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그 쓸쓸함에 대하여

-새로운 공간과 관계 속에서의 내 모습

by 은효

요즘은 40대에 하는 결혼이 흔하다. 30대 중반은 되어야 결혼적령기라고 생각하면서 20대에 결혼을 하면 적잖이 놀라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좀 웃기지만 그러고 보면 난 40대 결혼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겠다. 벌써 15년도 전에 내 나이 마흔을 꽉꽉 채운 12월의 어느 날 결혼식을 올렸으니 말이다.


40년을 부산에서 살았다. 부산에서 살면서 초중고와 대학을 다녔고, 직장도 거기서 다니고 있었으니, 부산을 떠날 일은 아마도 내 생애에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으로 흘러가기도 한다는 것을 결혼을 하고 부산을 떠나서 서울로 이주를 하며 알게 되었다.


모든 것들이 낯설었다. 그리고 내 주변에 아는 사람이라곤 남편과 백일이 채 안된 말 못 하는 갓난아기 하나가 있었다. 그 외는 아무도 없었다. 딸은 젖만 주면 꿈나라로 가는 순하디 순한 순둥이였다. 하루 종일 내가 하는 일이라곤 자는 아이를 쳐다보다가 깨면 젖을 먹이고, 또 잠들면 그 아이 옆에서 같이 잠들거나 책을 읽는 게 전부였다.


학교 가기 전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최대의 한가함이자 최고의 심심함이고 적막함이었다. 바쁘게 살았던 과거를 생각하면 나는 이 시간을 기뻐서 팔짝 뛰게 좋아했어야 했다. 그러나 정작 나는 퇴근하는 남편만을, 내게 걸려오는 전화 한 통을 눈이 빠져라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남편이 한 번씩 회식이나 약속이 있어서 늦는다고 하면 심하게 짜증을 냈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그 시절 남편도 많이 답답했으리라. 하지만 나 만큼이야 했을라고...


신혼집은 한 층에 여섯 가구가 사는 복도식 아파트였다. 서울에 올라온 지 한 두어 달쯤 지났을까. 나는 드디어 누군가의 눈에 띄었다. 얼레베이터 앞이었다. 나는 1405호. 그녀는 1401호였다.


“저기 아기가 얼마나 되었어요? 우리 딸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저는 1401호 사는데 몇 호에요?”


다정하게 내게 말을 걸어주는 그녀가 눈물 나게 고마웠다. 아 드디어 이 낯선 서울 땅에서 아는 사람이 생겼다. 나는 바로 답했다. 아이는 백일이 갓 지났고, 1405호에 살고 있다고, 그리고 나는 지금 무지하게 심심하며 누군가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는 강렬한 눈빛을 쏘아 보냈다. 그녀는 이런 내 눈빛에 응답이라도 하듯이 자기 집에 한번 놀러 오라고 하였고, 우리는 서로 호감 가득한 인사를 나누고는 방향을 틀어서 각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며칠 후 드디어 그녀가 나를 초대했다. 인터폰으로 전화를 해서 별일 없으면 아기랑 같이 놀러 오라는 거였다. 자기도 심심하다며. 1405호와 1401호는 문 열고 크게 열 걸음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나는 바로 아기를 둘러업고 현관문을 열어젖히고 성큼성큼 걸어서 가서는 1405호의 현관문 앞에서 심호흡을 한번 했다. 그러곤 우리 집 현관문을 열어젖힐 때와는 사뭇 다르게 현관문을 조심스레 똑똑 두드렸다. 이웃집 아기는 자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같은 아파트 같은 층이었으므로 구조는 똑같았지만 그 집에는 많은 짐들이 있었다. 그녀의 딸은 70일 정도 되었는데, 셋째였다. 이미 위로 그 많은 장난감과 책들의 주인공인 오빠가 둘이나 있었다. 그건 바로 그녀가 나와 오래 계속 놀아줄 수 없다는 명백한 증거이기도 했다. 나는 차를 한잔 마시고는 약간은 실망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집으로 돌아와 아기를 앉고 서있는 내 모습과 텅 비어 쓸쓸해 보이던 1405호 우리 집이 아직도 눈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난 그때 내게 주어진 그 한가한 시간을 즐기지 못하고 왜 그리 막막해했을까. 천사 같은 모습으로 잠만 자는 아기를 쳐다보고만 있어도 행복했을 텐데..... 지금 생각해도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다시 내게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할 일이 참으로 많을 것 같은데, 막상 또 어느 낯선 곳에 나 혼자 뚝 떨어진다면 또 그때와 똑같이 되어버릴까?


다행히 1401호의 그녀는 부업으로 OO네트워크 사업을 하고 있어서, 나의 예상과는 달리 나를 자주 불러주었고, 또 우리 집을 찾아주기도 했다. 나는 그녀가 하는 네트워크 사업 설명을 아주 열심히 들어주었다. 그리고 영양제며, 세제며, 정수기 등 집안은 하나씩 그 회사 제품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나의 첫 서울 벗이 되어주었기에 나는 그 고마움을 그렇게 갚아나간 것 같다.


시간은 흘러서 나는 회사에 복직을 하고, 아이는 자라서 어린이집을 다니게 되고, 그렇게 다시 예전처럼 바빠졌다. 서울 온 지 올해로 14년째이다. 내가 초창기 계속 부산으로 내려가고 싶다는 말을 하면 남편은 10년만 지나면 아마도 마음이 바뀔 거라고 했다. 자신도 그랬노라며. 그런 말을 할 때면 나는 콧방귀를 뀌어댔는데, 지금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두 번의 이사 끝에 지금 살고 있는 강북구 삼각산 자락의 재미난 마을을 만났다. 아름다운 자연과 소박한 이웃들이 나의 다정한 벗이 되어주었다. 나의 텅 빈 마음을 꽉 채워주었다. 그래서 이제는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이상 쓸쓸하거나 외롭지 않다.


오늘은 나의 첫 서울 친구가 되어준 1401호의 그녀에게서 사업 설명을 열심히 듣고 물품도 구매했던 것처럼, 나는 이 마을에 어떻게 고마움을 전하면 좋을까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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