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고 싶은 하루
딸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해서 제법 걸어 다닐 즈음, 그러니까 세 돌이 채 안되었지만 해가 바뀌어 네 살이라고 불리던 시절이었다. 나는 3년 남짓했던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을 앞두고 있었다. 지금 돌아 생각해 보니 그때 나는 몇 달 후면 아이를 두고 직장으로 출근하는 생활이 시작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엄마가 없는 시간에도 아이가 잘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두 돌 조금 지난 아이를, 이제 ‘네 살이나 되었는데’를 속으로 되뇌며 하나씩 스스로 하기를 연습시키려 했다.
그 첫 번째가 혼자서도 잘 걷기였다. 그 시절 아이는 조금 걷다가도 다리가 아프다면서 안아달라 업어달라 떼를 쓰기가 일쑤였다.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는 봄날이었다.
돌 지나면서부터 아이는 엄지손가락을 유난히도 빨아댔는데, 엄지손가락이 허는 것은 물론, 앞니까지 시커멓게 변하는 것이었다. 동네 치과엘 갔더니 이의 뿌리가 상한 것 같은데, 아이가 어리니 수면치료를 하자고 했다. 나는 그렇게까지 심각한 상황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지인에게 믿을만한 치과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소개해 준 치과는 청담동에 있는 어린이전문치과였다. 내가 사는 노원에서 가자면 많이 먼 곳이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시간이 아주 많았으므로 나들이 삼아 가보기로 했다. 지하철 7호선을 타고 한 시간 넘게 걸려 청담동 치과에 도착하였다. 어린이치과답게 어린이집에 온 듯 알록달록 잘 꾸며져 있었고, 간호사도 의사도 모두 친절했다. 진료를 받을 때도 아이가 진료를 받는 건지 노는 건지도 모를 정도로 재밌게 해 주었다. 선물로 반지며 풍선 같은 것도 주었다.
그리고 더더욱 좋았던 것은 승원이의 앞니가 시커멓게 변한 것은 손가락을 빨아서 일시적으로 그렇게 된 것일 수 있으므로 손가락을 못 빨게 하면서 좀 지켜보면 나아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치료가 아니라 좀 더 지켜보자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 모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나의 뇌리에 또렷이 남아있는 그 사건은 지하철을 내려서 집까지 걸어가는 사이에 벌어졌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서자 아이가 다리가 아프다며 업어달라고 했다. 나는 안된다며, 같이 손잡고 가자고 했다.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나는 한번 안된다고 한 걸 운다고 들어주면 더 안된다고 한, 어느 육아서의 내용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대로 울렸다. 좀 있으니 바닥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아- 주저앉는다고 지면 안되지. 단호해져야 해’라고 다짐을 하며,
“승원아, 너 안 가면 엄마 먼저 간다~”
이 말을 남기고 나는 한 발자국씩 내딛기 시작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더 커져갔다. 그래도 나는 굿굿하게 한 걸음씩 내디뎌 10미터 이상 아이와 떨어졌다. 다행히 봄볕이 따스한 한낮이었고, 아파트 단지 내에 오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이렇게 꽤 떨어진 거리를 사이에 두고 상당한 시간 대치를 하고 있었다. 아이는 계속 울면서 보도블록에 주저앉아 있고, 나는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며 답답한 표정으로 아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 달려오면 안아주련만..... 왜 이리 고집 세게 앉아있을까. 네 살이면 혼자서도 잘 걸어야 한다고. 이제 몇 달 후면 넌 하루 종일 엄마 없이 지내야 해.’ 이런 말들을 속으로 삼켰던 것 같다. 그 대치 상황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10미터가량의 거리를 두고 울고 있는 아이와 심각한 표정의 내가 하염없이 대치하고 있던 모습만이 남아있다.
치과를 가는 거였지만 나름 강남 나들이라 최대한 예쁘게 단장을 했었다.
외숙모가 선물한 분홍색 트렌치코트와 원피스를 예쁘게 차려입었던 승원이가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던 그날을, 마흔이 훌쩍 넘은 늦깎이 초보 엄마가 어이없게도 네 살 아이 독립프로젝트를 무식하게 들이대던 그날을,
이제 열네 살이 된 승원이는 기억할까.
감히 물어보지 못하겠다.
지금의 나라면 “엄마 안아줘” 하면 그 가벼운 아이를 하늘 높이 번쩍 들어서 안아주었을 텐데.
업어달라고 하면 바로 뒤돌아 앉으며 “어부바” 했을 텐데.
아이에게 쓸데없이 엄격해지려 할 때, 아쉬움과 그리움 가득한 그날의 기억이 문득문득 떠올라 실소를 지을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