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
새벽 5시, 딸아이는 옆에서 아직 고이 잠들어 있다. 주방으로 가서 정수기에서 시원한 물을 한 잔 받아 마신 후, 내 방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켰다. 얼마 전 마을의 글쓰기 모임에 합류해서 생활 글쓰기를 시작했다. 모임에서 올려준 소재 중 한 가지를 뽑았다. 그리고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려본다.
딸은 재미난학교(대안학교)에서 초등과정을 보내고, 오는 3월이면 집 근처의 공립 일반중학교에 입학할 예정이다. 요즘 아이는 자신에게 다가 올 중학교 생활에 대한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차 있다. 재미난학교의 중등과정에 진학할 것을 권유했던 나는, 얼마 못 가서 실망할 일이 더 많을 것이라고 초치는 소리를 하곤 하지만, 딸에게는 얼마 전 등록한 수학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입학을 앞두고 책가방과 노트, 필통, 형광펜 같은 문구류를 쇼핑하는 이 모든 것들이 다 설렘 그 자체인 것 같다.
어제는 중학교 예비소집일이었다. 예비소집 안내문에는 오전 8시 45분까지 임시반 교실로 올 것과 10여 권의 교과서를 넣을 수 있는 가방을 준비할 것, 그리고 단정한 복장 및 두발을 당부하고 있었다. 몇 번을 꼼꼼하게 읽고 나서
“엄마, 단정한 복장이라는 데 뭘 입고 가야 해? 두발이 뭔가 했더니, 머리모양을 말하는 거구나, 머리 두, 모발 할 때 발....” 전날부터 시끄러웠다.
늦잠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든 겨울방학, 아이는 늘 8시가 넘어서야 겨우 일어난다. 하지만 그 전날 밤엔 꼭 7시까지 깨워달라는 말을 남기고 잠이 들더니, 아침에 “승원아, 일어나~” 한마디에 벌떡 일어나서 씻으러 갔다.
방학이라 항상 내가 먼저 출근했는데, 어제 아침엔 딸이 먼저 나섰다. 머리는 단정하게 묶었고, 옷은 늘 입던 대로 맨투맨티와 청바지 위에 지난 가을 당근에서 구매한 검은색 패딩을 걸쳤다. 교과서를 담을, 평소 메고 다니던 검정색 백팩을 장착한 채, “엄마~, 갔다 올게”를 외치며 늦지 않으려고 잽싸게 집을 나서는 딸을 보며, 나는 잘 다녀오라며 활짝 웃어주었다.
저녁에 퇴근해서 오니 학교에서 받아온 교과서를 주방의 둥근 식탁 위에 늘어놓고는 책 표지가 너무 예쁘다며, 특히 음악책이 제일 예쁘다며 보여주었다. 자신이 아는 대중가요도 많이 실려있다고 하며 흥얼거리기도 했다. 자기소개서를 써야 한다며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최대한 예쁜 글씨로 써 내려가다가, 엄마가 작성해야 할 것도 있다며 설거지하고 있는 내게 들이밀었다.
중학교 가는 것을 이렇게 기쁘게 받아들이는 아이가 2025년 대한민국에 또 있을까 싶다.
“엄마, 교실에 칠판이 세 개나 있었어. 그냥 분필 칠판 하나, 그리고 화이트보드, 또 하나는 전자 칠판, 운동장에는 잔디가 깔려 있었는데 생각보다 크지는 않더라” 평소 수다스러운 아이가 아닌데, 꽤나 많은 말을 토해냈다.
밤에 자려고 누웠더니 딸아이가 자기 방에서 같이 자자고 쪼르르 달려왔다. 6학년이 되면서부터 잠자리를 분리했는데, 틈만 나면 아직도 나 아니면 아빠와 같이 자기를 시도한다. 자기 전 혼자서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좀 하려고 했던 내가 “그냥 자”라고 하니, “엄마, 얼마 안 남았어. 사춘기 오면 이것도 끝이야. 불러줄 때 와야지” 하며 엄포를 놓는다. 그 엄포는 정말로 내게 그대로 딱 적중하여, 나는 중형 선고를 앞둔 죄인처럼 바로 딸의 방으로 소환되었다.
같이 침대에 누워, 많이 컸지만 아직은 여릿여릿한 아이를 한껏 끌어안아 본다. 엉덩이도 주물러보고, 등도 쓰다듬어보고, 머리카락도 만져본다. 딸이 소곤댄다.
“엄마, 내가 재미난 중등 안 가서 속상하지? 미안해..... 근데 나는 재미난 중등도 좋지만 일반학교도 너무 가보고 싶었어”
아이가 멋쩍은 듯 내뱉는 그 한마디가 내 마음을 뭉클하게 했지만, 난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맞장구를 쳤다.
“아니, 네가 일반학교 가서 나도 좋아. 반모임도 안 가고, 학교 청소도 안 가고, 도서관마법사 모임도 안 가고, 얼마나 좋냐? 엄마에게 자유를 줘서 고마워~”
“힝~ 나는 엄마가 반모임에 가고, 도서관마법사 활동도 하고, 아빠가 학교청소 가고 하는 게 참 좋았는데....., 앞으로도 엄마는 마을에서 계속 재밌게 지내는 거야.”
이런 얘기를 두런두런 나누다 언제 잠이 들어버렸을까. 휴대폰 알람소리에 부스스 일어났다.
이른 아침 조용히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나의 작은 서재와 딸아이가 고이 잠든 방이 있고, 매일 저녁 나와 남편, 딸 세 사람의 작은 소란이 일어나는 거실과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 이야기꽃을 피우는 둥근 식탁을 품은 주방이 있는, 재미난 마을 속 자그마한 우리 집이 오늘 아침 한없이 편안하고 소중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