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곳에 Director가 있었다니!”
엘리온은 좌표를 확인하고 숨이 멎는 기분이 들었다. 그 장소는, 며칠 전 자신이 음주 위반자를 적발했던 그 ‘Amen’ 술집이었다. 가장 일상적이었던 곳, 가장 사소했던 구석에 결정적인 것이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이 그를 얼어붙게 했다.
“언제나 가장 가까운 곳에 가장 위험한 것이 있는 법이지.”
요하탄은 담담히 어깨를 펼치며 말했다. 그의 어조엔 장난기 대신 냉정한 계산이 배어 있었다. 그 말투는 엘리온이 견뎌온 JQ9920의 건조한 어투와 묘하게 닮아 있었고, 엘리온은 그 때문에 잠깐 불편해졌다.
“어떻게 접근할 생각이지? 나는 순찰을 돌며 그지역을 간다 쳐도, 당신들은 어떻게 할 셈이지?”
엘리온의 질문은 떨렸지만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은주는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의 충혈된 눈 안에는 결의가 섞여 있었다.
“아니… Director는 당신 혼자 만나야 해.”
“무슨 소리지? 내가 혼자? 어떻게?”
놀람과 분노가 뒤섞여 튀어나왔다. 은주는 나를 힘껏 쳐다보다가 깊은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곳은 허가받은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어. 그런데 그 허가받은 존재는 바로 엘리온. 당신이야. 왜인지는 나도 몰라. 하지만 우리가 얻은 정보에 의하면 어느 누구도 그곳에 갈 수 없어. 오직 당신만 빼고 말이야. 사실 그래서 우리는 당신이 더더욱 필요해.”
은주는 다시 한번 확신에 찬 눈빛과 목소리로 엘리온에게 말했다.
"당신이야말로 Director에게 닿을 수 있는 유일한 키야!"
다음날은 2주에 한 번씩 진행하는 임의순찰의 날이었다. 2인 1조가 원칙이지만 나름 선임급인 엘리온은 단독으로도 순찰할 수 있는 라이선스가 있었다. 다만, 사전에 순찰구역과 목적에 대해서 보고하고 승인을 받아야 했다.
“JQ9920. 나는 센트럴 타운 번화가 경계선을 한 바퀴 둘려보려 해.”
“일전에… 음주위반자 적발했던 곳이 맞지?”
그가 휴머노이드라 생각하니 비로소 이해되긴 했지만, JQ9920은 여전히 무심한 목소리이다.
“WT0530에게도 보고하고 승인받았어. 자네는?”
“나는 오늘은 사무실에서 근무할 예정이야. 아직 코다건으로 정리할 자료가 많아.”
엘리온은 속으로 안심하며 주섬주섬 장비를 챙겨 들고는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헬멧 HUD 시간은 오전 10시. 30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지만, 결연한 의지가 가슴속 깊이에서 떠올랐다.
‘Amen’ 앞. 지난번에는 황량했던 서부시대의 주점으로만 보였는데, 지금은 수많은 비밀을 품은 거대한 요새와도 같이 너무나도 달라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지난번 봤던 술집 주인과 바텐더가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그가 경찰임을 인지한 듯 바텐더는 경계하는 모습으로 질문을 했고, 엘리온은 바텐더에게 경찰임을 확인시키듯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헬맷 HUD로 확인하니 바텐더는 휴머노이드였다.
“지난번 위반사건도 있고 해서 다시 한번 왔습니다. 창고를 확인할 수 있을까요?”
바텐더는 엘리온을 힐끗 보더니, 이내 창고로 안내했다. 그리고는 오래된 임무를 끝낸 것처럼 낮게 말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편히 둘러보시길…”
창고 안은 술이 담긴 상자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고, 더 깊은 안쪽에는 지하로 가는 계단이 있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은빛의 견고한 철문이 드러났다.
철문이 스스로 열리자 거대한 공간이 드러났다. 하얗게 비어 있는 홀. 소음조차 사라진 완벽하고 완전한 무음의 공간. 공기조차 정지된 듯 바람소리조차 없었고, 어디가 바닥이고 벽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는 백색의 공간이었다. 그곳 한가운데 거울처럼 매끄러운 구체가 빛도 그림자도 없이 떠있었다. Director였다.
엘리온은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발자국조차 울리지 않은 이곳은 마치 현실이 아닌 공간 같았다.
‘이것이… 세상을 통제하는 존재’
가까이 다가서자 구체 안쪽에서 무수한 형상이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어린아이의 웃는 모습, 노인의 깊은 눈빛, 기쁨에 차서 울먹이는 소녀, 슬픔에 눈물짓는 여인 등 온갖 인간의 표정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곧이어 구체표면에 파문이 일더니 공장의 조립라인, 경찰관들의 행진, 교육센터에 무표정하게 앉아있는 학생들, 라이선스 센터에서 테스트받는 사람들, 그리고 실망하는 모습들…
“너는 나를 파괴하러 왔는가?”
Director의 기계음으로 내보낸 짧은 질문이 공간에 낮게 깔렸다.
엘리온은 가만히 주변에 감도는 Director의 기계음을 느끼면 대답했다.
“… 아니. 나는 진실이 알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