락을  무지개색 고무줄로  동글동글  묶은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사뿐히 걷는  모습에 눈길이  간다.   엄마가  곱게 단장해 준  여자아이들의 모습을  부러워했던  어린 기억이 스친다. 

   ‘다른   엄마들은 머리를  참 예쁘게  묶어주네.

그 시절 나의 머리카락은 별다른 손질이  필요 없는  짧은 커트 머리였다. 작고 왜소한 체형 티셔츠와 바지를 주로 입고 다녔던 여자아이. 엄마 손을 잡고 길을 걸으면 모르는 사람들은 아들이 몇 살이냐고  물었고, 엄마는 딸이라고 자주 대답했었다. 남자와 여자 중 언제나 남자 쪽에 가까웠던 나의 겉모습이 싫어지기 시작한 곳은 학교였다. 팔랑팔랑  움직이는 치마가 나비  날개  던  아이들이 있었다. 그  아이들이 쓰는 학용품은 아기자기하고 색도 화사했다. 자고  일어나 머리카락이  붕붕 뜬 상태로  등교한  남학생들과  평범한 옷차림을  한 여학생들 속에서 나비 날개 같은 옷을  입은 아이들은  공주 같았다.  꽃처럼 화사한 그들에 비해 내가 초라하게 껴졌다. 학교를 마치면 동네 친구들과  어른들이  없는 집에서 모여 놀았다. 긴 수건의 한쪽 끝을  묶어 머리에 쓰고,  진짜 머리카락이라고 상상하며, 어느 날  자신도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고 머리가 아주 긴 공주가 될 거라고 믿는  아이들과 재미나게 놀았다.


   "머리카락 길이 귀 밑 3센티미터. 단발머리. 쇼트커트 금지." 두발 규제가 있던 중학교 시절. 학교에서 구입한 녹색 체육복 바지는 시보리 없이 일자  내려와 굉장히 길었다. 며칠 다시 돌아온 체육시간에 짝지를 포함한 몇몇 아이들은 체육복 바지 밑단에 고무줄을 넣어 말끔하게 수선된 상태였다. 수선한  바지를  입은 아이들은 운동장을 달려도 바지 단이 흘러 내려오지 않았다. 대충 둘둘 접어 놓은 내 바지는 달리는 중간중간 풀려 운동장 모래와 뒤엉켜 바지 단을 펴면 모래가 소로록 흘렀다.  봄이 가고 여름이 시작되어 체육복 바지 길이는 자연스레 짧아졌다.  중학생 시절 수선하지 않았던 체육복 바지 같던  나는 언제나 자신감 넘치고, 성적도 완벽했던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우등생들에게 주워졌던 선생님들의 무한한 신뢰와 기대감은 학창 시절 동안 나의  부러움이 되었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 한 나는 무늬만 미대생이었다. ‘어떻게 저런 걸 그릴 수 있지? 저런 색은 어떻게 만든 거지? 이런 아이디어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대학 생활동안 동기들을 향한 질문  “어떻게”는 너무나 평범하고 성의 없는, “잘”이라는 대답으로 돌아왔다.

   “이거 어떻게 그린 거야?”

   “잘~.

맥이 풀리는 대답이었고, 뛰어난 재능과 넉넉하고 좋은 환경을 신의 선물처럼 받고 태어난 그들의  감각적인 손재주는 평범한 내가 넘지 못할 높은 성벽이었다. 머리카락은 그냥 두면 길지만, 예술적 재능과 풍족한 환경은 애절한 기도와 반복적인 노력으로 가질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다. '저들의  모든 것은 전생에 터진 복권이 현생에 다시 발화한 현상'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결혼  후 아이를 낳아 산후조리원에서 몸을 회복했다. 조리원의 단체 생활은 단순했다. 산모들은 규칙적인 식사와 육아 수업을 받으며, 틈틈이  수유실에 다 같이 모여 젖병이 달린 유축기에 각자의 모유를 냈다.  출산의 거룩한 경험을 가진 산모들은  정화된 마음과  순수한 영혼이 가득한 시기였지만, 모유를 짜는 순간에 보이는 경쟁심은 놀라웠다. 보이지 않는 붉은 머리띠를 머리에  두른 투쟁전사들 같았다.

