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고령화의 위기 속에 살고 있는 너와 나. 우리

육아휴직의 시작. 새로운 인생으로의 전환점이 되길 바라.

by 서치호


휴직원을 제출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과연 휴직이 성사될까?'라며 끊임없이 되물으며, 잘 다니던 회사에 더 이상 출근하지 않고 동시에 아이들 뒷바라지나 집안일 등에 몰두하며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에 고군분투하는 장면 자체가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바로 그런 날이 어떻게든 찾아왔고, 나는 더 이상 출근을 하지 않게 되었다. 직장에 나가지 않으면 세상이 무너질 듯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두려움에 전전긍긍 조바심 내며 살아왔던 내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듯 내가 없이도 회사는 잘만 돌아간다. 그야말로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아. 정말 육아휴직이 시작됐구나 실제로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현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의 육아휴직은 자의보다는 오히려 아내의 의지에 의하여 시작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가족을 위해 눈 딱 감고 제 한 몸 희생하자는 의미에서 결정했다고는 하지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나에게 정말로 찾아오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뜬구름을 잡는 듯한 일이었다. 아빠의 달 육아휴직이라는 것이 대한민국 사회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아직 보편화되지만 않았을 뿐, 안 되는 일은 아니었기에 어떻게든 그런 현실을 마주하게 될 날에 대비하여 나도 나름대로는 나의 육아휴직에 대한 당위성이라든지 육아휴직 이후에 삶에 대한 큰 그림을 어느 정도는 흐릿하게나마 구상해둔 것이 있다. 앞으로 펼쳐질 나의 일 년간의 좌충우돌 육아휴직 생존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몇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그중 첫 번째 이야기는 갈수록 현저히 낮아져만 가는 출산율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현재 OECD 회원국 38개국 중에서 38위. 압도적인 최하위에 자리 잡았고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 평소 정치 사회적으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내가 보아도 이쯤 되면 슬슬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릴 적 내 주의 친구들을 보자면 다들 형제자매 한 명씩은 꼭 있었던 것 같았는데 지금은 가까이 주위만 둘러보아도, 자녀 둘을 키우고 있는 집은 이제 더 이상 흔치만은 않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그만큼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 자체가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사항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도 지금은 육아를 하는 데 있어서, '폭풍의 눈'의 시기는 이제 어느 정도 멀찌감치 흘려보내 놓은 후라고는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의 육아는 정말 힘들었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육아가 어려운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 자유의 박탈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일단 부모는 기존에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던 일단 모두 포기하고 당분간은 아이에게 집중해야만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다. 친구들과의 약속이나 매일 규칙적으로 해오던 운동 스케줄은커녕 회식조차 마음대로 못한다. 아니 적어도 1년간은 전혀 할 수 없다. 만약 당신에게 이제 막 태어난 아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서 사적 약속이나 운동, 회식 등을 참여하는데 비교적 자유롭게 느껴진다면 그건 본인의 아이가 비교적 순하거나 본인이 관리를 잘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배우자가 그만큼 이 악물고 더 고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맞다.


