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식탁에 앉아 있었다.
의자는 제 키보다 조금 낮아 보였고, 등받이에 몸을 깊이 기대고 있었다. 고개는 숙여 있지 않았지만, 시선은 나를 지나 어딘가를 향해 있었고 양쪽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나는 컵에 물을 따르다 말고 딸을 보다가 컵 가장자리에 물이 넘치기 직전에서야 가까스로 손을 멈출 수 있었다.
“이어폰 좀 빼고 얘기해.”
딸은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음악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분명 무언가를 듣고 있었다. 그게 음악인지, 아니면 아무 소리도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지금 딸의 귀에 내 목소리가 들어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중요한 얘기야.”
그제야 딸은 한쪽 이어폰을 뺐다. 반대쪽은 그대로였다. 뺀 이어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지 않고, 손에 쥔 채로 나를 봤다. 그 표정이 늘 나를 헷갈리게 한다. 무표정한데, 무시하는 것 같지는 않다. 듣고 있는 것 같지만, 듣고자 하는 것 같지도 않다.
“말하세요.”
나는 준비해 온 이야기를 꺼냈다. 학교 얘기, 앞으로의 계획, 적어도 이 나이엔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얘기. 내가 그 나이에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어떻게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지까지.
나는 숫자를 좋아한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확률과 평균은 감정과 달리 일관성이 있다. 딸에게도 그걸 알려주고 싶었다. 아니,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딸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간중간 “응” 하고 짧게 대답했다. 반박하지 않았다.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게 더 불안했다. 아이는 보통 반발한다. 말대꾸를 한다. 그런데 딸은 그러지 않았다. 마치 이미 끝난 이야기를 다시 듣는 사람처럼.
“그래서 말인데, 적어도 올해는—”
“알겠어요.”
딸이 말했다. 생각보다 빨랐다.
“아빠 말대로 할게요.”
그 말은 늘 나를 안심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반대였다. 말이 너무 쉽게 나왔다. 약속은 이렇게 가볍게 나오면 안 된다. 약속은 망설임 끝에 나와야 믿을 수 있다.
“정말로 이해한 거야?”
딸은 잠깐 나를 봤다. 그때 이어폰을 다시 귀에 꽂았다. 아주 자연스럽게. 마치 원래 거기에 있어야 할 물건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것처럼.
“네. 이해했어요.”
그게 끝이었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딸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겼다. 오래된 백팩이었다. 어깨 끈 한쪽이 조금 헐거워 보였다. 언제부터 저랬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필요해지기 전까지는 그런 걸 잘 보지 않는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집이 조용해졌다.
나는 식탁에 남아, 딸이 빼놓고 간 이어폰 한쪽을 한참 바라봤다. 가방을 챙길 때 한쪽이 떨어졌나 보다. 딸은 매사 이런 식이다. 물건을 아무 데나 흘려놓고 찾느라 법석을 떨고, 그러다가 잃어버리고, 잃어버려도 찾지도 않고…
이 모든 것이 아이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특히 아빠인 나의 말을…
이해란 것은 결국 서로가 대화를 통해 상대방을 알게 되는 것인데, 나와 딸 사이에 말은 늘 오갔으나, 그중 대부분은 딸에게 닿지 않았다.
그렇게 딸이 이어폰을 끼고 다닐 만큼 크기 전까지 우리는 꽤 오랫동안 잘 지내왔다고 생각했다.
딸이 18살이 된 지금,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