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틀 창 Sep 28. 2023

아웃사이더: 인조

영화 '올빼미' (2022)

#왕따 당하는 왕


이름 이종 (李倧), 조선의 16대 임금.

직업만 들으면 그는 아웃사이더와 가장 거리가 먼 것 같지만 철저한 외톨이가 맞다.


명나라가 쇠퇴하고 청나라가 떠오르던 때에도 우리 조선의 선비들은 사대부의 근본을 운운하며 청은 오랑캐니 배척하고 다 죽어가는 명에게 끝까지 충성을 다해야 한다고 세상의 흐름을 전혀 읽지 못하는 소리만 해대고 있었다.


여기서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는 왕, 인조는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일관했고 결국 당대 최고의 군대를 가진 청나라는 한겨울 얼어있는 압록강을 건너 한양으로 들이닥쳤다 - 인조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도성과 백성을 버리고 안전해 보이는 남한산성으로 도망쳤다.


독 안의 든 쥐 꼴이 된 그는 결국 청에게 무조건적인 항복을 하고 그 과정에서 여러 번 머리를 바닥에 찧으면서 절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조선백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군신관계를 수락하고 맏아들 소현세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인질로 청에 보내는 대가로 겨우 국권만 유지하여 쓸쓸히 창경궁으로 돌아온 왕을 좋아하는 사람은 궁궐뿐 아니라 온 나라를 뒤져봐도 없다.


피해의식과 열등감 덩어리


조선사 통틀어 가장 무능하다고 욕먹는 왕 인조는 아싸 중의 아싸가 틀림없다.


#못난 왕이 미워한 아들 소현세자


시간이 흘러 청나라 물먹은 맏아들 소현이 컴백했다.

아들이 청나라에 끌려갈 때 울고 불고 했던 아버지 인조는 막상 9년 만에 그가 돌아오자 마음이 복잡하다 - 마음속 깊숙이 처박아 두고 애써 외면하고 있던 청나라에 대한 그날의 굴욕이 다시 생생하게 되살아 나는 기분이다. 그에게 오랜만에 본 아들은 트라우마를 강하게 상기시키는 존재일 뿐이다.


아버지 저한테 왜 그러세요?...


더욱이, 소현은 청나라에서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조선에 가톨릭과 서양과학을 조선에 들여와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 트라우마를 상기시킨 것도 모자라 아예 청나라 사람이 되어 돌아온 그를 못난 아버지 인조는 감시하고 대놓고 박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수 일 후 소현세자는 죽은 채 발견된다. 온몸이 검은빛을 띠고 얼굴의 일곱 구멍에서는 피가 흘러나온 채로 말이다.


원래 지병이 있었다고는 하나 꽤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고, 죽음 이후 인조의 행동이 정말 수상하다 - 둘째 아들 봉림대군을 소현의 아들 대신 세자로 서둘러 책봉하고, 소현의 아내이자 자신에겐 맏며느리인 강빈을 역모죄로 몰아 죽여버렸다.


뭔가 냄새가 난다.


#아웃사이더를 향한 합리적인 의심


세세하게 적기로 유명한 조선실록에는 소현의 사망을 두고 아주 간단히 3줄 정도의 요약 뿐이다.

이 영화는 그의 죽음을 두고 오늘의 아웃사이더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고 의심한다.


그 당시 이형익이라는 유명한 어의가 있었다.

인조의 특명을 받은 이형익은 침에 독을 발라 정성스럽게 소현에게 놓는다 - 애초에 건강이 좋지 않은 세자는 그들의 목표를 이루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야밤에 행해진 모든 과정을 함께했던 맹인 의원 경수는 사실 주맹증 환자였고, 어둠 속에서는 올빼미 못지않은 시력을 갖고 있기에 생생하게 지켜보았다.

경수는 암살의 배후에 인조가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파해치려 하지만 한낱 의원 나부랭이가 왕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 소현의 죽음은 '학질'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당연히 실록에도 그렇게 기록된다.



오늘의 주인공 인조는 마침내 선을 넘었다.

원체가 리더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 당시 조선군 자체가 임진왜란, 이괄의 난 등을 겪은 상황이라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었기에 막강한 군대를 가진 청에게 굴욕을 당한 것은 그나마 실드(?)를 쳐줄 구석이 있다. 하지만 자신의 무능함으로 인해 청나라에서 개고생을 하고 돌아온 소현세자 일가를 풍비박산 낸 것은 정말 비정하다.


궁궐은 작은 곳이다. 그리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인조가 소현에게 한 짓에 대한 의심이 증폭될수록 가뜩이나 무시를 당하던 그는 대놓고 수군거림을 받는 정도의 종이호랑이로 전락해 버렸다.

소현이 그렇게 가고 4년 뒤 인조는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고 갑작스럽게 두드러기와 오한으로 고생하는 왕을 위해 신하들은 당대 최고 침쟁이를 부른다 - 그의 이름은 '경수'


그는 자신이 본 것에 대한 복수를 한다.

아웃사이더에서 빌런으로 변해 버린 왕은 그렇게 갔다.

경수는 왕이 '학질'로 사망했다고 보고한다.

그리고 실록에도 그렇게 기록된다, 마치 소현세자가 죽었을 때처럼.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작가의 이전글 언더독: 토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