두 번째, 기본 욕구에 대한 불만족이다. 내 경우에는 수면부족이 가장 힘들었다. 준이나 민이가 낮과 밤이 뒤바뀐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육아기에 나는 언제나 잠이 극도로 부족했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쪽잠을 여러 번 나누어 자는 패턴을 하루 종일 반복한다. 어른은 밤에 통잠을 자는 것으로 그 이튿날에 생활할 에너지를 재충전하는데 반해 갓난아기에게 그러한 패턴이 잡히는 데에는 빨라도 100일은 걸린다. 그 100일 동안은 밤새 자고 깨는 아이의 패턴에 부모가 무조건 맞춰주어야만 한다. 9시에 아이를 재우고 나면 재빨리 아이가 낮동안에 사용한 젖병이며 쪽쪽이 등의 소품들을 부지런히 살균 소독해 놓아야만 한다. 그리고 나면 아이는 첫 번째 잠에서 깨어난다. 그럼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고 재우고 난 뒤 부모는 마저 못 끝낸 일들을 마무리하거나 간단한 개인정비 등을 하고 난 뒤 아이가 깨기 전에 부지런히 잠을 청한다. 이제 막 잠이 들라치면 아이는 기가 막히게 두 번째 잠에서 깨어난다. 이건 보통 새벽 1시쯤일 것이다. 이쯤 되면 부모는 피곤하다. 다시 우유를 먹이고 재우려는데 아이는 잘 자려고 하지 않는다. 짜증이 올라온다. 한 참을 실랑이 한 끝에 겨우 아이를 재우면 새벽 두 시 반. 이제 본격적으로 부모는 집중적으로 잠을 자면서 에너지를 급속 충전해야만 버틸 수 있다. 왜냐하면 다섯 시쯤이면 아이는 또 젖을 달라며 깨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항상 같은 시각. 다섯 시가 되니 기가 막히게 울며 깨어난 아이. 옆집 이웃들까지 전부 기상시킬 기세다. 재빨리 어르고 달래며 젖을 먹이고 트림을 시킨 뒤 재우고 나니 새벽 여섯 시. 내가 출근시간으로 알람을 맞춘 시간은 6시 35분. 겨우 삼십 분 정도 쪽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한 뒤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부릅뜨고 다리를 질질 끌며 출근길에 나서야만 한다. 이런 날들을 100일 이상은 버텨내야만 진정 부모가 될 수 있다. 지난날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써 내려갔지만 다시는 떠올리기도 싫을 만큼 힘들었던 시간임을 고백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배가 고파도 먹을 수가 없다. 배고픈 아이를 먼저 먹여야만 부모 역시도 편히 식사를 할 수 있는데 아이는 도무지 협조할 생각이 없다. 밥 차리고 먹이는데 두 시간. 이미 식사 때는 한 참 지난 후다. 화장실 용무는 또 어떤가. 아이 눈치를 보면서나마 갈 수라도 있으면 다행, 아무리 급하고 배가 아파도 아이가 놓아주질 않을 것이다. 어떤 육아책의 작가는 울고 불며 떼쓰는 아이 때문에 참고 버티다가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문밖에 세워두고 화장실에서 용무를 보던 중 울음이 터져 나왔다는 고백을 하셨던 것이 생각난다. 이렇게 육아기 초반을 버티는 부모는 먹고, 자고, 싸는 인간의 기본 욕구를 제대로 해소할 수가 없다.


마지막 세 번째로 주체의 전환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는 더 이상 자신이 본인 삶의 주체가 아니게 된다. 모든 것을 아이 중심으로 맞추어야만 한다. 나의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의미이다. 당신이 아이를 낳기 전 얼나마 잘 나가던 인생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화려한 인생이었을수록 빨리 잊어는 게 신상에 좋다. 지금부터 당신은 그때의 인생으로는 절대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Life Style 의 전환이라고 이해해도 좋다. 집에서 Hip-hop 을 즐겨들었든 Jazz 를 즐겼든지 간에 앞으로는 뽀로로나 핑크퐁의 노랫소리에 더 친숙해져야만 하고, Fitness Club 에 가는 횟수보다 Kids Cafe 에 더 자주 방문하게 될 것이다. 앞서 언급한 육아가 어려운 두 가지 이유는 그래도 단기적으로 부모를 힘들게 한다. 짧게는 100일에서 길게는 1년 정도면 그 힘겨운 시간도 어느덧 지나간다. 하지만 지금 이야기하는 세 번째 이유는 장기적으로 부모의 삶을 억누르다가 어느덧 아이가 제법 아이의 인생을 찾아 학교로 또는 사회로 나아간 뒤 더 이상 부모를 찾지 않을 즈음에야 부모를 놓아준다. 하지만 그때쯤이면 부모도 그 시간만큼 나이가 한 참은 더 들고 난 후다. 화려했던 과거의 삶을 쫓아 그 시절로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멀리와 버렸다. 나 같은 사람은 이미 나이의 앞자리 숫자마저 바뀌어버린 후다.


이쯤 되면 육아는 단순히 어렵고 힘든 것을 넘어서 어쩌면 부모 자신의 인생과 아이의 인생을 맞바꾸는 정도의 희생이라고까지 여겨질 수 있다. 이렇게만 본다면 출산 기피현상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시대 반영의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산을 장려하고 또 출산이 장려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개인적인 측면과 사회적인 측면이 있다.


