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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령 Jan 01. 2024

새 신 신고 독립선언

낼모레 오십 시즌1

   “야~, 신발 안 신는 건 신발장에 넣으라고 도대체 몇 번을 말했어? 너희들 신발 때문에 현관 입구가 정신이 없다. 지금 당장 안 치우면 다 버릴 거다.”

오늘도 퇴근해 집에 들어오면서 짜증이 확 올라온다. 아들들이 각자 꺼내놓은 신발이 세 켤레씩이다. 남편의 슬리퍼와 운동화까지 포함해 총 8켤레가 현관 입구에 정신없이 놓여있다. 크기가 작은 신발들도 아니고, 모두 280 미리 이상 되는 운동화다. 좁은 현관의  어수선함에 큰 소리가 나온다. 엄마의 역정에도 빨리 움직이지 않는 아들들의 게으른 모습에  화가 광속으로 치솟는다. 아들들의 등짝으로 향해  날아가는 내 손바닥 스매싱 공격력은 최대치 레벨이다. 맞아야 움직이는 이놈들이 인간인가 싶은 생각이 들면, 나의 눈빛은 이성이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화가 나서 이 방 저 방 걸어 다니고 있는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별이가 보인다. 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초록색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올려다보며, “야옹”.

   “아고~, 우리 별이 엄마 왔어. 잘 있었어?”

나의 목소리는 세상 모든  사랑이 가득한 발음과  억양 되고, 허리를 깊게 숙여 부드럽고 복슬복슬 고양이를 내 품으로 안아 올린다.   별이와 눈 마주침을  하고 팥처럼 생긴 동글동글한 고양이의 발바닥을 보며 너무 귀여워 조물조물 만져본다.


   저렇게 뺀질거리고 속 터지게 하는 내 아들들도 작은 별사탕 같은 발가락을 가지고 있을 때가 있었다. 동글동글 살이 올라 있는 아기의 다섯 발가락들이  열개. 중력을 버텨 바닥에 서 본 적이 없는 여린 생명의 포동하고 자그마한 발을 기억한다. 여름 포대기에 아이를 업으면 삐죽이 나온 두 발의  앳된 움직임에 손으로 살며시 잡아본 기억이 난다. 부드럽고 따뜻했던 아기의 을 만지며,

‘발바닥이 많이 따뜻한 걸 보니 내  새끼  잠이 오네.’하고 중얼거리던 지난  기억들이 스친다.    


   아들들조그마한 발이 커지고, 중력을 견디며 땅을 짚어 기고, 걷는 시기가 온다. 생후 12개월쯤 첫 신발을 신겨 햇살이 따뜻하고, 바람도  얌전한 잔디가 고운 곳에 아들의 손을 잡아주며 걷는 연습을 시켰다. 두 손을 잡아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 주며, 나는 아들에게 한가득 웃어 보인다. 한 손만 잡아줘도 아장아장 잘 걷는 시간이 지나가고, 멀리  떨어져  있는 내게 혼자 사뿐사뿐 걸어온 아들을 기쁘게 안아 올린다. 아들의  웃음과  나의 웃음이 함께한 많은 시간들. 아이의 모든 길이 부모에게만 향하던 시절이 있었다. 남편과 나만 보며 부모가 사준 신발을 신고 걷던 아이는 조금씩 다른 길을 걷는다. 사춘기 시절의 신발도 부모가 사주었으니 자신의 의지대로만 움직일  없었다. 부모가 정해 준 길을 향해 어느 정도 나아가야 하니, 신발의 종류나  디자인도 선택된 방향도  아들들의  맘에 딱 들어맞지  않았.

