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

- 죽기 전 먹고 싶은 음식 한 가지

by 은효

얼마 전 가수이자 배우인 아이유 주연의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눈시울을 붉히며 폭싹 재밌게 보았다. 제주도가 배경인 이 드라마의 제목 [폭싹 속았수다]는 “매우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뜻의 제주도 방언이라고 한다. 오랜만에 매주 기다려가며 실시간으로 본 드라마였다.


그리고 주인공 금명의 엄마 오애순과 아버지 양관식을 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나의 엄마와 아버지를 떠올렸다. 나는 한동안 부모님을 잊고 지냈다. 사는게 무엇이 그리 바빴던 걸까. 꿈속에도 잘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이 드라마를 보면서 자주 부모님과의 추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 시절 대부분의 집들이 그랬겠지만 내가 어릴 적 우리 집도 많이 가난했다. 채석장 노동자이셨던 아버지는 언제나 새벽에 일터로 나가셨지만, 벌이는 시원치 않았다. 엄마는 늘 몸이 좋지 않았고, 그래서 다른 엄마들처럼 살림을 야무지게 해내지 못하셨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버지의 일은 다른 직장인들처럼 일정하게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일이 없을 때는 여러 날을 집에 계셨다. 그리고 바깥에서 하는 일이어서 비가 오는 날도 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일을 하지 못하는 날들을 부모님은 걱정스러워했지만 어린 나는 마냥 즐거웠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집에 있는 날은 손이 느린 엄마의 부엌일을 아버지가 대신했기 때문이다.


입이 짧았던 엄마는 안 먹는 음식이 많았다. 특히 어린 우리 형제들이 좋아할 만한 밀가루 음식이나 기름에 볶은 음식, 육류가 들어간 음식들을 거의 드시지 않으셨다. 그래서 엄마의 음식은 나물, 겉절이, 된장국 같은 담백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멸치볶음과 생선구이 같은 게 그나마 구미를 당기게하는 음식이었다.


반면에 아버지는 그동안 한 일에 대한 급여를 받은 날엔 돼지고기를 사다가 찌개를 끓여주기도 하고, 비가 오는 날엔 밀가루 반죽을 해서 여러 가지 전을 구워주기도 하셨다. 냉장고가 없던 그 시절 집에 별다른 식재료가 없어도 아버지는 언제나 새로운 요리를 시도해서 우리들의 밥상을 먹음직스럽게 채워주었다. 그래서 나에게 아버지가 쉬는 날은 곧 집에 먹을거리가 풍성해지는 날을 뜻했다.


아버지의 음식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김밥이다. 나보다 열다섯 살이 많은 큰오빠가 20대이던 시절 1년 정도 다닌 직장이 있었다. 그 회사는 구내식당도 또 근처에 적당한 식당도 없어서 점심 도시락을 싸다녀야 했었다. 매번 밥과 반찬이 있는 도시락을 싸기가 힘들었던 아버지는 매일 새벽 일어나 정과 망치로 굳은살이 베긴 두툼한 손으로 김밥을 싸놓고 일터로 나가셨다.


그 김밥은 우리가 흔히 보는 오색을 갖춘 맛깔스러운 김밥은 아니었고, 기본 재료는 쉬어진 김장 김치를 씻어서 기름에 살짝 볶은 묵은지볶음이었다. 거기에 계란과 어묵 정도가 더 들어갔던 것 같다. 때에 따라서 재료가 조금씩 달라졌지만, 어쨌든 주재료는 양념을 제거한 묵은지볶음이었다. 보기에는 별로 맛있어 보이지 않았는데, 먹어보면 신기하게 감칠맛이 있었다.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고 남은 꽁지를 먹는 재미가 있었다.


요즘 유명한 김밥집에서 땡초김밥이니 멸치김밥 같은 특성화된 김밥을 보면 그 옛날 아버지의 묵은지김밥이 떠오른다. 그리고 나도 김밥을 쌀 때 일반적인 김밥보다는 김치를 꺼내서 볶고, 냉장고의 숨은 재료들을 찾아서 속재료를 준비할 때가 더 많다. 딸아이도 내 음식들에 대하여 엄격한 평가를 내리는 편이지만 김밥만은 밖에서 사서 먹는 것보다 엄마의 김밥이 훨씬 맛있다고 한다.


우리 엄마는 요리에는 재능이 없으셨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엄마의 음식을 맛있게 먹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의 소울푸드는 엄마의 것이다.


그건 바로 김칫국.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 속에 배인 김치의 시큼한 향과 콩나물의 시원함, 그리고 김치국물의 얼큰함이 혼합된 국물 맛에 대한 기억은 나의 세포 속에 박혀버린 것 같다. 엄마는 해마다 겨울이 되면 백 포기 넘게 김장을 했다. 하지만 김치냉장고가 없던 시절 그 많은 김치들은 음력설이 지나고 나면 쉬어서 더 이상 그냥 김치로 바로 먹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아버지는 그 쉬어진 김치로 김치볶음을 자주 해주셨다. 하지만 엄마는 늘 멸치 넣고 우린 육수에 콩나물과 김치를 썰어 넣고 국을 끓였다. 그때는 한겨울부터 김장김치가 바닥을 드러내는 이듬해 봄까지 줄기차게 먹어야만 했던 그게 맛있는 줄 몰랐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김칫국의 얼큰 시원한 맛이 점점 좋아졌다. 어디서든 김칫국 냄새를 맡으면 부모님과 우리 남매들이 밥상에 둘러앉아서 김칫국을 앞에 두고 달르락 달그락 스텐그릇을 부딪히며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흑백영화의 한 장면이 되어 떠오른다. 가난하고 초라했던 그 시절이 삭제하고 싶은 순간이 아니라 김칫국과 함께 따뜻하게 포장되어 내게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나도 매년 11월 말이 되면 어김없이 김장을 한다. 여기에는 김치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요리에 대한 욕심이 들어있다. 그리고 돼지고기 숭덩숭덩 썰어 넣은 김치찌개를 비롯하여, 아버지가 해준 김치볶음과 묵은지 김밥에 대한 추억이 있고, 엄마의 김칫국에 대한 그리움이 섞여 있다.


지금은 두 분 모두 안 계신다. 아버지는 내가 스물여덟 살 되던 해인 1998년 여름에, 엄마는 내 나이 마흔다섯이던 2015년 늦은 가을에 내 곁을 떠나가셨다.


죽기 전 한 가지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다면, 나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싸준 묵은지 김밥에 엄마가 끓여준 김칫국을 곁들여서 먹어보았으면 좋겠다. 얼마나 설레고 행복할까. 나는 이 음식을 맛있게 먹고 곧 그분들을 만나러 간다. 이렇게 맞이하는 죽음은 두려움이나 슬픔이 아니라 반가움과 기쁨일 것 같다.


평생 고된 육체노동에 시달리셨지만 힘든 내색 없이 품위를 지키셨던 우리 아버지, 늘 심신이 병약하여 삶이 고단했어도 우리 오 남매를 키우는 재미로 살았노라던 우리 엄마.

살아계실 적 제대로 전하지 못했던 말.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보고 싶습니다.”를 또박또박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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