위에서 열거한 세 가지 이유를 포함하여 더욱 세세히 따지고 들자면 아이를 갖지 말아야 할 타당한 이유는 수백 개도 훨씬 넘게 찾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포함한 부모의 입장을 살고 있는 그 누구를 붙잡고 물어보자. "당신의 인생을 다시 5년 전 또는 10년 전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그때도 당신은 또다시 아이를 갖겠습니까?" 나의 대답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Yes" 다! 아마도 거의 대부분의 부모들에게서 압도적인 확률로 나와 같은 대답을 들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지금의 나라면 9년 전 처음 아이를 계획했던 당시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확신을 가지고 아이를 갖고자 노력할 것 같다. 방금 전 이 위에서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이유를 저렇게나 절망적으로 열거해 놓더니 "그래도 다시 돌아간대도 내 선택은 바로 너!" 라니 엄청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는 우연도 거짓도 의무감도 사명감도 아니다. 아이와 함께 시작되는 행복은 지금껏 살면서 전혀 겪어보지 못한 종류의 것이고 대체 불가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만이 줄 수 있고, 그 안에는 어떠한 조건이나 기대도 바람도 없다. 순수하게 아이와 부모의 관계 위에 형성된 사랑과 기쁨과 행복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 나의 5살 된 막내아들은 글을 쓰는 나에게 후다다닥~ 뛰어오고 뛰어가며 끊임없이 레고 블록을 하나씩 물어다 주고는 가버린다. 마치 둥지로 먹이를 물어다 나르는 작은 새 같다. 제 딴엔 그게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블록을 놓고 가면서 나를 바라보는 그 아이의 눈동자가 티 없이 맑은 데다가 호기심마저 어려있어 그를 보는 내 마음은 그 즉시 몽글몽글하게 녹아버리고 가슴에는 따듯한 온기가 가득 찬다. 입가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미소를 머금고 있다. 물론 말썽을 부려 나를 곤두서게 할 때도 많지만 아이가 깨어있는 내내 이런 식이다. 그냥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고 흐뭇해진다. 바라보자면 그저 멍하니 웃고만 있게 된다. 나는 장난 삼아 이런 내 둘째 아이를 관상용 또는 BGM 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기분 좋은 '양가'의 에너지를 아이는 깨어있는 내내 부모에게 무제한으로 그것도 공짜로 나누어 준다. 소소하면서 작지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행복이다.