   “타올라라. 모성애여! 쏟아져라. 모유여!

다량의 모유 생산이 가능한 산모들은 좋은 엄마의 조건을 갖추었으니 자존감이  높았다.  160 미리리터의 신생아용 젖병을 유축기에 자주 교체해  끼우는 산모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노란 초유가 가득한 젖병을 줄줄이  세워 둔 그들이 부러웠다.  나도 모유배출량의 증가를 위해 노력했다. 한 사발, 두 사발 미역국을 최대한  먹었다. 산채비빔밥을  비벼 먹을 만한  커다란 국그릇미역국을  가득 담아 열심히 먹어도 모유 량은 쉽게 늘지 않았다.  나의  능력을  깨닫고, 조리원에서 아기에게 모유와  분유를 같이 먹이는 혼합수유를 시작했다.  건강한 젖소가 많아서  진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 저런 시간의  흐름 속에   아이와 옆집 아이가 커 갔다.   부족했던 나의 학창 시절은  대를  우리  아들들에게 순서가 넘어갔고, 공부 잘하는 아이를 가진 부모들을 부러워했다. 

그쯤 알고  지내던 지인의 넓은 아파트 평수와 그 집 남편 월급에 괜히 화가 나기도 했었다. 여러  감정들의  소용돌이  속에 시간은 멈추지도 기다려 주지도 않고 언제나 흘렀다. 이젠 아주 넉넉히 시간이  흘러 곧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요즘은 지인들의 검고  풍성한  머리카락이 부럽다. 갱년기에 줄어든 모낭의 멜라딘 색소는  흰머리를 대량 생산했다.  주기적으로 염색을 하지 않으면, 아침마다  마주하는  거울이 부담스러울  지경이다.  홀라당 빠질 것 같은 나의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걱정스러워 식품 보조제와 기능성 탈모방지 샴푸도 쓴다. 안티 에이징!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지난날 부러워했던 것들은, 그 시기에 갖추어졌으면 하고 바라는  ‘완벽함’이었다. 어디까지가 '완벽함'인지에 대한 기준이 없어서 부러움만 켜져 가던  과거들이 생생하다. 나의  삶 속엔 늘 걱정이 앞서고 타인을 향한  부러움이  가득하다.  이대로  나이  들어간다면  아마도 내가 죽어 누울 관의 종류와 납골당의 위치까지 남과 비교해  가며  힘들어할  참이다.  아직도 '완벽함'의 또렷한 기준 없어 흔들리고 힘든 마음을  다독이며 진정시킨다. 행복의 순서와 크기를 조절해 본다.

   "낼모레  내 나이  오십" 

변할 수 없는 주변 받아들이는  편안함에 집중할 나이라고  한다.   아직도  여러 욕심으로  부러움이 생겨, 화가 나고 자주  우울하지만, 최대한  마음을 평온히 유지해 보려고 한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너무 많이 타인을 부러워하며 힘겨웠다.

낼모레 오십 인, 나!

놓아야 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커져야 할 나이가 되었다. 이젠 '완벽함'의 기준을 또렷이 세워 부러움으로 흔들리는  괴로움을 줄려야 한다. 가지지  못해 애달파하는 나를 달래고, 욕심만큼 완벽하지 못한 나와 내 주변도 감사함이라고 생각해 본다.


   어느덧 11월의 반이 흘렀다. 한 해를 정리하는 12월이 가까워지고  추위와 어둠이 깊어진다.  컵 속에 든 커피는 향이 좋고, 남편과  보는  텔레비전 방송에 웃음이 난다. 어제와 같던 오늘, 오늘과  비슷할 내일.  평범함이  가득한 날들이 행복이고  감사함이라고 깨닫는 내 나이 낼모레 오십이다.

 “이젠 타인이 부럽지 않다. 그렇게 기도하자. 부럽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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