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의 의도치 않은 불효
2018년 말 직장을 잡아 미국에 왔을 때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으니, 바로 부모님이 연세가 들어가신다는 점이었다. 그때만 해도 엄마는 50대 후반, 아빠는 60대 초반이셨으니 당연히 너무 젊으시다고 생각했었고, 평생 (지금까지도) 비교적 건강하셨기 때문에 부모님이 연세가 들어가신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리석게도.
2018년 4월 경쯤. 여러 생각을 한 후에 "나, 미국에 가야 할 것 같아"라고 나름 폭탄선언을 했었다. 그때는 내가 정말로 미국으로 가게 될지 명확하지 않았을 때라 별 생각이 없었고 일단 나의 생각을 말씀드린 것뿐이었다. 몇 달 후 10월 경, 다 결정되고 미국으로 출국하기 직전, 내가 미국에 간다는 것이 사실 너무 많이 섭섭하다고 엄마가 말씀하셨을 때 나는 사실 깜짝 놀랐다. 아마도 그 해 내가 처음 말을 꺼냈을 때 그런 반응이셨다면 미국행을 재고려 했을 것이다. 왜 진작 말씀 안 하셨냐 여쭤보니 너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우리가 이야기하겠니,라고 하시며 말끝을 흐리셨다.
"Slipping through my fingers all the time
I try to capture every minute
The feeling in it
Slipping through my fingers all the time"
- ABBA의 Slipping through my fingers
반면에 아빠는 어릴 때부터 나에게 늘 더 넓은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당시 수년 전 뉴질랜드에 여행을 다녀오시고 나서는 너네도 그런 환경에서 지냈으면 좋겠다,라는 말씀도 하신 걸로 기억한다. 그런 말씀들을 듣고 자랐고 또 나도 어릴 때 미국에 살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외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크게 새로운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나 나는 미국에 직장을 구해서 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름 자랑스러워하셨던 것 같고, 엄마는 섭섭해하시지만 아빠는 그런 것 없다,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미국에 와서 약 일 년 반 정도 이후, 코로나라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변수가 발생했다. 부모님이 미국에 못 오시니 나는 당시 결혼식을 무기한 연기해야 했고 (결국 약 일 년 반 뒤 부모님이 미국으로 오셔서 우여곡절 끝에 잘 치르긴 했지만), 무엇보다 무려 2년 반이나 한국에 가지 못했다. 미국에 처음 올 때만 해도 몇 개월에 한 번은 한국을 갈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코로나 상황 및 여기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며 일 년에 몇 번씩 한국을 나가는 것은 어쩌면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몇 년이 훌쩍 흘렀고, 부모님도 한해 한해 나이가 들어가심이 이제는 보인다. 작년에는 다행히 여러 제한이 풀려 한국을 두 번 다녀왔었는데, 매번 유독 아쉬워하고 섭섭해하시는 부모님을 보면 나의 마음이 좋을 리 없다. 미국에 가져갈 반찬을 정성스레 꽁꽁 싸고 계신 엄마는 아이고, 한국에 살았으면 늘 이런 반찬 먹을 수 있을 텐데, 하며 늘 안타까워하신다 (아무리 밥을 잘 먹고 다닌다고 말씀드려도 소용없다!). 혼자 미국으로 다시 떠나는 막내딸 배웅하러 여러 짐 싣고 인천공항까지 오시는 아빠도 이제 한국 나이로는 노인으로 불린다.
작년 10월 한국에서 미국으로 다시 들어오는 공항에서는 일찍 도착해서 아빠랑 점심도 먹고, 짐을 다 체크인하고도 시간이 꽤 남았었다. 출장 차 아시아에 온 김에 한국에 들렀던 터, 긴 2주가 끝나고 사실 나는 굉장히 피곤한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체크인해서 라운지도 들려보고 아이쇼핑도 좀 할 것이 있을까 하고 입국심사하러 들어가려는데, 아빠는 어딘가 머뭇머뭇, 커피나 한잔 할까, 낮은 목소리로 물어보신다. 비행기에서 푹 자야 하는 데 무슨 커피에요, 말씀드리고 조금 앉아있다가 이제 인사를 하고 입국심사장으로 들어갔다 - 아빠, 이제 몇 달 뒤면 또 보잖아요, 금방 또 올게요. 이제 코로나 제한도 풀렸으니 엄마아빠가 필요할 때 언제든지 올 수 있어 -라는 말을 남기고.
그렇게 인사를 한 후 뒤를 돌아보니 아빠는 입국심사장으로 들어가는 나를 사진 찍고 계셨다. 아마 내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주위를 서성이고 계셨을 것이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를 찾으러 가는데 조금 뒤에 아빠와 통화를 하신 엄마가 전화가 오셨다. 아빠가 말씀하시기에 이제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이번에는 많이 섭섭하다,라고 말씀을 하셨다고 전해주셨다. 나는 티는 안 냈지만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리고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외국으로 기약 없이 나가는 딸의 뒷모습을 보고 뒤돌아 가시는 당신의 마음은 어땠을까 하고. 자주자주 올게요라고 말씀드려도 그게 한국에 사는 것과 같으냐,라고 처음으로 내뱉으신 섭섭한 기색. 문득 부모님이 이제 정말 연세가 들어가시는구나,라는 현실이 느껴진다. 마스크 밑으로 떨어지는 눈물을 혹시나 누군가 눈치챌까 휴지만 만지작 거리며 비행기 창문 밖만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이 같은 심정은 나와 같이 소위 외국인 노동자, 혹은 외국에 살고 있는 모든 분들은 다 어느 정도 공감할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한다. 커리어 및 개인의 발전을 위해 선택한 미국행이지만 문득문득 잘 한 결정인지,라는 생각이 든다. 명절이나 어버이날 등의 기간에는 더욱이 멀리 있는 가족 생각이 많이 나고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서든 잘 지내고 있는 게 최고의 효도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하루하루를 지낼 수밖에 없다. 더 큰 세상에서 살아보아라,라고 하셨던 부모님의 바람대로 앞으로 나아가면서. 정체되지 않고 배우고 성장하면서. 자랑스럽지는 못해도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드리리라.
나는 5년 전에는 내가 미국에 살게 될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었다. 따라서 앞으로의 5년 후에는 내가 어디에서 어떻게 지낼지 모르는 일이다. 계속 미국에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한국에 귀국할 수도 있다. 혹은 전혀 다른 제 3국에서 다른 인생을 시작 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 때로는 이것이 오히려 묘한 위안이 될 때가 있다. 그때는 부디 의도치 않은 불효를 하지 않는 내가 되기를 바라면서..
"건강한 모습으로 곧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