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유럽을

-나의 '최애'와 가고 싶은 곳

by 은효

30년도 더 전 내가 스물두어 살 먹었던 것 같다. 그때 TV에서는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유럽의 곳곳을 다니며 여행하는 대학생들을 찍은 다큐 영상물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1980년대까지 막혀있었던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90년대의 많은 대학생들이 해외로 나섰던 것이다. 특히 앳된 여대생이 혼자서 무거운 배낭을 메고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길거리에서 빵으로 끼니를 때우며 씩씩하게 각 나라의 명소들을 찾아다니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나도 저렇게 자유롭게, 호기롭게 돌아다니고 싶었다. 도대체 저들은 어떻게 떠날 수 있었던 거지? 인터넷도 변변한 여행 서적도 없던 시절이었다. 도저히 혼자서는 자신이 없어서 친구 한 명을 꼬셔서 같이 가자고 해보았다. 3박 4일 지리산 종주를 함께했던 그 친구는 흔쾌히 같이 가겠노라 했다. 신문사에서 주관하는 해외여행 설명회 같은 델 같이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대답만 화끈했고, 우리의 약속은 흐르는 시간 속에서 흐지부지되었다.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면서 유럽여행은 그냥 오롯이 꿈으로만 남게 되었다. 그렇게 30년도 넘는 세월이 흘렀다.


딸을 낳고 육아휴직을 하고 집에서 쉬던 시절 이런저런 책들을 많이 봤었는데, 그때 읽은 책들 중에 여행책도 있었다. 제목도 작가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분식집을 운영하던 엄마와 실직을 한 아들이 어느 날 의기투합해서 1년간 해외로 배낭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였다. 중국을 시작으로 해서 동남아시아를 여행하고 인도와 중동을 거쳐서 유럽까지 가는 경로였다.


아들은 해외여행의 경험이 있었지만 60대의 엄마는 여행도 처음이었지만, 해외여행 그것도 배낭여행은 온전히 새로운 세계였다. 힘들 법도 한데 아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가방을 끝까지 메고 다니던 엄마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착하고 다정한 아들이 엄마를 위해 함께 가는 것 같았지만 긴 여행의 어느 지점부터인가는 젊은 아들보다 나이 든 엄마가 더 씩씩하게 앞장서서 그 여행을 즐기며 다녔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그 책을 읽고 오래전 흐지부지 되었던 유럽 여행 계획을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 이제는 친구가 아닌 내 옆에서 꼬물거리며 자고 있는 딸과 함께 도모하기로 했다. 딸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계획부터 세우는 것이다. 계획의 시작은 여행 경비를 모으는 것. 나는 그날 이후로 매월 10만 원씩을 유럽 여행을 위해서 모으고 있다.


다음으로 언어. 통역앱이 기능도 좋고 유용하다지만 내 귀와 내 입만 하랴. 집 근처 도서관에서 주부를 대상으로 하는 ‘잉글리쉬카페‘라는 영어회화 모임에 등록을 해서 학교 졸업 이후 입 밖으로 소리내보지 않았던 영어말하기에 도전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영어라는 화두를 잡고 있지만 아쉽게도 드라마틱한 성장을 보여주지는 않고 있다.


그래서 다른 길을 모색했다. 바로 딸을 교육시키는 것. 딸이 초등 2학년이 되었때 아이를 앉혀놓고 말했다


“딸아~ 엄마랑 나중에 해외여행 가지 않을래?”

“응~ 좋아”

“그러러면 영어를 잘해야 해. 외국은 영어를 많이 쓰고, 영어를 쓰는 나라가 아니더라도 영어를 할 줄 알면 훨씬 편하게 다닐 수 있어. 엄마랑 영어공부 같이 해보자”

“응~ 알았어”


순진한 딸은 이렇게 영어를 시작했다. 자신 앞에 놓인 험난한 길은 알지 못한 채 엄마의 꼬드김에 넘어가서 기꺼이 승낙을 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우여곡절 많았던(실력 없는 엄마는 딸을 많이 혼냈고, 많이 울렸고 또 많은 화를 냈다.) 엄마표 영어는 1년이 채 안되어 마무리되었고, 우리는 진정한 선생님을 찾아 나섰다. 딸의 영어를, 우리의 유럽여행을 망칠 것 같은 불안이 엄습해 왔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우리 마을엔 없는 것 빼곤 다 있었다. 재미난 학교 학부모였던 해님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딸에게 영어와 함께 공부에 대한 여러 가지 가르침을 주는 좋은 멘토가 되어주고 있다.


엄마표의 조기종료로 딸은 이제 제법 영어로 말하기를 한다. 그리고 내가 못 알아들은 영어를 알아듣기도 한다. 이렇게 오륙 년 더 하면 유창하지는 않더라도 여행에서 길잡이 정도는 되어 주겠지.


다음으로는 체력. 나의 저질 체력으로는 국내여행도 장기간 가는 건 어렵다. 긴 시간 비행기를 타고, 많은 곳을 돌아다니려면 체력은 필수이다. 요가에 이어 최근에는 달리기를 추가했다. 매일 아침 출근 전 40분 정도를 달린다. 여력이 된다면 헬스도 추가해 볼 생각이다.


이렇게 준비는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누군가는 내일이라도 훌쩍 떠날 수 있는 유럽을 30년도 전부터 꿈꾸다가 10년도 전부터 또 준비를 해오고 있다. 앞으로 6년이 더 남았다.


못해도 6개월은 딸과 함께 유럽의 곳곳을 여행할 것이다. 튀르키예, 그리스, 헝가리, 체코, 오스트리아, 폴란드,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포르투갈과 스페인.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유럽엔 나라들도 참 많다. 국경을 걸어서도 넘어갈 수 있다고 하니 휴전선에 막혀 외딴 섬 같은 남한 땅에서만 평생을 살아가고 있는 나로서는 신기로울 뿐이다.


6년 후 그날을 위해 매월 저축을 하고, 매일 아침 달리기를 하고, 앱으로 영어공부를 한다. 딸과 함께 유럽의 거리를 거닐 그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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