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공방전

by 이야기여행자

그렇게 첫날이 지나고 두 번째 날을 상쾌하게 맞이했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로 오빠가 침을 질질 흘리며 날뛰다가 아이스크림 미친 듯 퍼먹던 어제의 장면을 떠올리며 행복하게 미소 지었다.

‘아~ 개운해~”

요 며칠 변비 때문에 인생의 모든 의욕이 사라져 있었는데, 어제의 승리감 때문인지 소화가 절로 되고, 심지어 장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마치 몸 안에서 개복치가 춤추는 청량한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다가 문득 또다시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주인공이 악당들의 음식에 변비약을 타서 시도 때도 없이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던 모습.


‘그래… 이거다.’

전쟁을 이미 시작되어 멈출 수 없었고, 나는 지체 없이 다음 작전을 개시했다.

오빠는 어제 매운 걸 먹어 속이 뒤틀렸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음료수에는 내 이름이 붙어있다.
그리고 물은… 우리 둘 다 자유롭게 마셔도 되는 공용 식품.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물만 마실 거다.

‘완벽해.’

나는 약국에서 산 변비약 한 통을 꺼냈다. 그리고는 정성스레 변비약을 잘게 부수었다. 거의 한통 분량이었다. 효과는 확실해야 하니까.

‘이게 뭐 하는 짓이지? 내가 이렇게까지…’

갑자기 자괴감이 들기도 했지만, 망토를 휘날리는 다스베이더를 생각하니 이를 악물고 밀가루처럼 아주 곱게 갈았다.


“후후후… 이 정도면 장도 포기하겠지.”

그리고는 물을 먹는 척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낸 후, 닥치는 대로 가루를 털어 넣고서는 흔들고 또 흔들었다. 살짝 등줄기로 땀이 흘러내렸다.

‘자… 이제 무대는 준비됐고, 주연배우는 뭐 하시나?’

너무나 집중한 나머지 나도 목이 탔다. 하지만 물을 마시면 안 된다. 나는 대신 내 이름이 붙은 500ml짜리 우유를 벌컥벌컥 거의 한 번에 원샷으로 마셨다. 유난히 상큼하니 맛있었다.

내가 우유를 먹고 있자, 이제 일어난 듯 다스베이더가 어슬렁 기어 나왔다. 저걸 쓰고 잔 거냐?

기지개를 한번 켜고는 약간 꺽꺽리는 듯하더니,

“크흠… 어제 그… 그 샐러드 때문에 속이 뒤집혀서 말이야…”

그리고는 가면을 반만 올리고는 매번 하는 것처럼… 공중에서 ‘입 안 대고 드링킹 하기’를 시전 하였다.


물은 오빠의 입 주변을 50% 확률로 비껴갔고, 대부분 턱과 목을 타고 흘러 셔츠를 적셨다. 입안으로 들어간 양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입보다는 옷이 더 먹은 건 확실했다.

‘아니 그냥 컵에 따라먹으면 안 돼??’

하지만 오빠는 그걸 무려 반 통이나 들이켰다.

그 정도로도 효과는… 확실할 터였다. 하지만 더 확실히 해야 했다.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숨기며 말했다.

“물 좀 더 마시지 그래? 속 안 좋을 텐데.”

그때 오빠가 내 쪽을 힐끔 보더니, 아주 묘한 톤으로 말했다.

6-1.png 상한 우유를 마신 은서와 약을 탄 물을 마시는 오빠

“너나 걱정해라… 우유 맛있니?”

순간. 내 눈이 커졌다.

‘… 잠깐.’

오빠의 말투에 의미심장한 싸한 느낌이 있었다.

순간, 나는 우유가 유난히 상큼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런데 이제 보니 신맛에 가까웠음을, 게다가 발효된 듯 약간 걸쭉했음을 느꼈다.

나는 우유갑을 뒤집었다.

유통기한이 일주일을 훨씬 넘었다.

맞다. 이것도 내가 베이킹한다고 사다 놓고 그대로 둔 것이었다. 엄마가 상한다고 버리라고 할 때 알았다고 대답만 하고 놔뒀던 것이 바로 그 우유다.


“으아악!!!”

“후후훗. 오늘 화장실 난리 나겠네. 깨끗이 써라~”

오빠는 남은 물에 입을 대고는 벌컥 들이키며 사악하게 웃었다. 분명 가면 속의 눈이 좋아라 하는 반달눈이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오빠가 물통에 입을 댔다는 건 이 물을 다 마실 거라는 의지의 상징이라는 걸.

“캬아~ 물 맛 좋다!’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그 뒤로 집은 말 그대로 전쟁터가 되었다.


“아아악! 야 김은서!! 너는 안방 화장실 가!!!”

“왜 내가 안방이야! 내가 먼저 신호 왔다고!!!”

“내가 더 급해!!”

“아니야 내가 더 급해!!!”

“우씨… 안방 변기가 막혔다고! 흐어헝”

둘은 서로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전투복을 입지 않은 전사처럼 비틀거리며 싸웠다.

그렇게 더러웠던 전쟁은 자정이 되어서야 비로소 멈출 수 있었다.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고, 막힌 안방 화장실 변기를 세차게 뚫고 있던 오빠는 그제야 자기가 왜 화장실을 그렇게나 들락거렸는지 갸우뚱했다.

“아씨… 나는 우유 안 먹었는데… 왜 그랬지?”

나는 팬티차림으로 뚫어뻥을 들고 있는 오빠를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오빠가 바보라서 참 다행이다.’

그러고 나서 침대에 누워 이제야 진정된 배를 가만히 토닥이며 다짐했다.

‘내일은 정말 끝장을 보자!’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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