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식탁 맞은편에 서 있었다.
물을 따르려고 정수기에 컵을 대고 있었는데, 나를 보는 데 신경을 쓰느라 시선이 자꾸 어긋났다. 컵 안에서 물이 차오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아빠는 황급히 손을 뗐다. 물은 넘치지 않았고, 아빠는 그 사실에 잠깐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표정을 보니 살짝 웃음이 낫지만 나는 모른 척 앉아서 고개를 숙였다.
나는 에어팟을 꽂은 채 유튜브 영상을 듣고 있었다.
연예인 가십을 짧게 정리해 주는 채널이었다. 누가 누구랑 헤어졌고, 왜 사과문을 올렸고, 댓글 반응이 어땠는지. 굳이 화면을 보지 않아도 상관없는 내용이라서, 학교 가기 전 아침에 듣기엔 딱 좋았다. 잠도 덜 깨고, 생각도 많이 안 해도 되고.
“이어폰 좀 빼고 얘기해.”
아빠는 항상 이어폰이라고 불렀다. 내가 쓰는 게 에어팟이라는 건, 아빠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말이 나오기 전까지 아빠가 얼마나 오래 참고 있었는지는 알 수 있었다. 아빠는 항상 그렇게 말한다. 마치 갑자기 생각난 말처럼. 사실은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연습한 말이라는 걸 나는 안다.
“끼고 있어도 다 들려요.”
나는 한쪽 에어팟을 빼며 아빠를 봤다.
아빠는 그 모습을 보고도 만족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한쪽만 뺐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항상 그렇다. 나는 아빠가 원하는 만큼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전혀 안 하는 것도 아니다. 그 사이 어딘가에 늘 서 있다.
아빠가 뭔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학교 얘기, 계획 얘기, 올해는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얘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 말은 대부분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했고, 친구들 부모님도 했고, 인터넷에서도 수없이 본 말들이었다. 그래서 새롭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틀린 말도 아니었다.
아빠는 항상 내가 모르고 있거나 잊어버렸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항상 듣던 아는 것들이고, 너무 많아서, 굳이 말하지 않는 건데.
“네.”
나는 적당한 타이밍에 대답했다.
아빠는 내가 반박하지 않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내가 순순히 따르지 않을 거라는 신호라는 걸, 아빠도 알고 있다. 그래서 설명은 점점 길어지고, 목소리는 점점 단정해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아빠는 설명을 늘리면 상대방이 이해할 거라고 믿는 사람이라는 걸.
“알겠어요.”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아빠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
그 표정을 나는 잘 안다. 안심도 아니고, 화도 아니다. 믿고 싶지만 믿을 수 없을 때 나오는 얼굴이다. 그 표정이 나올 때마다 나는 마음이 조금 복잡해진다. 차라리 화를 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 적어도 감정이 같은 높이에 있을 테니까.
나는 다시 에어팟을 귀에 꽂았다.
음악도, 영상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대신 아빠의 말들이 조금씩 늦게, 그러나 전부 다 들어왔다. 아빠는 내가 듣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나는 너무 많이 듣고 있어서, 어디까지가 내 생각이고 어디부터가 아빠 말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겼다.
낡은 백팩이었다. 어깨 끈 한쪽이 조금 헐거워져 있었지만, 아직은 쓸 만했다. 새 걸 사자고 하면 아빠는 분명 왜 지금 필요한 지부터 물어볼 것이다.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필요하다는 감각은 설명하기 어렵다.
현관을 나서면서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아빠는 여전히 식탁 쪽에 서 있었고, 아마 내가 나간 뒤에도 한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이다. 아빠는 항상 일이 끝난 뒤에 그 자리에 남는다. 끝난 대화를 다시 정리하듯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에어팟 한쪽이 없다는 걸 알았다.
다시 찾으려고 들어가려다 아마 또 물건을 아무 곳에나 놔둔다거나,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식의 아빠의 잔소리가 생각나 그냥 가기로 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아빠는 자상하고 재밌었다. 하지만 고2가 된 나에게 점점 바라는 것이 많아졌고, 내가 그것에 부합하지 못할 때 아빠는 항상 설명을 했고, 설득을 했다. 우리 집에서는 이해보다는 설명이 먼저였다.
그리고 우리가 자주 어긋나는 가장 큰 이유가
그런 우리 집의 방식이라는 걸,
나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