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월요일인데. 출근 안 하는구나.

D-1 일요일 저녁인데 더 이상 우울하지 않다. 대신 긴장감 또한 없다.

by 서치호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쳇바퀴 돌듯 끊임없이 반복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한 사이클이 점점 짧아져만가는 삶의 반복 단위 일주일. 지금껏 내가 살아온 40년 인생이면 2000번도 넘게 반복해 온 Pattern 이다. 그렇게 살아온 내 과거 인생에는 저마다 각기 다른 일주일이 존재하겠지만, 그 와중에도 절대 변하지 않았던 진리가 있다면, 지금껏 모든 일요일 밤은 어떻게든 붙잡아 매 두고 싶을 만큼 아쉽기만 한 시간이라는 것이며 이윽고 찾아오는 월요일은 아무리 좋아해 보려 해도 좋아지지가 않는 불청객과 같다는 점이다.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일요일의 해가 저물고 어둑어둑해질 때면 밤과 함께 우울감이 함께 찾아오는 이 마음에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직장인들의 공공의 적 월요일은, 그냥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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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에게 육아휴직과 함께 변화가 생겼다. 더 이상 일요일 저녁이 싫지 않았다. 우울감도 없다. 주말이 다 지나갔고, 자고 일어나면 월요일인데 가만 생각해보니 더 이상 출근할 필요가 없다. 아. 내일이면 또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인데 나는 더 이상 출근을 안 하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니 직장인의 불치병인 월요병이 씻은 듯 나은 것 같다. 2022년 2월 21일 월요일. 내일부터 나의 육아휴직이 시작된다. 육아휴직을 하루 앞둔 지금 나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생긴 것 같다. 조급함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성격이 급했다. 그런 성격 탓에 실수가 잦았고 아버지로부터 덤벙거린다며 참 많이도 꾸중을 들으며 자라왔다. 하지만 혼난다고 해서 성정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어떤 노력이 있다면 모를까 외부 자극으로부터 사람은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조급한 성격의 나는 걸음걸이도 몹시 빨랐다. 항상 쟁쟁 걸음으로 빠르게 걸어 다녔다. 친구들과 나란히 어딘가로 걸어갈 때면 다른 친구들은 느긋하다 못해 여기저기 새는 곳도 많아서 도무지 목적지로 갈 생각이 없어 보였고 나는 그 친구들이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가는 길이 끝이 없음을 알면서도 누군가가 앞서 가는 꼴을 못 본다. 특히 고속도로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수많은 차량들을 추월하다 보면 결국 앞에 뻥 뚫린 도로만 있고 아무도 없을 때 마음의 안정을 느낀다. 학창 시절에는 수없이 많은 과목과, 계속해서 나아가는 진도, 끝이 보이질 않는 학업의 길에 끊임없이 채찍질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항상 바빴고 조급했었던 것 같다. 시험을 볼 때면 째깍째깍 흐르는 시계의 초침 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남아있는 문항수가 나를 재촉하다 보니 실수를 부르기 일쑤였다. 심지어는 문제를 안 풀고 넘어가는 일도 다반사였다. 직장을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산적해있는 업무를 나 스스로가 컨트롤하며 진행해 나가면 될 일인데 밀려있는 일이 마치 나를 압박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늘 일에 쫓기는 느낌으로 혼자서 바빴다. 그렇다고 누가 나를 재촉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일이 밀려있는 게 싫었다. 빨리 다 해치워 없애버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운전을 할 때 앞서가고 있는 차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끊임없이 추월하면서 뻥 뚫린 도로를 보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썰을 풀어놓지만, 심각할 정도의 스트레스는 아니었다. 정신병 수준으로 문제가 되는 일도 아니었다. 그저 성향이 그랬다는 것이다. 물론 직장 생화를 할 정도의 나이가 되었으니 아무리 조급한 성격으로 실수가 많았던 나였을지라도 그 성장과정에서 배우고 느낀 것이 많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진화가 있었으리라. 그래서인지 어렸을 때처럼 터무니없는 실수를 연발하지는 않았다. 그랬기에 직장생활에서의 조급함이 크게 독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일처리가 빨랐고 그래서 신속한 사람이라는 업무평가를 받았다. 물론 실수가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미미한 수준의 실수였고, 이는 느긋하게 천천히 업무를 진행했다고 해서 발생하지 않았을 종류의 실수는 아니었다. 업무처리의 속도 대비 결과의 질적 수준이 실수를 만회하고도 남을 만큼은 되었다. 문제는 업무평가나 나의 과업에 대한 결과물이 아니었다. 육아휴직을 결정한 지금에 와서 보니 직장생활 당시에 나의 조급함이란 나 조차도 모르게 끊임없는 스트레스로 나 스스로를 옥죄였던 올무와도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는 크게 세 종류의 스트레스가 있다.

