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고 외우고 연습하기, 반복!
어떻게 일이 년 잘 버티던 미국에서의 첫 회사생활에서 약간의 위기의 순간이 닥쳤다. 내가 담당하는 업무 결과가 꽤 중요기 때문에 우리 VP에게 직접 보고를 하라는 것이었다. 30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고 그냥 캐주얼하게 준비하라는 말과 함께.
아무리 자유로운 분위기라고 하지만 VP에게 어떻게 캐주얼하게 보고를 하라는 말인가? 나는 곧바로 패닉 하기 시작했다. 이제 동료들과의 업무는 어느 정도 잘 이끌어 가고 있다고 느끼게 될 때쯤, 나에게 이런 시련이 찾아온 것이다. 발표 자료를 만드는 것은 둘째 치고, 그동안 인사만 가볍게 하던 VP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인상을 남기고 어떤 식으로 발표를 해야 하는지 너무 막막해 그 지시를 받은 날부터 잠을 설치기 시작했다.
한국에 있을 때도 몇 번의 큰 발표를 하게 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보니 나는 스크립트를 항상 준비했었다. 나의 모국어인 한국말로도 조리 있게 발표하는 게 떨리고 힘들었기 때문에, 아예 내용을 통째로 스크립트를 쓰고, 그것을 외우고, 연습하고, 그대로 발표했었던 것이다.
그러면 내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더 많이 연습하고 준비해야 했다. 나는 발표 자료를 만들면서 스크립트를 같이 쓰기 시작했고, 때에 따라 나올 농담이라던가, 혹시 모를 질문들 리스트도 만들어 그에 대한 대답들도 죄다 적었다. 여러 번의 퇴고 끝에 만족할만한 스크립트가 나오면 그것을 외우고 연습하고, 카메라까지 틀어놓고 녹화를 해서 내 모습이 어떤지 보기도 하였다. 하나의 발표를 위해서 지나치게 준비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그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발표 보고는 좋은 분위기에 잘 마무리가 되었고, 그 덕분에 몇 주에 한 번씩은 정기적으로 보고해야 하는 시련이 다시 찾아왔다.
당연할 수도 있지만 정말 놀라운 것은 두 번째 준비할 때는 첫 번째보다 훨씬 덜 고통스러웠다는 점이다. 이미 발표할 포맷을 생각해 두었고, 어떤 분위기인지 파악을 한 것도 있었겠지만, 약간의 자신감이 붙어 스크립트를 훨씬 더 빨리 쓰게 되고, 외우는 것도 더 빨리 하게 되었다. 연습을 첫 번째처럼 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들도 있었다. 세 번째는 준비과정이 더 쉬웠다. 첫 번째 발표처럼 문장 하나하나까지 다 스크립트로 적을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다음부터는 bullet point 몇 개로 발표 내용을 정리하게 되었고, 어느새 부터는 발표하는 것이 더 이상 큰 스트레스가 아닌 그냥 정규적인 업무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Never forget the power of practice"
- Stephen Curry
이 모든 과정이 단 몇 개월 만에 일어난 것이라는 실로 놀라운 점이다. 아마 처음 준비 할 때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그 역치가 더 낮아진 것일 수도 있겠지만, 확실한 것은 반복을 하다 보면 나아진 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발표하는 것이 떨린다. 그러나 그때 처음 맡은 때처럼의 극도의 스트레스는 없고, 그냥 내가 맡게 될 업무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정도다. 난 그래서 그때의 그 임원에게 발표하고 보고 할 수 있었던 것이 정말 감사한 경험이라는 생각을 한다. 짧은 시간의 고통이 있었지만 그만큼 성장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여러 번의 발표 경험이 나에게 큰 자신감이 되었는지, 그때의 이후에 어쩐지 업무와 회의를 이끌어가는 것도 훨씬 수월했고, 어떤 기점이 되어 업무에 더 능동적으로 임하게 되었다. 성장이 계단식이라면 그때 마치 한 계단을 올라간 느낌이 들었다. 아무도 그전과 후를 구별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나로서는 하나의 마일스톤을 찍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 혼자 이러한 작은 성공들이 쌓여가서 적신호만 걸려 있었던 것 같은 나의 커리어에도 비로소 푸른빛의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