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는 끝없이 추락하는 듯 내려갔다. 상층의 불빛은 희미하게 멀어지고, 철제 골조가 삐걱대는 소리와 묵직한 진동이 온몸을 울렸다. 빛은 점점 옅어졌고 진동은 더 깊고 묵직해졌다. 벽면의 유리 뒤로 지나가는 금속 뼈대들, 불규칙적으로 깜박이는 청백색 전등. 모든 것은 살아있는 듯, 그리고 자유롭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KS3019는 헬맷을 벗어 엘리베이터 바닥에 무겁게 내려놓았다. ‘쿵’ 하는 소리가 어둠 속에 파문처럼 번졌다. 이내 철문이 열리자 싸늘한 공기가 폐 속에 파고들었다. 발을 내딛자 끝이 보이지 않는 복도 끝까지 발자국 소리가 울려 퍼지고 멀리서 낮은 합창소리가 천정을 타고 내려왔다. 통로의 끝, 홀의 중앙에는 수십 개의 케이블이 모여 거대한 유기체와 같은 덩어리를 이루고 있어서 반투명한 외피 안쪽에서 일렁이는 빛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이윽고 그 주변에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엘리온!”
뒤를 돌아보니 어둠 속에서 은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와주었군.”
요하탄의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이어졌고, 마지막으로 세이렌이 고요한 미소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가 우리 심장부야.”
은주가 낮게 말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여기 모여있는 건 아니지만… 실은 좀 심각한 상황이야.”
KS3019, 엘리온은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어떤 상황이지?”
자신의 입에서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온 순간, 그는 스스로 놀랐다. 이들의 일에 발을 들일 생각조차 없었던 자신이, 왜 이렇게 반응하는 것일까?
잠시 전, 그는 3일 전의 기억으로 휩쓸렸다. 퇴근 후 조용히 책을 읽던 집. 벨소리. 모니터에 나타난 얼굴. EJ3242. 결혼 라이선스 발급 거부 이후, 두 달 만에 찾아온 그녀였다. 어색하고 낯선 재회의 공기 속에서 그녀는 맑은 미소를 건넸다.
“잘 지내고 있었어? KS3019…”
“어. 웬일이지?”
EJ3242는 핸드백에서 작은 쪽지를 건네며 말을 이었다.
“이것만 전해주고 갈게. 3일 후 여기 적혀있는 곳으로 와주었으면 해. 중요한 일이 있어.”
KS3019는 한참을 망설이다 겨우 입술을 뗐다.
“… 내가 가지 않는다면 어쩔 거지? 혼자가 아닌 경찰 동료들과 간다면?”
“당신이 그럴 리 없잖아… 당신이 누구인지 내가 모르겠어?”
EJ3242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고, 이어 단호하게 말을 이어갔다.
“당신이 올 것이라 믿어. 이건 우리들이 감당해야만 할 일이니까.”
다시 현실. 싸늘한 공기가 바람이 되어 작은 먼지를 일으키고, 은주는 잠시 고개를 돌렸다가 대답했다.
“Director가 우리의 실체에 거의 다가오고 있어. 곧 경찰당국에서도 여기를 알게 될 거야.”
요하탄이 말을 이었다.
“우리가 가진 정보에 따르면 아직 Director의 본체는 해당 좌표에 머물러 있어. 하지만 언제 상황이 뒤바뀔지 몰라. 우리가 먼저 찾아내야만 해!”
KS3019는 숨을 들이켰다. 그러나 터져 나온 것은 망설임과 고뇌였다.
“… 시간이 필요해. 난 아직 모르겠어. 난 질서를 지키는 자야. 세상의 균형을 믿었지. 하지만 라이선스 제도는 내 삶을 옥죄고, 내가 원하는 길을 막아섰어. 불공평하다고 느끼면서도… 이게 진짜 진실인지, 아니면 또 다른 거짓인지 알 수 없어. 그래서 아무것도 결정할 수가 없어…”
목소리는 점점 떨리고, 그는 주저앉고 싶을 만큼 심장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혼란과 두려움이 전신을 휘감았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거짓인지 판단하는 것조차 두려워졌다.
그때 은주가 조용히 다가와 그를 안았다. 따스한 체온이 전해졌다.
“알아… 당신이 어떤 마음인지. 두려움은 당연한 거야.”
그 순간, 세이렌의 노래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투명한 선율이 싸늘한 공기를 녹여내고, 얼어붙은 심장을 흔들었다. 마치 “너는 틀리지 않았다”라고 속삭이는 듯.
엘리온은 눈을 감았다. 오랫동안 꽁꽁 묶여 있던 감정의 매듭이 하나둘 풀려나갔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그의 시선에는 새로운 불빛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 절망이 아니라 선택을 향한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