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나를 만들 때 조금 더 넣은 것과 덜 넣은 것
식탁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딸아이가 넌지시 물었다.
“엄마, 나 영원히 모솔이면 어떡하지? 엄마는 첫사랑 언제 했어?”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살짝 배어 나오는 것 같았다. ‘설마 이런 것까지 닮았으려고.....’ 하며 고개를 저었지만, 외모뿐만 아니라 하는 짓이며, 성격까지 나를 속 빼닮은 딸을 보며 내심 불안함이 밀려왔다. 작은 대안학교지만 4~5학년쯤 되면 누가 누구에게 고백을 했네, 누구랑 누구랑 사귄다네 하는 말들이 슬며시 부모들 사이에 돌았다. 그 속에서 아직 딸의 이름은 들어보질 못했다. 이제 곧 졸업인데.
여중과 여고를 나온 나는 6년 동안 남자애들이라고는 구경을 못하고 보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여중고를 나왔다고 해서 다들 나처럼 보낸 것은 아니었다. 오빠 친구든 친구 오빠든, 아니면 교회 오빠든 다들 그들만의 루트로 자신들의 사랑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었던 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내가 연애에 젬병이라는 것을. 연애소설과 로맨틱코미디영화와 멜로드라마를 좋아하던 나는, 그 주인공들처럼 나도 애틋한 러브스토리 한편 정도는 만들어낼 줄 알았다.
1990년 봄. 나도 드디어 대학생이 되었다. 더 이상 사각의 교실에 갇힌 고등학생도, 부모의 허락이 필요한 미성년자도 아니다. 화장도 하고, 파마도 할 수 있다. 술을 마셔도 되고, 남자친구를 사귀어도 된다. 목표한 대학이 아니어 조금 아쉬웠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그 자유로움에 흠뻑 취했다.
4월이 되니 캠퍼스는 새하얀 목련과 연분홍 벚꽃으로 화사하게 단장을 했다. 내 마음도 탐스럽게 피어난 목련꽃처럼 부풀어 올랐고, 바람결에 흩날리는 연분홍 벚꽃잎처럼 보들보들해졌다. 새 학기를 맞아 동아리에서는 선배들의 신입생 유치도 한창이었다. 나는 벽보에 붙은 손글씨로 쓴 예쁜 홍보 포스터를 보고, 과에서 친해진 친구와 함께 수화동아리에 신청서를 냈다. 그리고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언제나 그 친구와 함께 학생회관의 동아리방으로 향했다.
동아리방에서는 자주 선배들의 기타 반주에 맞춰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수화를 곁들여 같이 부르곤 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그러나 솔잎 하나 떨어지면 눈물 따라 흐르고
우리 타는 가슴 가슴마다 햇살은 다시 떠오르네
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주리라
이렇게 노래를 부르고 있노라면, 나와 함께 있는 이 사람들이 모두,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그 어둠을 싹 쓸어 환한 빛으로 밝혀 줄 멋진 사람들인 것 같은 환상에 빠져들었다.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수업이 비는 시간뿐 아니라, 수업을 마치고도, 또 주말에도 학교에 와서 동아리 활동을 하는 시간 펼쳐졌다. 선배들과 수화공연을 준비하고, 매주 주말 보육원에 봉사활동도 나가고, 야유회며, MT며 이런 것들도 빠짐없이 참여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선배가 내 눈 속으로 성큼 걸어 들어와 버렸다.
매일 눈앞에 아른거렸다. 강의실 칠판에도, 책을 봐도, TV를 봐도, 친구와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그 선배 얼굴이 두둥실 떠올랐다. 가슴이 터질 것 같고, 입맛도 없어졌다. 내가 진정 사랑에 빠진 것인가?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말을 할 수 없었다. 부끄러움에 티를 낼 수가 없었다. 밤마다 그 얼굴이 떠올라 잠을 못 이루면서도 학교에서 선배를 보면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했다.
그 해 봄부터 여름까지 오직 그 선배만을 생각하며 지냈다. 그래서 기말고사도 다 망쳐버렸다. 여름방학에 접어들었지만, 나는 여전히 동아리방을 찾았다. 그러다 장마가 시작되어 후덥지근했던 어느 날, 그 선배가 내가 아닌 내 친구에게 고백을 했다는 소문을 접하고야 말았다. 나는 며칠 동안 동아리방에 가지 못하고, 절망에 빠져 보냈다. 오롯이 나 혼자서. 이 또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그렇게 며칠을 끙끙거리다 내 마음을 몰라 준 무심한 그를 내 마음속에서 떠나보냈다.
이후 이런 속절없는 짝사랑을 몇번이나 더 했던가. 나는 사랑에는 퐁당퐁당 잘도 빠졌지만, 연애에는 너무 무지했다. 그건 책을 봐서, 공부를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타고나는 것인 듯했다. 신은 짓궂게도 나의 말랑한 가슴에 사랑의 묘약은 듬뿍 뿌려주시고는, 야속하게도 그 사랑을 이룰 수 있는 연애의 기술은 조금도 주지 않으신 것이다.
애태우며 보냈던 숱한 시간들을 생각하면 억울한 감이 없지 않지만, 모태솔로라는 말이 생겨나기까지 한 걸 보면 나 같은 사람이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니었나 보다며 위안을 삼았다.
딸아이가 귀를 쫑긋 세우고,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아니, 너는 꼭 상큼 발랄하고 로맨틱한 사랑의 주인공이 될 거야.”
이 말이 내 딸의 사랑을 이루어 줄 주문이라도 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