첫 번 째는 출근에 대한 스트레스다. '빨리 출근해야지. 지각은 스스로 용납할 수 없어. 느슨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도 않아.'라고 되뇌며 지각을 극도로 경계해왔다. 그러다 보면 출근시간에 대한 노이로제는 병적인 스트레스로 사람을 자극한다. 매일 밤 자기 전에 알람을 확인하고, 충분한 수면량을 확보하기 위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관리하게 될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직장인으로서는 누구나 겪는 일이고 지극히 당연한 직장 도덕이다. 달리 '이게 뭐 스트레스야'라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그렇다. 그렇기에 직장생활을 하는 우리 모두의 저변에서 우리 모두는 언제나 이 정도의 스트레스를 아무렇지 않다는 듯 받아왔고 또 이를 당연시 여기며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다. 추후에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이는 다른 것들과 연결되어 나비효과 마냥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삶의 다른 부분에서의 내 모습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의 나는 실감하고 있다. 직장의 주위를 둘러보자. 개중에 어떤 사람은 지각을 밥먹듯이 하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의 업무 Performance 와는 별개다. 예전에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흔했다. 지각을 하는 사람은 업무의 결과도 형편없다고 지레짐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예전에는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요즘은 지각 좀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결과물도 형편없을 거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지각의 문제와는 별개로 일은 또 곧잘 해내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윗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 사람은 그저 '코리안타임 1)'을 사용하고 있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1) 코리안타임 : 주인공은 늘 마지막에 등장한다는 구식 영화의 전개과정에서 주로 쓰이던 구조를 빗댄 말로 자신이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인 양 늘 마지막에 출근하는 사람을 비아냥거리며 표한하는 말.] 어쨌거나 저쨌거나 일단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업무에 대한 Performance 와는 별개로 그 사람은 적어도 앞서 말한 출근 스트레스에서 만큼은 남들보다 더 적은 영향을 받고 있고 그 점에서 만큼은 개인의 건강이나 Life Style 적인 측면에서 그렇지 않은 일반 직장인들보다 이로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는 업무시간의 스트레스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일과를 시작하면서 오늘 할 일을 나름대로의 우선순위와 효율성을 고려하여 대략적으로 계획하고 업무에 나선다. '이걸 처리한 뒤 저걸 하고 그다음에는 자료를 정리하고, 보고 준비를 하고 내일 할 무언가를 정리하면 오늘도 대략 마무리되겠다.' 이때 일부러 느슨하게 계획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계획한 일들을 차질 없이 끝내자면 앞서 나열한 일을 빠듯하게 처리해야 일정이 틀어지지 않는다. 스스로 세운 계획을 왜 이렇게 빠듯하게 설정했었는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너무 미련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이렇게 계획하고 업무에 나선 순간부터 나는 끊임없이 조급해진다. 내가 세운 계획으로 인해 스스로 조급해졌고, 그 조급함은 스트레스로 돌려받게 되는 악순환이 된다. 문제는 이것이 하루 이틀로 끝날 일이 아니라 매일같이 반복된다는 것이고 이 말인즉슨, 나와 같은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은 매일 이러한 지속적인 스트레스의 환경에 노출되어 작지만 독이 될 수 있는 스트레스라는 것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언제까지? 적어도 이 직장생활을 마무리할 때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획을 빠듯하게 세우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째는 실제로 일이 많아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바로 이 첫 번 째 이유로 인하여 매일을 이렇게 전쟁과 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되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성공에 대한 욕심과 투자이다. 일단 직장 생활은 티가 난다. 모두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는 것 같지만 누가 일을 많이 하고 누가 빈정대는지 또는 누가 성과가 좋고 누가 형편없는 결과물을 내는지 말하지 않아도 다 보인다. 