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쉬면서 하는 일, 나를 위로해 주는 것들
딸아이가 친구 채율이와 헐레벌떡 집으로 들어오며 다급하게 말했다.
“엄마, 아침에 본 그 아기 고양이 아직도 상자에 그대로 울면서 있어. 같이 한번 가보자. 응?”
그날 나는 휴가였다. 초등 3학년인 딸아이는 걸어서 20여분 거리의 학교를 혼자서도 잘 다녔지만, 그날은 내가 휴가여서 차로 데려다주었다. 학교 근처에 있는 작은 마트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아이를 내려 주었을 때였다. 어딘가에서 다급한 아기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냐오옹, 냐오옹, 이냐오옹......”
주위를 살펴보니 폐박스를 모으는 곳 옆에 어른 무릎 높이의 난간이 있는데, 그 위에 작은 상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박스를 기어 나와 난간에서 떨어져 주차장 바닥에서 가냘픈 다리를 추스르고 있는 아직 털도 듬성듬성한 손바닥 만한 아깽이가 보였다. 나는 얼른 손으로 집어서 상자 안으로 다시 넣어주었다.
딸은 바로 말했다.
“엄마를 잃어버렸나 봐. 우리가 데려가자."
“여기 이렇게 두면 엄마가 찾으러 올 거야. 그리고 누가 여기 두었는지도 모르잖아. 빨리 학교 가.”
나는 이렇게 얼버무리며 그 자리를 떴다.
언제나 아이의 필요에 의해 알뜰살뜰 하루씩 꺼내 쓰던 소중한 휴가였는데, 그즈음부터 나는 아무 일이 없어도 하루씩 휴가를 내서 그냥 집에서 쉬었다. 전업주부가 부러워 그렇게라도 하루씩 전업주부 흉내를 내보았던 것 같다.
아마도 그날 하루를 나는 이렇게 보냈을 것이다.
아이를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는 마트에 들러서 장을 보았을 것이고, 다시 집에 와서는 냉장고 정리를 하고, 또 장본 걸로 반찬도 두어 가지 만들었을게다. 그리고 어질러진 집안을 정리하고, 집안의 구석구석 쌓여있는 고양이털과 나의 머리카락을 물걸레로 닦아내면서 속이 시원해지는 쾌감도 느꼈을 것이다. 그러다 배가 출출해오면 무엇을 먹어볼까 주방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려 보았을 테지. 보통은 냉장고를 뒤져 나오는 나물들에 계란프라이를 붙여서 고추장, 참기름 두른 비빔밥 아니면 파 송송 썰어 넣고 마지막에 계란 탁 깨 넣은 고슬고슬한 라면과 김치다. 그날도 분명 이 둘 중 한 가지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맛나게 먹었을 게다.
배도 부른 나른한 오후, 거실의 흔들의자로 옮겨 앉아 다리를 스툴에 걸치고 의자에 몸을 푹 맡기고 있으면 우리 집 반려묘 큐티란 놈이 기다렸다는 듯이 내 무르팍 위로 냅다 뛰어오른다. 그리곤 말랑말랑한 자기 몸을 내 몸에 한 치의 틈도 주지 않고 밀착시키며 가장 편안한 자세로 안긴다. 아이들이 슬라임을 만질 때 이런 느낌일까? 나는 골골거리며 내게 안겨오는 녀석을 사랑스러운 손길로 쪼그만 이마와 턱을 쓰다듬고, 뱃살을 만져보고, 발바닥을 조물조물거린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을 것이다. 아침에 만났던 그 아깽이. 삼색이었는데...... 엄마를 잘 만났으려나. 상자에 넣어둔 사람이 데려갔으려나. 그러다 스르륵 잠이 들었을 수도.
아이와 함께 다시 그 아깽이를 찾아 나설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나는 어느새 아이와 아이 친구와 함께 그 마트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먹이라도 좀 주고 오자는 아이를 따라서.
9월 말이었지만 한낮엔 쨍하니 더웠는데, 그 야외 주차장 상자 안에서 하루 종일 울고 있었을 손바닥만 한 아깽이를 떠올리니 마음이 급해졌다. 내가 너무 무심했어. 그 상황에서 엄마가 찾아올 리가 없지. 물도 한 방울 못 먹고, 젖도 못 먹고, 혼자서 하루 종일 어찌 보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마구 떠올랐다.
도착해 보니 기진맥진해서 계속 울고 있었다. 살려달라고, 구해달라고 외치는 윽박지름 같았다. 언제부터 거기 있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짐작하는 시간만도 거의 열 시간이 넘었다. 나는 우리 마을 길냥이들의 대모인 캣맘 요요에게 전화를 걸어 이 상황을 얘기했다. 요요는 며칠 동안 임시보호를 해주면 입양처를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바로 상자를 들고 큐티가 다니는 근처 동물병원으로 갔다. 몇 가지 검진 후 의사는 3주 정도 된 것 같으며, 암컷이라고 했다. 다행히 전염성질병에 감염되지도 않았다고 했다. 아직은 분유를 먹어야 할 시기라고 해서 분유와 젖병을 사서 집으로 데려왔다.
이렇게 우리는 첫째 큐티에 이어, 둘째 초롱이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후 주말까지 나와 남편은 번갈아 휴가를 내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같은 종족의 작은 꼬물이에게 자꾸만 덤벼드려는 큐티를 분리를 시키고, 작은방 한켠의 상자 속 초롱이에게 4시간마다 분유를 먹인 후 트림을 시키고, 오줌을 누도록 똥꼬를 물수건으로 톡톡 두드려주고, 똥 묻은 궁둥이를 씻겨주는 것까지 정말 출산하여 아기를 키우는 것 같은 느낌으로 초롱이를 돌봤다. 처음엔 적당한 사람이 있으면 분양을 해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누구에게도 내주기 싫은 가족이 되어버렸다.
초롱이를 데려온 그날 밤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나와 딸아이는 우리가 초롱이를 데려오지 않았으면 그 야외주차장에서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나는 또 생각했다. 아침에 보았던 아기 고양이를 잊지 않고 하굣길에 친구와 다시 가서 살펴본 딸아이의 따뜻한 마음을.
요즘도 직장 일에 지친다 싶을 때면 하루 휴가를 내고 전업주부 흉내내기를 한다. 그러면 두 마리 고양이들이 나를 에스코트하며 졸졸 따라다닌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예뻐 사진을 마구 찍어댄다. 치즈냥 큐티의 노오란 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삼색이 초롱이의 요염한 궁둥이를 두드려주고 있노라면 그냥 좋다. 마냥 평화롭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나는 다시 또 직장으로 출근할 에너지를 얻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