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세 가지 장점
별이네 지하실 전기를 봐주고 돌아온 남편이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끄집어낸다.
캔맥주와 육포다. 별이네가 집에서 직접 만든 육포라며 본인이 더 자랑스럽게 말한다. 나는 침을 삼키며 먼저 육포를 찢어서 입에 넣은 후 오물거리며 짭조름하면서도 달큼한 그 맛을 음미하다가 맥주 한 캔을 따서 들이켰다. 캬. 맛있다.
전기기사이면서 손재주가 좋은 남편은 마을의 이 집 저 집 호출을 자주 받는다. 전기뿐 아니라 도어록, 수전, 재봉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자신들이 직접 해결하지는 못하면서 전문가에게 맡기기에는 애매한 일들이 생기면 남편에게 먼저 연락을 한다. 남편도 뭔지 잘 몰라도 일단 출동을 한다. 대부분은 살짝 건드리면 해결되는 일들이 많다. 그래도 마을사람들은 고맙다며 집에 있는 이것저것들을 한가득 챙겨준다. 과일이며, 야채며, 빵, 술, 배달쿠폰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도 아주 다양하다. 이 남자와 살면 평생 굶어 죽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부귀영화를 누리지도 못하겠지만.
우리 부부를 아는 마을 사람들은 내가 남편을 참 잘 만났다고들 한다. 나도 대놓고 인정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부인하지도 못한다. 바로 다음과 같은 이유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그는 내 말을 참 잘 들어주고 또 잘 따라준다.
딸아이를 부모의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하는 공동육아어린이집과 대안학교에 나의 의지로 보냈으면서도, 위원장, 반대표, 청소 등 해야 하는 부모의 역할 대부분은 남편에게 돌아갔는데, 그 일들을 모두 투덜거리면서도 훌륭하게 잘해주었다. 고마웠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두 번 이사를 했는데, 언제나 먼저 집을 알아보고 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집을 계약하였다. 이사 당일 인터넷이며 가스 이전, 아파트 관리비 같은 문제를 모두 알아서 다 처리하는 덤도 있었다.
또 그는 청소를 좋아하고 집안 정리정돈을 잘한다.
남편은 아이가 초등 2학년 때 육아휴직을 6개월 썼는데, 내가 퇴근해서 집에 오면 집안이 항상 너무 깨끗해서 나는 이 남자를 계속 집에 들여 앉혀서 살림을 시키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평소에도 저녁을 먹고 나면 언제나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개어 서랍에 넣는 일은 그의 몫이다. 주말이면 가구들의 위치를 옮겨놓고 그 사이사이 낀 먼지를 제거한다. 고장이 난 물건들은 스스로가 답답해서 내가 알기도 전에 먼저 해결해 둔다.
두 마리 반려묘의 캣타워와 화장실도 모두 재활용 목재를 이용해서 직접 만들어 주었고, 냥이들의 화장실 청소와 스크래처 정리, 사료와 모래 주문 등도 모두 그가 맡아서 하는 일이다.
친정엄마가 살아 계셨을 적 여든 넘은 엄마 혼자 살았던 부산의 친정집은 늘 두터운 먼지가 쌓여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나의 친정오빠들도 하지 않던 대청소를 방문할 때마다 거르지 않고 해 주었다. 깨끗해진 집안을 둘러보며 좋아하던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한 가지 더, 그는 운전을 좋아하고 잘한다는 것이다.
내가 솔로였을 적에 나는 연인들이 서로의 집에 데려다주고, 특히 어떤 모임이 끝나고 헤어질 때면 남자친구들이 나타나서 함께 가는 것이 참 부러웠다.
남편은 내가 상상 속에서 생각했던 호리호리하면서 깊고 맑은 눈을 가진 사람도, 문학과 예술에 조예가 있는 사람도, 입담 좋은 달변가도 아니었지만, 딱 한 가지 내 마음을 꿰뚫은 것이 있으니, 바로 부르면 지체 없이 온다는 것이다.
내가 어디를 가야 하니 차를 좀 태워달라, 내지는 내가 어디에 있으니까 데리러 오라고 하면 단 한 번도 귀찮아하지 않고 언제나 기꺼이 해준다. 나라면 귀찮아서 택시를 타고 오라든지, 지하철을 이용하라든지 잔소리를 할 법 한데,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차키를 들고 차로 간다. 이건 아마도 타고난 천성인 듯하다.
사실 나는 연애를 할 줄 몰라서 결혼도 못할 줄 알았다. 그렇다고 나처럼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 나이 찼다고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그냥 막 결혼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결국 어딘가 있을 누군가를 계속 찾아 헤매며, 하지만 겉으로는 의연한 척 비혼을 얘기하며 세월을 보낼 줄 알았다. 하지만 짚신도 제 짝이 있다는 속담이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멋짐, 근사함 뭐 이런 것들과는 거리가 꽤 있지만, 곰처럼 우직한 한 사람을 만났으니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매일 아침 일어나면 이렇게 되뇐다.
“지금 이대로 행복합니다.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