누구나 안다. 참 희한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 스스로를 옥죄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물론 나 스스로가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는 이유도 있겠고 결정적으로 주변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 특별히 내 윗선이 나를 인정해 주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티를 내지 않고 광을 팔지 않더라도 그저 결과로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런 이유로 하루 일정을 빠듯하게 세워놓다 보니 바빠지기 시작한다. 하나를 끝내고 그다음으로 넘어가기에 바쁘고 정신이 없다. 종종 이런 긴장감과 속도감을 즐기고 있을 때도 있다. 오히려 바쁜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고 생각보다 많다. 그게 선을 넘으면 Workholic 이 되는 것이리라. 물론 나는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 그러다가 오후가 되고 퇴근시간이 임박할 때면 더 바빠진다. 조급함이 극에 달한다. 야근을 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반드시 칼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다른 직장인들에게는 공감이 되지 않을 수 있는 부분인데 우리 회사는 퇴근이 자유로웠다. 아무 때나 퇴근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고 칼퇴근에 대한 눈치를 보는 문화가 아니라는 말이다. 잠시 샛길로 빠지자면 이렇게 된 데는 리더십의 마인드가 핵심이었다. 우리 조직의 임원은 꽤 오랫동안 여러 명의 외국인이 자리했었다. 미국 => 독일 => 호주 그리고 지금에 와서야 다시 한국인 임원이 임명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칼퇴근 문화가 확실히 자리 잡았다. 독일인은 이 시대 흐름의 기조에 크게 기여하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어쨌든 미국인의 기여도는 상당히 컸다. 그들은 퇴근시간이 자기들 맘대로였다. 아랫사람이 뭘 알겠냐마는 밑에서 보기엔 그랬다. 다른 미팅이 있을지도 모르고 Confernce Call 준비로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원래 임원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더 이상한 자리이니 당연한 것일지 모르겠지만 일단 확실한 건 그들은 퇴근시간에 연연하지 않았다. 실제로 미국 연구소는 Working Level 들조차 자기 퇴근시간을 자기가 조절한다. 주중에 더 일을 많이 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고 대부분 금요일 점심시간 이후로는 사무실이 텅 비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외국인 임원의 재임 시절을 보내고 난 뒤 임명되신 한국인 임원 분도 업무 효율성을 강조하시는 분이셨고 퇴근시간 지키기에 솔선수범 하셨다. 비아냥 거리는 것이 절대 아니다. 오해가 있을 수 있는 부분이라는 건 알지만 이를 욕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대기업은 야근이 생활화되어있다. 요즘은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윗선에 자리해 있는 꼰대들이 허다하고 야근을 직장 미덕이라고 까지 여기는 풍조가 아직도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서라도 그치면 좋겠지만 자기 일을 다하고 칼퇴근을 하는 직원들을 열정이 부족한 직원이라고 여기거나 뺀질거리는 사람으로 동일시 여기는 건 정말이지 문제가 크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을 개선한다거나 퇴근 문화를 개선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난제 중의 난제이며 우리 사회의 풀리지 않는 숙제이다. 어쨌든 우리 회사는 이와는 전혀 달랐다. 앞서 설명한 다소 개방된 기업문화가 있음으로써 꽤 오래전부터 칼퇴근 문화가 깊숙이 자리 잡게 되었다. 우리 회사를 포기할 수 없는 큰 이유 중에 하나이다. 멀리 돌아왔지만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무리 짓자면 칼퇴라는 당일 최대의 목표는 업무시간에 임하는 나의 조바심을 부추기는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퇴근에 대한 스트레스이다. 이 부분에서는 두 가지 경우가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칼퇴근에 실패한 경우다. 많지 않은 경우지만 이런 나도 가끔씩은 칼퇴근에 실패하기도 했다. 물리적인 이유, 소요시간이 정확히 정해져 있는 업무가 일정상 퇴근시간에 걸쳐 세팅됨으로써 물리적으로 칼퇴가 불가능하게 되는 불가항력 적인 이유는 받아들일 수 있다. 또는 나 스스로의 연구 호기심 또는 열정 내지는 재미로 인하여 업무가 다소 길어진 경우에도 칼퇴를 못하는 이 상황이 당연히 용인된다. 내가 결정한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가 합의한 경우 또는 자의에 의한 경우가 아닌 외부의 명령 또는 지시에 의해 퇴근이 미뤄지는 경우인데, 이는 대부분의 경우 윗사람이 그의 필요에 의해 발생되는 경우가 많다. 