요즘은 그 숫자가 크게 늘어 대세로 자리 잡아가는 딩크 족 (DINKs : Double Income No Kids) 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마음을 돌리기 전까지는 절대로 느껴보지 못할 감정임에 틀림없다. 사실 내 동생 내외도 딩크족이다. 나는 동생을 만나면 조심스럽게 아이를 권한다. 그 애는 겪어보지 못했을 내 경험 속에서 아이로 인한 삶의 긍정적인 부분을 어필하면서 그 역시 아이를 갖겠다는 결심이 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하지만 그것이 뜻대로 잘 통하지는 않는다. 아내는 그럴 때마다 이런 날 만류하고 나 역시 그런 행동이 아무리 형제지간이라도 실례될 수 있는 일이며, 어쩌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을만한 행동이라는 것도 알지만 그저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언제나 그런 노력은 허사가 되고 아직까지도 요지부동인 동생 내외를 보자면 역시나 아이를 갖고 말고의 문제는 주변에서 어떻게 해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닌가 보다. 여전히 너무나도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나는 오늘도 글을 쓰며 알리고 싶다. 적어도 아이를 한 명도 갖지 못해 본 부부에게 아무리 두렵고 힘들더라도. 어쩌면 계산상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을지언정 이 처럼 부모가 될 그대들에게 그대들의 아이들이 어떤 행복과 기쁨을 가져다줄 수 있을지 지금의 머리로 감히 헤아려볼까 상상하지 말라고. 당신이 어떤 상상을 하든지 간에 그 행복은 그 너머에 있기에 지금의 당신으로서는 근처에도 갈 수 없다고. 그러니 그 행복을 섣부른 계산이나 판단을 앞세워 절대로 미리 포기하지 말라고.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만약에 누군가 아이를 갖고자 마음을 돌렸다면 그 순간 그들은 개인적으로 삶의 최상위 가치에 있는 행복을 누릴 자격을 얻게 되는 동시에 사회적으로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화두에 우려한 대한민국 출산율과 맥락을 같이 하는데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임신이 가능한 여성 한 명이 실제로 출산하는 아이는 0.837 명에 불과하다. 여성 한 명이 아이 한 명을 낳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아이는 혼자서 낳고 기르는 것이 아니다. 성인 남자 한 명 성인 여자 한 명이 혼인하므로 성인 둘이서 아이를 한 명도 낳지 않는다고 표현해야 이 사태의 심각성을 더 잘 표현할 수 있겠다. 얼핏 생각해보아도 이 세상에 태어난 두 사람이 만나서 아이 둘은 낳고 늙어가는 것이 순리적으로 이 사회가 어느 정도는 존속 가능한 기본적인 Modeling 이지 않을까? 작금의 대한민국에서는 두 사람이 만나 0.837명의 자녀만 낳고 늙어가므로 한 세대만에 인구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게 되리라는 것은 쉽게 예측 가능하다. 그마저도 살아있는 인구의 대부분은 노인들로 구성되어있을 것이다. 경제활동을 활발히 해야 할 젊은이들이 없게 된다. 나라를 지킬 젊은이들도 없다.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끌고 갈 정보, 산업, 첨단기술, 문화 그 어떤 영역에서라도 그 기술을 갈고닦고 끌고 나갈 인재들이 턱없이 부족해진다. 이제 대한민국은 어찌어찌하여 겨우 선진국 반열에 발을 디딜까 말까 하는데 자타공인 선진국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 같은 인재 부족으로 다시 개도국 또는 그 이하로 뒤쳐지는 건 이제 시간문제다. 그 누구도 아직 피부로 실감하지 못할 뿐이지 실제 우리 사회의 출산율 지표는 이미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되었고 실제로 지방의 대학교는 올해 신입생이 없어서 문을 닫는 대학교도 하나둘씩 늘어가고 있다. 대학교가 벌써 이렇게 되었는데 초, 중, 고교는 말할 것도 없다. 전국적으로 폐교가 우후죽순 넘쳐나게 될 것이고 조만간 학원들은 요양원 주간 노인케어 시설 등등으로 간판을 바꿔달게 될 것이다. 그럴수록 이 사회는 활기를 점차 잃어가게 될 것이 분명하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답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스스로 임신을 결정할 수 있고 출산하여 자녀를 양육하겠노라 결정할 수 있는 20대 후반부터 40대 중후반 정도의 가임 세대들인 우리들 개개인에게 그 열쇠가 쥐어져 있다. 저출산 문제는 국가가 해결해 줄 수 있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정책이나 복지 차원에서 어느 정도 출산율을 지지해 줄 수 있는 장치 정도는 마련해 줄 수 있겠지만 결정적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 건 국민 개개인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저출산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 기조에 만연한 문제의식을 인류애적 깊은 공감이나 사회적 문제 해결 차원에서 자각을 계기로, '부모가 된다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사회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자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출산과 육아 후의 삶에는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특별한 행복과 기쁨이 있으니 겉에서만 보고 두려워 무조건 숨거나 피하기보다는 도전하여 그 행복을 거머쥐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할 때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그 용기를 함께 북돋아주거나 장려하는 문화가 번져서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소 억지스러운 논리이기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저 너머의 행복을 누리고자 선택한 개인의 결정이 이제는 개인의 행복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공익적으로도 의로운 역할을 하는 것임과 동시에 인류애적 의무에 기여하였다는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로 인정받아야 할 시대가 되었다.


