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무도 모른다' (2004)
12살 소년 아키라.
엄마 그리고 동생 3명과 함께 산다.
학교는 한 번도 다녀 본 적이 없다. 그의 동생들도 물론 그냥 집에 방치되어서 알아서 크고 있다.
왜냐? 엄마에게 아키라를 포함한 아이들은 축복이 아닌 자신의 행복을 방해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철이 심하게 일찍 든 아키라는 그런 엄마 대신 동생들의 모든 케어를 전담하는데, 참다 참다 엄마한테 왜 그렇게 책임감이 없냐고 한마디 쏘아붙였다. 하지만 돌아온 엄마의 변명.
왜 나는 내 인생을 즐기면 안 돼?
며칠 후 엄마는 결국 떠났다, 몇 푼의 돈과 크리스마스 전까지 돌아온다는 거짓말과 함께.
도쿄의 작은 아파트에 버려진 아키라와 그의 동생들은 이 사회에서 철저한 아웃사이더 들이다.
아키라는 똑똑한 애다, 분명 엄마가 떠난 그날부터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낌새를 챘을 것이다.
하지만 '설마 진짜 우리를 버렸겠어?'라는 희망을 갖고 현실적으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엄마가 남기고 간 돈을 쪼개서 아껴 쓰고,
어렴풋이 기억나는 아버지의 친구들을 찾아가서 돈을 빌리기도 하고,
편의점에서 유통기간이 지난 음식을 받아서 동생들과 나눠먹기도 한다.
하지만 12살 소년의 '살아보고자 하는 열심'을 이 세상이 알아줄 턱이 없다.
공과금을 내지 못해 전기와 수도가 끊겼다.
근처 공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공터 수돗가에서 빨래를 하게 되었다.
이때쯤 우연히 알게 된 사키라는 여자애가 있다. 학교에서 이지메를 당하면서 원조교제로 용돈벌이를 하는 또 다른 아웃사이더. 집에 놀러 와서 동생들을 함께 돌보기도 하면서 가까워졌다 - 역시 아싸들끼리 통하는 게 있나 보다.
사키가 네 남매의 딱한 상황을 보고 돈을 건네지만 아키라는 그 돈을 거절했다 - 아무리 우리가 힘들어도 남이 원조교제로 번돈을 받아 쓸 수는 없다 이런 느낌.
생활고에 시달리던 아키라는 마침내 용기를 냈다 - 엄마에게 전화를 해보기로 한 것, 마치 자신들이 버림받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행위인 것 같아 판도라의 상자처럼 외면하고 있었던 최후의 방법이었는데 이제 정말 굶어 죽을 것 같기에 전화를 건다.
엄마는 성이 바뀌었다. 그들이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막내 유키는 비행기를 참 좋아한다.
아키라는 그런 동생에게 꼭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보여주겠다고 약속했었다.
잠깐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유키가 집에서 놀다가 다쳤다.
끼니는 못 챙겨줘도 꼭 살려서 비행기를 보여줘야 한다 - 어린 가장은 약국에서 약을 훔쳐서 집에 돌아왔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는 건 2, 3번째 동생들의 당황한 표정.
형 유키가 안 움직여, 이제 유키 못 보는 거야?
아키라는 눈물 흘릴 시간도 없다, 자존심을 버리고 사키에게 가서 돈을 빌려 유키가 평소에 좋아하던 초콜릿, 인형 그리고 신발을 산다. 그리고 트렁크에 그녀를 넣고 하네다 공항에 가서 묻는다.
언더독 아웃사이더 스토리의 클리셰는 상대적인 약자가 시련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다.
뻔한 스토리라도 쾌감과 감동을 준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오늘의 아웃사이더에겐 싸워서 이겨낼 시련이나 빌런들이 없다.
사회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 짓밟힐 뿐이다, 조용하지만 아주 무참하게.
아무도 모른다 라는 제목에서 '아무도'에 우리들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묵직하게 아프다.
더 슬픈 건 2004년과 2023년 지금의 사회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여전히 아무도 모른다'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아키라는 성인 되었을 것이다 - 그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최소한 소중한 사람들을 허무하게 잃지 않을 정도의 힘이 있기를 바란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