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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cho May 06. 2024

(뒤늦은) 산호세에서의 2023년을 되돌아보며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 

올 연초에 적어둔 2023년을 돌아보며 적은 글. 벌써 2024년이 절반 가까이 지나고 있지만 기록을 위해 발행해 둔다. 




나의 2023년 첫 시작은 입덧과 함께했다. 2022년 연말, 추수감사절에 즈음에 임신을 확인한 것이다. 우리 부부에게는 기다리던 아기천사였던지라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따뜻한 겨울이었고, 감사한 마음으로 2023년을 맞이했다. 


한편, 그 무렵 이 동네 테크 업계에는 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코로나 특수를 제대로 받았던 테크 회사들이 그 특수가 빠지고 연준에서 기준금리를 높이면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테크 업계에 드리웠다. 그리고 "over hiring (지나치게 고용한 상태)"을 했던 테크 회사들은 이것이 실수였음을 깨달으면서, 회사들은 대량 해고를 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다행히 레이오프 대상자가 아니었지만 한순간에 회사 접속을 끊는 미국의 차가운 레이오프를 간접적으로 겼었고, 2023년을 지나면서 레이오프라는 것은 미국에서 일을 한다면 누구나 언젠가는 겪을 수 있는 것임을 배우게 되었다. 


2023년 초에 있었던 직계가족의 결혼식은 아쉽게도 참석을 못한 일도 있었다. 지금 생각으로는 그때 다녀왔어도 괜찮았을 것 같지만, 초산에 적은 나이도 아닌지라 친정 부모님이 한국을 방문하는 것을 반대하셨고, 직계가족 결혼식뿐만 아니라 임신 기간 내내 한국 방문은 하지 못했다. 엄마가 만든 음식 및 한국 음식이 종종 그리웠지만, 나중에 괜히 후회하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 긴 비행 여행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조금씩 배가 불러오며 난생처음 태동이라는 것도 느껴보고, 매 검진마다 남편과 함께 산부인과를 가며 설레는 마음으로 아기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매주 아기가 얼마나 크는지 과일에 빚대어 알려주는 앱 등을 살펴보며 새삼 내 뱃속에서 생명이 이렇게 자란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임신 과정 중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비교적 순탄한 임신 과정이었고, 특히 중기에 들어서는 컨디션도 매우 좋고 주위에서 축하도 많이 받아서 아기 용품 준비하는 그 기간이 참 행복한 임신 기간이었다. 


그렇게 2023년 여름, 우리 부부는 우리의 소중한 아가를 건강하게 세상으로 맞이했다. 생각보다 힘들었던 자연분만 과정에 나는 제대로 걷는 것도 몇 주는 꼬박 걸렸고, 몸이 안 좋아져서 그런지 호르몬 때문인지 정신적으로도 꽤나 힘든 첫 몇 달을 보냈다. 비교적 평탄한 임신기간이라 그런지 힘들었던 출산의 여파가 조금 더 오래간듯하다. 하나의 생명을 낳고 기른다는 그 책임감이 얼마나 무거운지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동시에 하루하루 커 가는 아이를 보며 가슴 벅차오르는 날의 연속이었고, 이러한 감정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내 안에서 자라던 아이가 이토록 커지다니 한 생명의 성장과 발달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신기하고 놀랍다. 엄마가, 그리고 부모가 된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아기를 낳게 되며 직장인이 된 지 11년 만에 긴 휴직이라는 것을 하고 있다. 미국은 정부에서 보장해 주는 출산/육아휴직이 한국보다 훨씬 짧아서, 실제 휴직기간은 회사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나는 다행히 업계에서 육아휴직이 가장 좋은 회사 중 하나를 다니기 때문에 나의 개인 휴가까지 쓰면서 약 8개월 정도를 쉴 수 있게 되었다. 이직할 때 회사 사이에 최대 2주 정도 쉰 것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긴 휴직은 처음이다. 


물론 "쉰다"라는 것은 "일"을 쉰다는 것이지 "논다"는 아니다. 첫 몇 달은 밤낮없이 몇 시간마다 먹여야 하는 아기 때문에 3시간 정도 이상을 내리 잔 적이 없는 것 같다. 첫 한 달은 힘든 출산의 여파로 몸까지 회복이 안 돼서 아기를 낳고 기른다는 것이 이렇게까지 힘든 일인가, 싶을 정도였다. 이제 아이가 성장할수록 매 단계마다 새로운 챌린지가 있겠지만 출산 직후와 비교하면 일단 잠을 잘 수 있음에 감사하고, 그때의 힘들었던 시간들은 쉽게 잊힐 것 같지 않다. 


휴직 시간 동안에는 의도적으로라도 회사 일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휴직 후 첫 몇 주는 수시로 업무 메일과 핸드폰을 체크하지 않아도 되는 점이 적응이 안 되었지만, 출산 후에는 회사 일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이 사실 없었고 비교적 긴 휴직이 보장되는 환경에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컸다. 


나와 우리 가족에게는 너무나 특별했던 2023년. 새로운 부모로서 2024년도 역시, 그리고 자라나는 아이를 보며 이제는 매년이 특별할 거 같다. 나에게 삶의 이유를 만들어준 2023년은 잊지 못할 한 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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