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친을 요양원에 모셨습니다.
22년 3월 초 모친을 요양원에 모셨다.
가끔 TV를 통해 요양원의 실태를 보면 노인들이 요양원을 가는 경우는 더 이상 건강이 회복불능 상태인 경우에 그곳에서 생을 마치는 곳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 필자 또한 그렇게 알고 있었기에 모친을 요양원에 모시는 것을 가족회의에서 극구 반대했다. 그러나 가족회의 끝에 현실에 순응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을 인지했다. 모친을 직접 모시고 있는 형님의 경우가 과연 나라도 그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10 년 전부터 색소 망막 변성증이라는 병을 앓기 시작한 모친이 앞을 보지 못하면서 점차 기억력도 떨어지면서 급기야 치매까지 오게 되었다.
다행히 착한 치매이기에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진 않으셨다. 그러나 야간에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면서 모친을 돌보는 형님의 일상이 깨어지는 상황이 발생되었다. 야간에 서너 차례 화장실을 가야 하고 때론 침대에서 볼일을 보시는 모친을 혼자 감당해야 하고 밤새도록 모친을 돌보면서 그 피로감으로 인해서 다음날 회사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런 상황을 듣고서 이젠 모친을 요양원으로 모실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필자 나이 스무 살에 아버님을 여의었고 그때부터 삼 남매를 혼자 키우신 어머니였다.
그렇게 혼자 몸으로 40여 년 세월을 지내면서 삼 남매 출가를 다 시키신 어머니가 이젠 당신의 삶을 즐겨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 이르다 보니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 앞에 그저 눈물만 흐를 뿐이다. 자주 회자되는 말로 막상 효도를 하고 싶어도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말을 피부로 진하게 느끼게 되었다.
다들 100세 시대라고들 하는데 주위를 둘러보면 과연 100세 시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7,80을 살아도 정신이 온전하게 내 두 다리로 산천을 걸어 다닐 수 있는 건강이 뒷받침될 때 100세 시대의 의미가 있지. 두 다리로 걸어 다니기도 힘들고 약으로 연명하면서 살아가는 100세 시대는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회사를 다니면서 필자의 나이 때 사람들 중 십중팔구 어떤 약이지만 한, 두 종류의 약을 먹고 있다. 어떤 이는 심장 약, 어떤 이는 혈관 약 그리고 좀 심한 경우에 암이라는 중증을 앓은 후 그 치료약을 복용하곤 한다.
모친을 요양원에 모시고 이 주일 후 첫 면회를 갔다. 코로나 시국이라 모친을 뵈러 갔지만 온전히 보지 못하고 모친과의 대면하는 사이에 투명 칸막이가 있는 상태에서 볼 수 있었다. 투명 칸막이 뒤로 보이는 모친을 보면서 그새 부쩍 늙어 보이시는 모습에 잠시 가슴이 뭉클해졌다. 젊음을 자식을 위해 희생했던 모친의 노년의 모습이 이렇게 변하게 됨에 자식 된 도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모친에 대한 연민이 한 번에 밀려왔다. 모친과 동시대를 살아왔던 이 땅의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난 뒤의 노년의 모습이 대동소이할 것이다. 그러나 결코 좋은 모습이 아니다. 자식의 행복을 위해 왜 당신의 노년의 삶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필자가 모친과 같은 시대 상황에 처해 있었다면 과연 자식을 위해 모친처럼 자식에게 그렇게 헌신적인 노력을 했을까 라는 반문을 하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라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앞으로 몇 년 아니 몇 달을 사실지 알 수 없지만 살아 계신 그날까지 만이라도 큰 고통 없이 편안한 삶을 살다가 가셨으면 하는 바람밖에 할 수 없는 현실에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 무뚝뚝한 경상도 사람이라 어머니 앞에선 제대로 표현 못한 말로 글을 마칩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