그중에서도 윗사람의 필요가 내가 납득할 수 없는 터무니없는 이유, 소위 뻘짓을 요구함으로써 내가 칼퇴를 못하게 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경우라면 이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억지로 부여받은 일을 하게 될 때는 일이 곱게 될 리 없다. 효율성은커녕 정확성도 형편없이 떨어지게 된다. 질적으로 수준 이하의 결과물이 나올게 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 글을 읽는 선임급 또는 관리자 이상급의 직장인이라면 이 부분을 주의 깊게 보시고 이쪽 편이 되어서 한 번쯤은 이해해보고자 노력해주시길 당부드린다. 이게 바로 야근 또는 연장근무를 강요해서는 안 되는 결정적인 이유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고 인과관계가 너무나도 확실한 예상하기 쉬운 상황임에도 이러한 일이 만연하는 이유는 그 주변으로 얽히고설킨 복잡 다양한 사회구조 때문이겠지만 누군가는 시작해야 하고 사회 곳곳에서 하나 둘 시작하는 이 변화의 불씨가 우리 사회를 가역적으로 되돌려 놓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다시 또 본론으로 돌아가서 나 스스로가 납득되지 않는 이유로 칼퇴를 놓치게 되면 그날 저녁은 망친 거나 다름없다. 조바심이나 스트레스는 이미 극에 달해있다. 스트레스는 스스로가 조절해야 하고 관리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발생된 스트레스는 나 스스로에게나 이 사태를 유발한 직장 내 관계자, 보통은 차상위자들에게나 서로 좋지 않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 둘 사이의 관계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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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퇴근에 대한 스트레스 두 번째 상황이다. 칼퇴근에 성공한 경우이겠다. 칼퇴근마저 했는데 또 무슨 스트레스냐고 되물을 수 있다. 스트레스라는 건 대개 남이나 외부환경이 나에게 미치는 악영향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나는 대부분의 경우에 스트레스는 결과적으로 본인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변이나 외부환경이 어찌 되었건 결국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은 내가 반응하여 내가 만들어낸 올가미에 스스로가 옥죄임 당하고 있다는 것과 다름없다. 내 경우엔, 칼퇴를 한 상황이면 또 칼퇴를 한대로 또 다른 스트레스의 요인을 찾아낸다. 다름 아닌 육아이다. 집에서 아이들 육아에 고군분투하고 계실 장모님이나 더러 우리 어머님 그리고 때로는 아내가 혼자 집에 있을 때 아내의 육아전쟁을 생각하면, 나는 또다시 조급해진다. 칼퇴한 지금이 기분 좋아서 휘파람이나 불면서 느긋하게 퇴근길의 드라이빙 따위를 즐길 여유가 없다. 내 앞에서 바뀐 빨간 신호등이 야속하고, 한 번 바뀐 신호가 길게만 느껴지면서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다. 신호가 바뀌면 악셀 페달을 힘껏 밟아 전속력으로 튀어나간다. 이러다 언제 어디서 사고가 나도 이상하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운전이 급하기만 하다. 위험한 것도 알고 있고, 이러다 사고라도 나면 더 늦어지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큰 사로로 이어질 경우에는 가족에게 더 미안해질 상황을 만든다라는 것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나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가 없었다. 과장처럼 들리겠지만 실제로 매일같이 퇴근하면서 집에 돌아오는 내내 드는 나의 실제 심정이 이랬다. 칼퇴하고 돌아오는 퇴근길마저 이러한 조급함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았다.


이렇게 10년의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에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출근길이건 퇴근길이건 사고한 번 나질 않았고 업무적으로도 크게 실수한 것 없이 무사히 지금까지 왔다.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천운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육아휴직에 돌입한다. 그리고 딱 지금 이 순간 내 마음 어딘가에 변화를 느끼기 시작한다. 작지만 큰 변화임이 틀림없다고 확신까지 할 수 있다. 아직 육아휴직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이제 당분간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평생을 나의 분신처럼 따라다녔던 조급함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음이 느껴졌다. 이제 겨우 시작하는 상황이고 앞으로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이 변화는 내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가져다줄 것만 같다. 앞으로의 내 삶과 내 모습이 무척이나 기대된다.

어쨌는 내일이면 또 월요일인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홀가분함을 느낀다. 내일부터 나는 진짜로 육아휴직을 시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