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을 잘 못 알아듣는 이유

소리는 잘 듣는다

by 싯다

우린 사람을 만나면 인사를 한다. 아는 사람이라도 우리는 인사를 한다. 거기까지는 나도 이렇다 할 문제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이다. 다른 사람이 먼저 내게 말을 하면, 나는 낮지 않은 빈도로 다시 한번 말해 달라고 부탁한다. 대화의 첫 시작뿐만이 아니다. 대화 도중에 화제가 갑자기 전환될 때에도 나는 다시 한번 말하기를 부탁한다. 오래 대화를 하다 보면 이런 경우가 적지 않게 되고, 사람들은 내가 장난치는 줄로만 안다. 한 번은 군대에서 진지한 분위기에서 선임이 하는 단순한 말도 3번이나 잘못 들었다고 하는 바람에 크게 오해한 적도 있다. 하지만 맹세컨대 나는 매 순간 진지한 자세로 대화에 임하고 있다. 절대로 장난을 친 것이 아니다! 분명히 나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듣긴 들었지만 놀랍게도 나는 그들이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에 얽힌 슬픈 사연을 제발 다른 사람들도 알아줬으면 싶다.

나 스스로 나는 사고의 순발력이 뛰어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확히 타이머로 재보진 않았지만 그런 느낌이 든다. 문제 상황이 닥치면 그 후 무슨 행동을 해야 할지 결정하는 데에 시간이 남들보다 오래 걸리는 편이다. 이렇듯 마음과 달리 느릿느릿 따라와 주는 사고로 인해 손해 보는 경우가 많다. 시험에서도 남들보다 문제 푸는 속도가 느리게 되고, 뜻밖의 상황이 벌어질 때는 당혹감으로 더 심해져 일순간 모든 사고가 정지해버리고 만다. 대화 중 잦은 빈도로 다시 말해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어찌 보면 이러한 문제의 연장이다. 대화란 상대의 말에 대한 즉각적인 피드백의 연쇄로 성립된다. 스스로의 느린 사고에 대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는 나는 그렇기에 일단 한 번 대화의 가닥이 잡히면 첫 발언을 함과 동시에 그 주제에서 나올 수 있는 예상 질문 리스트를 머릿속에 작성하고 그 리스트를 토대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간다. 문제는 대화를 처음 시작할 때나 예상 질문 리스트에 없는 지문이 나올 때, 즉 대화의 흐름이 갑자기 바뀔 때 벌어진다. 이때 다시 나의 리스트는 백지가 된다. 분명 물리적으로는 감지했던 상대방의 발언은 그저 내게 소리로써 인식되고 그 뜻을 잃어버린다. 아무래도 나의 느린 사고는 도저히 음속을 돌파할 수가 없는가 보다.

그렇기에 나는 창피를 무릅쓰고 한 번 더 부탁하는 것이다. 미안한데 한 번만 다시 말해줄래… 나의 장난 같은 이 잦은 부탁의 이면에는 이런 슬픈 사연이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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