지배층에 종속되어 있는 노예는 신발이 없었다고 한다. 텔레비전에 방영된 우리나라 사극을 보더라도 빈민층과 농민계층은 신발은 짚신과 미투리(마로 만듦)만 보인다. 사대부나 양반계급부터는 신발이 좀 더 다양해진다. 궁궐로 입궁할 때 신는 신발, 장수가 전쟁을 할 때 신는 신발, 여인들의 외출 시  신는 여러 꽃신들이  소개된다. 양반 계급 이상의 여성과 남성들의 신발은 그들의 일상과 그들에게 허락된 길의 다양성만큼  다채롭다.  누군가에게 종속되지 않고 홀로 설 수 있는 사람들은  다양한 생활을  하며 여러  장소에  어울리는 신발을 선택해 원하는 길을 걷는다.


   이제 아들들도 성인이 되어 자신이 바라는 신발을 조금씩 자신의 능력으로 구입해 신는다. 아이들의 신발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여유롭던 신발장이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의무교육이 끝나던 시점부터 합법적인 아르바이트가 가능해지면서 아이들은 자신이 가고 싶은 곳에 어울리는 신발들을 자신의 능력으로 사 신기 시작했다. 부모가 권하거나 안내해 주는 길보다 자신들이  원하는 길을 찾아 우선적으로 걷는다. 어느 날은 도대체 아들들이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지 몰라 물으니,

    "제가  알아서 해요."라며 신경 쓰지  말라고 무척  귀찮아했다.  아들들은 자신들의 길 앞에서 나와 달라고, 부모님은  이상 관여 하지 말아 달라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싸가지 없이 표현하다  또 한 대씩 맞았다. 내가 그 길을 "가지 마라"는 것도 아니고, 자식이 가는 길을 조금 보여 달라는 것뿐인데도 세상  귀찮아한다. 나도  너희들이  해달라는 거  해  준다고  그  많은  것들의 귀찮음을  참아 가며  긴 시간 노력했는데, 괘씸하고 서운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드라마도 매회 예고편을 제공하는데, 이때까지 키워준  부모에 대한 감사함으로 조금은  친절하게  일부분은  보여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요것들, ‘너희들이 원하는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엄마나 아빠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헉헉거리며 걷거나 뛰어 왔는데….’

남편과  나의 많은 날들의 노고를 몰라주는 아들들을 보며 서운한 날들도 많았고, 화가 나는 날들도 많았지만, 언젠가는 이런 부모 마음도 아는 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보기도 했다. 행여 아이들이 자신들이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가득한 수고스러움으로 컸다는 것을 알지 못하더라라도, '아이들의 인격과 육체의 모든 것에 남편과  나의 정성이 스며들어 아들들을  완성했다'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달래 본다. 

남편과 내가 아이들에게 열어주고, 걷게 해 준 길보다 더 다양하고 화려하고 뜻있는 길들아이들이 찾아 자신의 튼튼한 신발을 신고, 자신 있게 벅뚜벅 걷길 바란다. 가끔 진흙이 묻거나 꽃길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꽃은  늘 흙길 위에 핀다는 걸 잊지 않길 바란다.

'아들아, 내가 지나온 흙길 위에 핀 꽃들 너희들이었다고 얘기하고 싶구나.'

 이런  말은 아들들의  얼굴을 마주하고는 차마 낯 간지러워 할 수 없는  말이다. 부모의 수고를 알아 달라는 보채기 같아 더욱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들아, 너희들이 신고자 하는 신발이 너희들의 발에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신고 있는 신발이 어느 날 벗겨질 수도 있지만, 늘 같은 신발만 신을 수 없다는 걸 아는 것이 삶이라 것도 알게 는 날이 있지. 나도 그런 시간들을 지나왔고, 앞으로 있겠지. 엄마의 늙은  시간에 신겨질 신발과 신고 싶은 신발이 아직 남아 있단다. 우리의 모든 길에 적당한 신발들이 준비되어  걸을 수 있기를… 우리  모두 그 길에 홀로 당당히 걸을 수 있기를."

그리고 가끔은  각자가 걷고 있던 길에서 잠시  나와 휴식처럼  만나서 같이 맛있는 밥을 먹자. 밥은 젊은 너희들이 사는 것으로 하자. 엄마는  고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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