그러한 인정의 일환으로 출산 장려 정책이 더욱 강화되고 확장되는 추세에 있는 것이고, 내가 지금 선택하여 시작하고자 하는 '아빠의 달 육아휴직' 제도 또한 이러한 시대적 흐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대한민국 정책이 자주 그렇듯 본질은 같아도 그 이름이 계속해서 바뀔 때가 많다. 이 글이 독자들에게 읽혀질 때쯤 정책이 또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육아휴직을 신청하던 당시의 정책 이름은 '아빠의 달 육아휴직' 제도였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아빠 육아휴직 보너스제'라고 이름이 바뀐듯하다. 무엇으로 불리든, 이 제도는 엄마가 육아휴직을 사용했고, (1년을 모두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하루라도 육아휴직을 개시했다면 사용 조건을 충족한다.) 이후 그 아이에 대하여 아이가 만 8세를 지내는 학년을 마치기 전까지 아빠가 육아휴직을 사용할 경우에 첫 3개월은 통상임금의 100% 를 250만 원까지의 상한액에 맞춰 고용보험에서 급여를 지급하고, 4개월 째부터 1년까지의 9개월 동안은 120만 원씩 지급되는 제도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Link 로 걸어둔 고용보험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http://worklife.kr/website/index/m5/bonus2.asp

img.png 2019년 1월 1일부터 개정된 아빠 육아휴직 보너스 제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 혜택이 강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 힘이 작던 크던간에 출산을 장려하여 저출산 고령화를 어떻게든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다양한 정책이 마련되고 있고 그 혜택 또한 점차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정책이 시행되면 민간에서는 제도를 활용해주어야 그 취지가 사회에 스며들고 흐름을 바꿀 수 있으며 시스템으로써 작동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제도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동안에 그것들을 이웃나라 불구경하듯 바라만 보아서는 무엇하나 바꿀 수 없다. 나 역시 그랬던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점차 정부의 정책이나 복지에도 관심을 기울여 더러는 활용도 해보고 장려에 동참도 해보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이러한 불씨 하나, 노력하나가 모여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예부터 아이 하나 낳고 키우려면 온 동네가 두 팔 걷고 도와줘야 가능하다고 했다. 아이 키우기에 그만큼 손도 많이 가고 지극한 관심과 정성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이 힘든 것을 지금껏 모성이 도맡아 해왔다는 게 신기하고 기적과 같다고 생각될 정도이다. 육아. 이제는 더 이상 엄마에게만 미뤄둘 일이 절대 아니다. 아빠들도 동참해야 한다. 이를 받아들이는 순간 자녀를 계획하는 것이 조금은 더 수월해질 수 있고, 겨우 1년 간의 육아휴직을 보장한다고 해서 그 이후에 아이가 혼자서 커나가는 것도 아니지만, 이러한 제도적 지원 하나하나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확실히 예전보다는 길이 열려있고 점차 확장되고 있는 추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 역시 육아휴직을 계획하고 실행하면서 여러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그중 하나가 저출산 고령화를 극복하기 위한 기본 요소가 되는 출산을 장려하고, 아이 키우기에 막막해하는 사람들에게 "야! 너도 육아할 수 있어!" 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지금 이렇게 육아휴직을 신청하여 개시하였고 육아휴직을 어떻게까지 활용할 수 있는지를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서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중이다. 일종의 '일인시위'라고도 할 수 있겠다.


출산율과 출산, 양육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은 강한 어조로 이야기하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편한 마음이 끊임없이 나를 짓눌러 왔다. 나의 주변에도 여럿이 있고, 요즘은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보이는 난임가정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환경호르몬, 직장 환경, 여러 가지 화학적 전기적 위해요소에 노출되어 있는 피치 못할 여건들로 인하여 요즘 우리 사회에는 난임가정이 너무나도 많다. 고백하자면 나 또한 첫째 아이를 갖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이를 갖고자 마음먹기도 힘든데 실제로 아이를 갖는 일 자체가 그야말로 축복이 되었고, 임신이 하늘의 별따기까지는 아니어도 정말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아이가 주는 행복을 묘사하고 그 기쁨을 표현하였지만, 아이를 갖고 싶어도 뜻대로 되지 않는 부부들에게는 그 말이 얼마나 야속하고 얄밉게 들렸을지 상상만 해도 죄송스러워서 숨고만 싶다. 그들에게는 하루빨리 축복의 생명이 그 가정에 선물같이 찾아와 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다만 앞서 말한 모든 이야기는 할 수 있음에도, 지레 겁먹고 걱정하며 머뭇 거리는 모든 이들에게 용기와 독려를 동시에 전달하기 위한 진심 어린 응원의 메시지로 이해해주시면 정말 고개 숙여 깊이 감사드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