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체코의 외과 의사 토마시는 어느 날 시골 마을에 파견을 가게 된다. 원래 가야 했던 의과 과장이 하필 그날 좌골 신경통으로 꼼짝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마을에는 호텔이 다섯 개 있었는데, 토마시는 우연히 테레자가 일하는 호텔로 향했다. 그리고 열차 시간이 남아 우연히 들어간 술집에서, 우연히 테레자가 그의 테이블을 담당하게 됐다.
토마시가 테레자에게 닿기 위해 여섯 개의 우연이 연속으로 존재해야 했고, 그 중 하나만 달랐어도 두 사람은 평생 모르는 사람으로 살았을 것이라고 쿤데라는 말한다.
그런데 나는 단순히 우연만으로 토마시와 테레자가 연인이 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토마시가 테레자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연인이 됐다고 생각한다.
토마시가 살아오면서 쌓아온 것들이 테레자를 붙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가 읽어온 책들, 사랑해온 방식, 세상을 살아온 순간들. 그 모든 것이 쌓여 만들어진 토마시의 내면이, 우연히 눈앞에 나타난 테레자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게 했던 것이다.
우연은 단지 환경을 조성할 뿐이다. 그 환경 안에서 무언가를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토마시 안에 이미 준비된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테레자와 마주한 우연이 없었다면 그날 토마시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더라도 그는 또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우연이 만들어낸 누군가를 만나게 됐을 것이다.
우연은 언제나 찾아온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떠냐에 따라, 기회가 되기도 하고 고통이 되기도 할 뿐이다.
투자 시장은 스포츠처럼 승패가 명확히 갈리지 않는다. 그래서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기 어렵다.
어떤 투자자는 늘 성공한다. 아니, 그렇게 보인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번도 크게 잃지 않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그를 실력자라고 부른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그가 선택한 투자 방식이 우연히 긴 사이클을 가진 시장과 맞닿았을 뿐일 수 있다. 시장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실력과 마주하게 된다.
역사는 그 사실을 반복해서 증명해왔다.
2020년 팬데믹이 불러온 전 세계의 유동성 증가는 거의 모든 자산 가치를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끌어올렸다. 이 시기에 시장에 들어온 투자자들에게 상승은 당연한 것이었다. 유동성은 계속 흘러들 것이라 믿었고, 그 믿음은 한동안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유동성이 만든 인플레이션은 급격한 금리 상승으로 이어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치며 자산 가치는 빠르게 무너졌다. 많은 투자자들이 연준을 탓했다. 파월을 탓했다. 전쟁을 탓했다.
그러나 그들이 놓친 것이 있었다. 우연이 만든 수익을, 우연이 가져갔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시장은 놀랍도록 같은 일을 반복한다. 늘 이번엔 다를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수익은 시장이 주고, 그 수익을 거둬가는 것도 결국 시장이다.
그렇다면 이 시장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누구인가. 성과를 가늠하기 어려운 투자 시장에는 보이지 않는 잣대가 하나 있다. 바로 지속성이다.
투자자는 모두 같은 시장에서 싸운다. 하지만 모두가 같이 벌고, 모두가 같이 잃지는 않는다. 누군가가 벌 때 누군가는 잃고, 누군가가 잃을 때 또 누군가는 번다. 그 차이는 어떤 종목을 골랐느냐, 어떤 타이밍에 들어갔느냐가 아니다. 시장이 흔들릴 때 자신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다.
지속성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하다. 시장에 계속 남아 있는 사람만이 다음 우연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나오는 토마시를 생각해보자. 그가 조금만 다른 삶을 살았다면 어땠을까. 의사가 아니었다면,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면. 그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테레자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과 마주쳤을 것이다. 토마시가 살아온 모든 순간들이 쌓여, 우연히 눈앞에 나타난 테레자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게 했다.
투자도 다르지 않다. 수익을 지키는 것도, 잃는 것도 어떤 외부 사건 때문이 아니다. 그 사건을 만나기 전까지 내가 무엇을 쌓아왔느냐의 문제다. 수많은 실패를 복기하고, 공포와 탐욕이 밀려올 때 자신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아는 것. 시장을 탓하는 대신 자신을 돌아보는 것을 반복해온 것. 그것이 쌓여 지속성이 된다.
우연은 누구에게나 온다. 그 우연이 필연이 되는 사람은, 이미 준비되어 있던 사람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지은이),이재룡 (옮긴이)민음사2018-06-20원제 : L'insoutenable légèreté de l'être (198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