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6일. 726,000원

-최근 가장 만족스러웠던 소비

by 은효

생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 예닐곱 살 이후부터 딸아이는 일 년 중 제 생일이 최고의 날이 되었다. 7월이 생일인데 3월 즈음부터 생일 선물로 무엇을 해줄 것이냐고 연신 물어본다. 몇 해 전부터는 아예 무엇을 해달라고 직접적으로 요구를 하기도 한다. 생일이 지나고 나면 내년 생일에는 또 무슨 선물을 받을지 그 생각으로 한참이나 즐거운 상상에 빠지는 것 같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한 가지 켕기는 일이 떠오른다.


나는 마흔둘이라는 늦은 나이에 딸아이를 낳고 너무 기쁘고 좋아서, 이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해마다 아이의 생일이 되면 좋은 곳에 얼마라도 기부를 해야지 하는 마음을 먹었었다. 첫돌을 맞아서는 백만 원을 국제구호단체인 JTS에 기부를 했다. 그리고 해마다 10만 원씩이라도 좋은 곳에 기부를 하리라 다짐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마음먹은 것처럼 잘 되지가 않았다. 핑계는 많았는데, 매월 고정적으로 나가는 기부금들이 있었고, 또 비정기적으로 나의 후원이나 기부를 기다리는 다급한 곳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딸아이의 생일을 기념해서 따로 또 기부를 하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많았다. 그래서 모른 척 눈 감고 넘어간 생일이 챙겨서 기부를 한 생일보다 많았다.



작년은 딸아이가 다니는 삼각산 재미난 학교가 개교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였다. 학교에서는 대안교육 포럼, 20주년 로고 만들기, 도서관잔치, 20주년 기념식 등 다양한 기념행사를 기획했다. 그리고 학교 게시판에 행사 기금 마련을 위한 [재미난 20주년 펀딩팀]을 모집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나는 게시글을 읽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딸의 건강하고 해맑은 모습이 떠올랐다. 코로나에 걸려서 그리고 독감에 걸려서 학교를 못 가게 되었을 때, 언제 학교 갈 수 있냐고 빨리 가면 안 되냐고 물어보던 아이의 얼굴도 떠올랐다. 아이가 학교 가는 것을 즐겁게 해 준 재미난 학교가 새삼스러이 고마웠다. 나는 어릴 적 학교 가는 것이 참 재미가 없고 싫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이 학교가 20주년에 더해 40주년 60주년을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펀딩팀에 함께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댓글을 남기며, 딸의 생일인 7월 26일을 기념하여 726,000원을 후원금 계좌에 입금을 했다.


그동안 이러저러한 사유로 지키지 못했던 몇 년 동안의 생일 기념 기부금을 한꺼번에 한 샘이 되었다. 역시나 기부는 받는 사람보다 하는 사람을 더 기쁘게 한다. 한동안 누구에게 말은 못 하고 혼자서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더랬다. 최근에 내가 한 가장 만족스러운 소비였다.



사실 나는 최근 이삼 년 사이에 물건을 사는데 돈을 쓰는 것에 점점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그 물건들의 끝이 자연과 동화되거나 골동품으로 남거나 하지 않고 지구의 어느 구석을 나뒹구는 쓰레기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나도 한때는 가지고 싶은 것이 많아서 돈이 생기면 늘 무언가를 사려고 했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옷, 액세서리, 신발, 가방, 화장품 같은 것들에 돈을 썼고, 결혼을 하고 나의 공간이 생기고부터는 그 공간을 채우는데 많은 돈을 썼다. 가구, 가전제품, 주방용품, 침구 등 기능이 좋고 예쁜 것들을 보면 늘 사고 싶어서 헐떡거렸다. 멋지게 꾸며진 집을 보면 나도 그런 집에 살고 싶었고, 그래서 돈을 많이 벌어야 되겠구나 생각하며 종종걸음을 쳤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그런 소비에는 끝이 없음을.


기업은 계속해서 나를 유혹하는 물건들을 만들어 낼 것이고, 나는 새것을 보면 내가 가진 낡은 것을 참아내지 못하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리 멀쩡해도 새로운 디자인으로 기능이 추가된 새것을 사고자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나의 귀한 노동의 결과물을 더 이상 그런 곳에 헛되이 쓰지 않게 된 것이. 요즘은 어쩌다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먼저 중고거래장터를 찾아보거나, 아름다운 가게나 굿윌스토어 같은 곳을 먼저 가본다.


이렇게 해서 남은 돈은 경험을 쌓고, 내면을 다지고, 건강을 챙기는 여러 활동들에 더 많이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딸의 생일 기념 기부금도 챙기게 되었다. 그 결과 내 삶의 질은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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