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해서(3)

아버지의 전성기

by 영쓰

결혼식까지 D -180

걱정이 됐다.


그 걱정이랄게, 내 걱정이나 와이프 걱정

혹은 결혼에 대한 걱정은 아니고.

가장에서 독신남(1)이 될 아버지 걱정이랄까


TV를 보다보면, 그 중에서도 인간극장을 보다보면 이런 장면이 있다.


밥에 물 말아먹는 할아버지.

괜히 보지도 않을 TV를 틀고.

핸드폰 한 번 들었다 놨다.

추운 바닥에 담요를 깔고 기침하는 그런 장면.

(아버지들은 왜 추워도 보일러를 안 틀까?)


흔한 장면이 쓱 스쳐가면서

혹시 아버지도 1년뒤... 인간극장?




그래, 취미를 만들어드리자

아버지에겐 취미가 필요하다. 이게 내 결론이다.


첫 번째 취미는 우연히


"내가 공원에 갔다가 드론날리는 걸 봤는데,

나무 위까지 확 올라가~확 날아가더라고?"

충청북도 청주시 내수읍 출신 아버지

이건, 사달라는 시그널이다

"뭘 드론을 사, 날릴데도 없는데...근데 보통 얼만데?"


자격증을 따지 않아도 되는

자그마한 드론을 바로 주문했고,

그날 밤 바로 집에서 드론을 날리다 TV에 몇번을 부딪혔다.

의자를 끌다가 바닥이 살짝만 긁혀도

싫어하던 아버지였는데, 지금 표정은 꽤나 어린이다.


그 뒤로 드론은 더 멀리, 더 높게 나아갔다.

공장 공터, 시골, 공원. 마음껏 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지금도 물론, 어딘가 갈때마다 자동차 트렁크에 드론을 들고다니신다.




두 번째 취미는 지금의 아내덕에.


데이트 하던 시절, 교보문고를 지나다 목공 프라모델을 발견했다.

"아버님 취미로 이건 어때?"

"어? 좋은데? 만드는 거 좋아하셔"


나무로 된 목공 오토바이를 사갔다.

TV와 이별하자. 이번엔 집 안에서도 즐길 수 있다.

"아부지 이거 한 번 해보셔"


아버지는 내가 사온 목공 오토바이를 물끄러미 보더니

입맛을 다시며

"이런거 재밌지"


엥? 생각보다 훨씬 더 좋아한다.

다 만드실 때마다 일주일치 취미를 몇 개씩 더 주문했다.


내가 늦게 퇴근하고 돌아오면, 두꺼운 안경을 쓰고

나무로 된 프라모델을 하나 하나 뜯어가며 만들고 계셨다.

마치, 발톱깎는 사람처럼 구부정하게

신발장 구석에 박혀 전혀 쓸 일 없던

핀셋과 본드와 갖가지 공구까지 동원해서

나무 집을 만들고, 나무 배도 만들었다.


아버지의 숙련도에 따라

프라모델의 피스(조각 수)가 늘어갔다.

처음엔 3시간 걸리던 게, 나중엔 10시간 짜리.

더 비싸지고, 더 정교해지고.


두, 세 달만에

진열장에 있던 오래된 그릇들은 싹 없어지고

'아버지의 작품'들이 전시가 됐다.

아버지에게 드론이 친구같은 취미라면

목공 프라모델은 효자같은 취미가 됐다.

마치, 대기업 출신 자식을 자랑하듯

집에 오는 사람들마다 본인의 '작품'을 자랑하셨다.


시중에 판매되는 목공 프라모델을 거의 다 완성한 뒤에야

아버지의 두 번째 취미는 끝이났다.

(아직도 집에 '작품 전시'는 되어있다.)


여태 못 했을 뿐이지, 좋아하는 게 분명있었다.

가끔 사우나에서 탁구치면 승부욕에 불타오르고

함께 러닝을 하면 아직 한창이라며 앞질러가고

무언가 망가지면 일단 뜯어봐야하는





결혼 후 내 걱정과는 다르게 아버지와 약속 잡기가 어려워졌다.

통화를 하다보면 이 날은 안되고, 주말엔 스케쥴이 있고.

3주 전엔 미리 알려줘야 할정도로 바쁘시단다.


요즘엔 또 다른 취미가 있는 것 같던데

집 인테리어까지 싹 다 하시고 침대까지 새로 사셨던데.

심지어, 지난달엔 집에 갔더니 안계시더라.

친구들과 여행을 가셨다고? 일주일 동안?


혼자가 되시면 마냥 외로워하실 줄 알았는데

이제야 가장의 역할이 끝나신거구나.

길었던만큼 홀가분하게.


아버지. 요즘 참 즐거워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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