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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cho Feb 28. 2023

내가 어떤 일을 원하는지 모를 때

애매한 경계에 있는 우리 모두의 고민 

어릴 때부터 항상 듣는 질문이다. 커서 꿈이 뭐니, 커서 뭐 하고 싶니? 


그리고 요새 부쩍 후배분들께 많이 듣는 질문이다. 어떤 직업을 구해야 할지,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등


물론 어릴 적부터 적성 및 꿈이 뚜렷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자기의 커리어 path가 뚜렷하게 보이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경우는 매우 운이 좋은 케이스이고, 대학 전공 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에 나와서도 이 일이 나의 적성에 맞는지, 아니면 내가 평생 업으로 삼을만한 일인지 확신이 안 설 때가 많다. 


나 역시 그랬다.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거기에다가 무엇을 잘하는지 조차 확신이 안 들 때가 많았다. 학생 때에는 이과 전공생이긴 하지만 사회 인문학 수업이 더 재미있었고 취업 준비를 할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몰랐다. 일을 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역시 이 고민은 계속된다. 내가 하고 싶은 업은 무엇인가? 




나는 이러한 고민을 하는 분들에게는 좋아하고/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는 것보다, 무엇이든 무조건 도전 한 이후에 원하지 않는 것을 cross out 하고 다른 도전을 해 보며 자기에 대해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예컨대 나는 학부 2학년 말 처음 인턴을 리서치 펌에서 했다. 리서치 펌에 뜻이 있어서라기보다 내가 지원 한 곳 중 나를 받아 준 곳이 그곳뿐이었기 때문이다. 2달 정도 짧은 기간 인턴을 한 이후 리서치 회사에서 더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크게 들지 않았고, 그 이후에는 리서치 펌을 지원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주 첫 사회생활이라는 뜻깊은 경험을 했고, 그 인턴을 발판 삼아 또 다른 인턴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 이후에도 이야기는 비슷하다. 그 이후 인턴은 각각 외국계 기업, 그리고 금융사였는데, 외국계 기업에서 일한 후에는 한국에 본사가 있는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금융사에서 일한 이후에는 금융 쪽은 내 커리어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만 보면 무엇을 하든 다 싫었다는 느낌이 들었을 수도 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각각의 기회에서의 배움이 분명히 있고 내가 무엇을 원하지 않음을 배움으로써, 역설적으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비록 이 세 번의 인턴의 경험에서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배웠지만, 또한 그 경험이 어느새 경력이 되어 그다음 인턴을 구하는 과정, 그리고 졸업 후 직장을 구하는 과정이 조금 더 수월했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에는 대학원 졸업 직전에 대기업 (굳이 따지자면 제조업)에서 마지막 인턴을 하고, 그곳에서 4년 정도 정규직으로 일을 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작은 B2B 외국계 기업 지사로 이직하였다. 거기에서는 내가 전에 하던 일과는 전혀 다른 고객 컨설팅 쪽이었는데, 2년 정도 일을 하니 고객 상대를 하는 업은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배우고 회사 내 전배 (물론 미국으로의 이직이었지만)를 했다. 지금은 다시 B2C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 약 1년 전에 큰 B2C 대기업으로 이직했다. 


이처럼 나의 커리어는 직선이 아닌 여러 곡선으로 이어진 길이었지만, 각각의 경험을 통해 내가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 무엇을 못하는지를 배움으로써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이 알아가는 하나의 여정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지금 커리어를 시작하는 사회 초년생이나, 한참 커리어를 쌓아가는 분들께 지금 하고 있는 업이 크게 마음이 안 든다고 하더라도 조급해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이것 또한 나 스스로에 대해 배우는 여정이기에 지금 경험을 토대로 다음 일을 더 신중히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인 싱어게인 시즌 1의 우승자인 이승윤 님의 말이 참 마음에 와 닿았던 기억이 있다. 


"저는 아티스트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대중적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그런 애매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지금은 그 애매함 덕분에 더 많은 이들을 대변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저는 운이 좋아 먼저 이렇게 무대에 서게 됐지만, 무대 밖에 경계에 서있는 분들을 위해 여기 주단을 깔고 기다리겠습니다"
- <싱어게인>, 30호 이승윤 가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무대를 앞두고 


싱어게인에서 BTS의 소우주를 부르고 있는 가수 이승윤 



나 역시 긴 시간 이과 출신 업무를 하며 살아왔지만 완전 technical 하다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완전 business oriented라고 하기도 애매한 나의 위치에 한동안 자괴감을 느끼곤 했다. 지금은 technical/business 그 중간 어디쯤은 product operations 쪽에서 일을 하고 있고, 아직 이직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는 만족하며 일을 배우고 있다. 어쩌면 나의 그 "애매한" 포지션 때문에 지금 이 업을 더 잘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운이 좋은 소수를 빼고는 많은 사람들이 애매한 적성, 재능이 융합되어 있다. 우선은 이러한 애매한 재능으로 여러 기회에 도전해 보고, 그 기회에서 어떤 점이 싫은지 (혹은 좋은지) 깨달은 이후, 그 배움을 기반으로 다음 기회를 선택해 나간다면 우리처럼 애매한 사람들도  꼭 맞는 포지션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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