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몽골 6일 차. 엉긴 사원

길 위의 예술가를 만나다.

by 아성조

나라마다 익숙해지는 풍경이 있다. 유럽의 빨간 지붕, 베트남의 오토바이, 미국의 모래 절벽. 한국에 돌아와 그 나라를 떠올렸을 때 스치듯이 떠오르는 그 풍경!


몽골은 두말할 것 없이 초원이었다. 새벽녘 아침 게르문을 열고 나왔을 때 펼쳐지는 드넓은 평원. 달려도 달려도 끝없이 이어지는 지평선. 축구장을 백만 개 정도는 바닥에 깔아놓은 것 같은 들판이 여느 때처럼 우리를 반긴다.


드넓은 들판 한가운데 솟아있는 게르에서 슬그머니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면 인간은 한없이 작은 존재라는 것을 새삼 실감한다. 몽골의 하늘은 유독 낮다. 팔을 뻗으면 구름이 만져질지도 모른다.

금방이라도 잡힐듯한 구름


어느덧 여행도 중반을 넘어가고 있다. 왕성했던 몽골 불교의 성지인 엉긴 사원으로 가는 길. 오늘은, 사막지대를 넘어 다시 초원지대로 향하는, 그러니까 낙타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 온몸 구석구석 아낌없이 내리쬐던 햇볕과도 이제는(드디어!) 안녕이다.


이동하는 와중에 점심을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 뜨거운 햇볕 아래 라면을 끓여 한 끼 때우기로 했다. 어제 마트에서 사두었던 수박도 숭덩숭덩 잘랐다. 어째 어제부터 길 위에서 밥을 먹는 게 익숙해지고 있다. 시내 가이드가 라면을 꺼내고 햄을 먹기 좋게 썰기 시작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스불을 켜고, 그늘을 찾아 함께 돗자리를 깐다.


하룻밤 푹 잤더니 모든 것이 즐겁다. 특히, 길 위에서 먹는 라면 앞에서는 더 그렇다. 수박이 미지근하면 좀 어떻고, 날벌레가 눈앞을 돌아다니면 좀 어때- (사실 라면 냄비에 몇 마리 들어간 것 같기도 한데 다들 모른척했다.) 라면대신 정수리가 익을 것처럼 햇빛이 내리쬐더라도, 별일도 아니다.


밖에서 먹는, 특히 해외에서 먹는 라면은 언제나 나를 미치게 했다. 일주일도 넘게 고기만 썰며 괴로워하던 유럽에서도, 알싸한 향신료와 고수가 사실은 입에 꽤 맞았던 태국과 베트남서도 한국 라면은 한 줄기 빛이었다.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는, 봉지라면 하나에 6000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에도 기꺼이 바가지를 썼다.

길 위에서의 식사가 익숙해진다.


바글바글 기포가 끓는 소리, 1초만 맡아도 알 수 있는 한국 라면의 향, 꼬불거리는 그 완벽한 비주얼!


식탁에 정갈하게 차려 혼자 앉아 먹는 것보다도, 한데 모여 종이컵 하나 바짝 들고 기다리는 재미가 있다. 우리는 라면을 끓이다 말고 나타난 새끼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되는 도마뱀을 한참이나 귀여워하다가, 냄비 하나에 여러 개의 나무젓가락이 달려들어 면을 집어가는 퍼포먼스까지 완벽히 마친 뒤 배를 두드리며 즐거워했다.

도마뱀! 넌 어디서 왔니



도마뱀이 나타나서 하는 이야기인데, 내 인생 평생 동안 본 동물보다 닷새간 몽골에서 본 동물의 종류가 더 많은 것 같다. 들판의 낙타와 말, 절벽 위 산양과 야크를 보았고, 강아지는 목줄도 없이 게르와 게르 사이를 자유롭게 뛰어놀았다. 푸르공을 타고 이동을 하는 와중에도 길 위에는 양과 염소 떼가 갑자기 나타나곤 했다.


도로 한가운데에서 만났어도(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차도가 없으니 도로라고 하기도 뭣하다.), 동물들은 우리를 무서워하는 법이 전혀 없었다. 그냥 언제나 그랬다는 듯이 자기 갈길을 갔다.


몽골에는 특별히 사랑받는 다섯 가지 동물이 있다. 말, 소, 양, 염소, 그리고 낙타. 몽골의 5대 보물이라 불리는 이 다섯 동물은 초원의 바람과 함께 태어나고 자라나, 세대를 이어 사람과 함께 살아왔다. 이 다섯 동물은 단순히 목축의 대상이 아니라 몽골 유목민의 삶과 문화를 지탱해 주는 존재들이다. 고기, 털, 가죽, 젖 등 생활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얻고, 과거에는 동물들이 이동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초원과 사막을 오가며 마주친 동물들은 한국의 동물원에서 보던 모습과는 참 달랐다. 목줄도 우리도 없는 곳에서 모두 자유로이 살아있었다. 구경거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의 숨결처럼 함께 살고 있었다.


야크.jpg
말.jpg
염소.jpg
강아지.jpg
소.jpg
몽골에서는 게르에서도, 차 안에서도 동물들이 갑자기 나타나곤 했다.


