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세상을 위해 지키고 싶은 가치

by 은효

‘이번 토요일에는 꼭 나가리라’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다.

점심을 든든하게 먹은 후, 백팩에 낡은 요가 매트를 잘라서 만든 깔개와 따뜻한 물 그리고 간식 몇 가지를 챙겨 넣고, 마지막으로 [윤석열 탄핵]이라는 문구가 적힌 야광봉을 넣었다. 오늘은 남편과 딸아이도 같이 나가기로 했다. 아랫집 쪼코네도 두 아들과 함께, 같이 가자고 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던 대통령이 지난주 구속이 취소되어 구치소를 유유히 걸어 나왔다. 구속 일수를 날로 계산하지 않고 시간으로 계산하는 형사소송법 제정 이래 초유의 계산법을 적용하여 판사는 그를 풀어주었다. 그리고 검찰은 즉시항고를 포기했다. 대한민국의 법은 만인이 아니라 만 명에게만 평등하다고 꼬집었던 고 노회찬의원의 말이 떠올랐다. 이건 만 명도 아닌 딱 한 명을 위한 법이구나. 도저히 이럴 수는 없는 것이었다. 지난 1월 공수처의 구속영장 집행을 거부하며 관저를 요새화시켰을 때도, 왜 저자만이 법 위에 군림하며 경찰은 왜 강력하게 대처하지 못하는지 분노가 치밀어 올랐었다. 그리고 그냥 앉아서 분노만 하고 있을 수 없어 광장으로 나갔었다.


작년 12월 3일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이후, 매주 토요일이 되면 마을 커뮤니티 장터방에는 어김없이 재미난 마을 깃발의 위치를 알리는 메시지가 올라온다. 그러면 시간이 맞는 마을 사람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광화문행 전철을 탄다. 나도 시간이 될 때마다 참여를 했었다.


우리는 많은 집회 참가자들로 복잡할 것을 예상하여 종각역에서 미리 내려 광화문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가다 보니 한쪽에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탄핵반대파들의 모습도 보였다. 답답한 마음이 올라왔지만 갈 길을 재촉했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과 몇 번의 통화 끝에 재미난 마을 깃발을 찾아서 합류할 수 있었다.


아이들 대여섯 명 어른이 열 명 남짓, 아는 얼굴들이 두 줄로 나란히 앉아있었다. 반가움에 손을 흔들며 우리도 그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변에는 연인, 친구, 또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어린아이들도, 어르신들도 많이 보였다. 서로 간식을 나눠먹기도 하고, 휴대폰 게임을 하기도 했다. 뜨개질을 하는 여성도 있었다.


대형화면을 통하여 사람들이 한 명씩 나와서 발언을 하는 모습이 나왔다. 비상계엄 이후 너무도 피곤하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집회에 나오고 있다는 20대 여성 등 일반 시민들을 비롯하여 여러 단체의 대표, 국회의원, 그리고 단식을 하고 있는 윤석열탄핵 비상대책위 분들도 단상에 올라 발언을 했다. 발언 후에는 가수들의 신나는 노래 공연이 이어졌다. 그리고 중간중간 사회자가 구호를 선창 하면 우리도 따라 구호를 외쳤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수많은 깃발들이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며 나부끼고 있었다.


날이 저물고 앉아있기가 좀 힘들어질 때쯤 행진이 시작되었다. 응원봉을 흔들며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며 수많은 인파가 서로의 거리를 유지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촛불혁명에 이어 이번엔 빛의 혁명이라고 했다. K-팝에 이어 K-시위문화를 세계에 알리게 된, 응원봉으로 어둠을 밝힌 시위 행렬은 장엄 그 자체였다.


최루탄과 화염병, 짱돌이 난무하던 30여 년 전의 집회 현장을 경험했던 나는 이렇게 남녀노소가 어우러진 평화로운 집회가 가능하다는 것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어느새 아빠보다 더 훌쩍 커버린 아랫집 중2 헌이가 마을 깃대를 부여잡고 흔들었다. 딸 승원이가 “윤석열을” 선창 하면 우리는 깃발을 따라 걸으며 “파면하라”를 외쳤다.


80년 5월 광주가 떠올랐고, 얼마 전 읽은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 사람들, 피 흘리며 상처투성이가 되어 먼저 가신 그분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평화로운 행진을 할 수 있구나. 나는 ‘그 엄청난 희생의 대가로 누리는 이 아름다운 평화를 그렇게 어이없이 빼앗길 순 없지. 꼭 지켜내야 한다.’ 다짐하며 사람들의 물결을 따라 걸으며 목청껏 구호를 외쳤다.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회사 사무실에서 유튜브를 통해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를 귀 기울여 듣다가, 문형배 헌재소장대행이 마지막 이 주문을 읽어내렸을 때, 어찌나 기뻤던지 옆에서 같이 듣던 동료에게 하이파이브를 날렸다. 지난해 12월 3일부터 시작된 123일간의 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당연한 결과를 이렇게 기뻐해야 하다니......





이 글을 쓰는 동안 김남주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라는 노래가 계속 입가에 맴돌았다. 참 많이 듣고 따라 부르던 노래였는데,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 노랫말이 다 기억이 나지 않아서 유튜브 검색을 해서 들어보았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투쟁 속에 동지 모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동지의 손 맞잡고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주자

해 떨어져 어두운 길을 서로 일으켜주고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


‘투쟁’, ‘동지’라는 단어들이 민주주의가 꽃 피고 생태와 상생이 화두가 된 이 시대에 낯설게 다가왔지만, 이 노래가 불리던 시절을 떠올리니 감회가 새로웠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 노랫말처럼 서로 손 맞잡고 가면서 힘들면 끌어주고, 그래도 힘들면 쉬었다 가게 배려해 주고, 그리하여 모두가 함께 행복해지는 그런 세상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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