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의 전조

by 이야기여행자

JQ9920이 정신을 차렸을 때, 곁에 있어야 할 KS3019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찌 된 것이지? 분명 무언가에 세게 얻어맞은 기억이 있는데… 설마?”


그는 욱신거리는 뒷목을 감싸 쥐고 휘청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잿빛 모래바람이 불어닥치며 시야를 가렸고, 갈라진 건물 잔해들이 부서져 나간 채 흩어져 있었다. 헬멧 HUD를 켜 시스템 이상 유무를 점검한 뒤, 그는 떨리는 숨을 고르며 통신을 시도했다.


“본부. JQ9920이다. 지금 위치는 광장 서쪽. 좌표 11.29.0.5… 코다 조직원으로 보이는 MY0401을 추적하다 놓쳤다. 파트너인 KS3019도 현재 행방불명이다. 아니… 잠깐!”


JQ9920의 시야 저편, 흙먼지 속에서 언뜻언뜻 바람이 소용돌이치며 파고 들어가는 공간을 발견하고 조심스레 몸을 낮추고 걸음을 옆으로 내딛으며 다가갔다. 그리고 그 순간 헬멧 내부에 남아 있는 짧은 영상 기록이 재생되었고, 순간 JQ9920의 얼굴은 굳어졌다. 영상 속에서 KS3019는 자신을 내려치고 MY0401을 뒤쫓아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 길은 곧 코다의 본거지로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젠장…그 친구가 거길 왜 따라간 거야.’


광장 북쪽, WT0530은 20여 명의 경찰관들 앞에서 날 선 목소리로 작전을 지시하고 있었다.


“지금 코다의 폭도들과 KS3019가 같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가 인질인지, 아니면 동조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무장한 경찰관이다. Director의 명령에 의해 전원 다 사살해도 좋다.”


말끝은 칼날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평소엔 냉정한 성격으로 알려진 WT0530이었지만, 뜻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을 때는 불안정할 만큼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진압작전이 지연되고, 게다가 KS3019 마저 이탈했다는 보고에 굉장히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JQ9920. 그간 KS3019 이상행동에 대해 왜 보고하지 않았지? 지난번 사건 때문에 내가 대기발령 시켰을 때도 자네가 그를 옹호했잖아. 결과가 이 꼴이야. 뭐라 변명할 텐가?”

신경질적인 반응에 JQ9920은 다소 주눅이 들었으나, 곧 침착하게 눈을 마주했다.

“맞습니다. 그가 이상 행동을 보인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국장님, 그동안 KS3019의 성과를 누구보다 잘 아시잖습니까? 단순히 충동적 일지 몰라도, 그는 절대 배신할 사람은 아닙니다. 분명 이유가 있을 겁니다.”

WT0530은 잠시 입술을 깨물더니, 어둡게 웃었다.

“… 그래. 자네 말도 일리가 있군. KS3019는 보통 대원과는 다르지. 만약 문제가 생겨도… 즉시 조치할 수 있겠지. 오히려 이게 기회일지도 모르겠어.”

“맞습니다. 즉시 해결 가능한 방법도 있으니까요. KS3019는 국장님이나 저랑은 다르지 않습니까?”

“일단 5명씩 4개 조를 구성해서 동서남북 네 방면으로 포위해서 들어가자고. 그다음에 자네가 먼저 KS3019를 설득해 보고, 설득이 안 될 시 바로 진압 시작하는 것으로 하지. 일단 나는 상부에 현 상황을 다시 한번 보고하겠네.”

“국장님. 알겠습니다. 그럼 작전 개시하겠습니다!”


곧 진압 작전은 시작됐다. 포위망과 함께 굳게 닫혀 있던 문은 연속 폭발음과 함께 산산이 부서졌고, 금속 파편이 튀며 잔해가 바닥에 쏟아졌다. 경찰관들이 그림자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JQ9920은 레이저건을 움켜쥔 채 어두운 복도를 달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말 배신한 건 아니겠지? 과연 그에게 그런 행동이 가능할 수가 있는 건가?’

극장을 포위하고 진압을 시도하는 모습

“경찰특공대가 들이닥쳤어! 시간이 없어! 여기를 폐쇄하고 도망쳐야 해!”

요하탄이 숨을 몰아쉬며 벙커로 뛰어들어왔다. 그의 눈빛엔 절박함이 서려 있었다.


은주는 요하탄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KS3019, 아니 엘리온을 바라보았다.

“계획대로 진행해야 해. 엘리온… 당신은 일단 여기 남아줘. 그리고 약속한 대로 해주길 바라. 믿을지 안 믿을지는 당신의 몫이야. 하지만 난… 당신의 긴 방황이 끝났다고 믿고 있어. 아니라면 지금, 여기서 나를 쏴도 좋아.”

“…”

“어서! 시간이 없어!”


요하탄은 몸집만 한 배낭을 둘러메고, 동료들을 비밀 통로로 이끌었다. 세이렌은 마지막 순간, 고개를 돌려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은주는 끝까지 남아 KS3019를 바라보더니, 차갑지만 단호한 눈빛을 남기고 통로를 닫았다. 남겨진 건, 낡고 버려진 공연 무대뿐.


KS3019는 홀로 남아 은주가 알려준 버튼을 눌러 통로를 완전히 감췄다. 통로는 감쪽같이 사라졌고, 정적만이 무겁게 깔렸다. KS3019는 그들이 준 알약을 얼른 집어삼켰다. 순간 식도가 찢어지는 듯한 격렬한 고통과 함께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에 털썩 쓰러져 버렸다.


잠시 후 경찰특공대가 도착했을 때, 발견된 건 고문의 상흔이 남은 채 겨우 숨을 붙이고 있는 KS3019 뿐이었다. 반면 코다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지 않았다. WT0530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불같이 화를 내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를 타고 현장을 떠나갔다. JQ9920은 마지막까지 남아 차가운 잔해와 고통에 찬 동료의 몸을 바라보며 속으로 되뇌었다.

‘흔적이 없어… 그들이 어떻게 사라진 거지? 그리고… KS3019의 이 상태는 대체…?’


그로부터 5일간 KS3019는 의식불명 상태였다. 6일째 깨어난 날, 그를 찾아온 사람은 JQ9920 뿐이었다. 조사도, 문책도, 어떤 명령도 내려오지 않았다. 기묘할 정도로 고요한 나날. 그는 깊은 의문에 빠졌다.


‘무언가 이 사건을 은폐하려 하고 있다!’


그는 일주일 후 다시 경찰국으로 복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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