푸르공을 타고 한참을 달리다 보니 거의 엉긴(발음에 따라 옹기사원으로도 불린다.) 사원 근처 초원에 도착했다. 여름이라 그런지 해가 무지하게 길다. 저녁 6시가 다 되어가지만 아직 쨍쨍하다. 저녁 7시에서 8시 정도면 해가 진다고 하니, 사원 탐방을 위해 뜨거운 해가 넘어가기를 잠시 기다렸다.


오늘 방문할 엉긴 사원은 한때 몽골에서 가장 큰 라마 불교 사원 중 하나로 수백 개의 불당과 불상이 있었다고 한다. 엉긴 강의 양쪽에 지어진 28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1660년대에 지어진 남부 단지 11개 건물은 바클림 사원이고, 18세기에 지어진 북부 17개 건물은 호탁트 사원이라 불린다.


그러나 오늘 내가 본 엉긴 사원은 사원이라기보다는, 황량한 폐허에 가까워 보였다. 1800년대 초까지는 약 1000여 명의 승려가 있는 거대한 사원으로 수학, 명상, 철학, 의학을 가르치는 4개의 불교 대학까지 있었으나, 1939년 공산정권의 불교 탄압의 일환으로 무력하게 파괴되었다. 200여 명의 승려가 죽었으며, 살아남은 승려들 또한 공산당 군대에 강제로 징집되었다.

엉긴사원터 수정.jpg
엉긴사원터2.jpg
황량하고 쓸쓸해 보였던 엉긴사원 터. 이 곳에 천 여명의 승려가 있었다니! 쉽게 믿기지 않는다.


종교는 무엇이고, 전쟁은 또 무엇일까? 사람들은 종교 사상과 믿음을 바탕으로 하나 하나 건물을 지어내고 문화를 발전시킨다. 또, 굳이 굳이 전쟁을 시작해 오랜 시간 동안 쌓아 올린 문화를 한 순간에 없애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는 황량한 들판뿐인 그곳에 굳이 굳이 찾아가 과거의 몽골의 역사를 되새기는 행위(?)를 통해 몇 백 년 전의 모습을 상상하며, 괜히 먹먹해지기도 한다.

엉긴 사원.png 요즘 한창 빠진 chat GPT에게 방금 쓴 글을 바탕으로 엉긴 사원의 모습을 복원해 달라 해 보았다.




현재 엉긴 사원은, 일부 건물만 복원되어 작은 박물관 겸 사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1939년에 사망한 승려들의 이름이 있고 과거의 소장품 또한 전시되어 있다.


사원이 복원되어 박물관도 운영하고 있다고 말은 거창하게 했지만, 사실 작은 게르 하나에 인형이나 돌 같은 작은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고, 사원도 여느 주택 한 채를 보는 것처럼 작았다.


함께 이런저런 물건을 구경하고 있으니, 주인아주머니께서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겠다며 수줍게 그림 뭉치를 꺼냈다. "취미로 그린 거예요, "라고 하셨지만, 펼쳐진 그림들은 숨이 멎을 만큼 생생했다. 몽골 사람들과 동물들이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졌다.


얇은 종이에 액자 하나 없이 놓여 있었던 그림들은 그 어떤 값진 그림보다 눈을 떼기 어려웠다. 나는 조심히 한 장을 골라 들었다. 몽골의 전사 2명이 전통 복장을 하고 활을 쏘고 있는 그림이었다. 먼 곳의 이야기가 손바닥 위에 얹힌 것 같았다. 바람을 그린 손길, 흙냄새를 닮은 선.


문득, 길 위의 예술가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름도 없이, 갤러리도 없이, 그저 순간순간의 마음을 그려낸 그림들. 가벼운 종이 한 장을 받아 들고도, 마음은 몽골의 광막한 초원을 한 아름 안은 듯했다. 그림이 아니라 작은 풍경 하나를 품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 나라의 공기와 빛, 그리고 그 순간의 나까지 고스란히 눌러 담긴 한 점. 그 그림은 아마 오랫동안 내 여행의 일부로 남을 것이다. 몽골의 거친 대지와 투박한 삶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그 한 장을 나는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졌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화가의 그림 한 장을 곱게 곱게 접어 소중히 담고, 광활한 사원 터 너머 서서히 지고 있는 해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지평선 뒤로 넘어가는 붉은 해는 몇 백 년 전 승려들에도 닿았을 것이다. 몽골의 승려들은 이곳에서 어떤 생활을 했을까? 이 고요한 땅에서 찾고자 했던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사라져 가는 해를 한참이나 바라볼 때면 복잡했던 마음도 고요하게 차분해진다. 수많은 누군가들도 수백 년간 이 풍경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감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많고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과 숨결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게르로 향했다.


오늘도 몽골 여행의 한 페이지가 다시 넘어가고 있다. 까만 하늘과 점박이 별들이 익숙하게 우리를 맞이한다. 어쩌면 사람들은,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하늘과 들판 사이에 불청객처럼 잠시 끼어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매일 밤 고개를 바짝 들고 한참을 올려다봐도 다음날 아침이면 또 생각이 나는 별과 함께, 또 다른 하루와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해 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