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4등' (2016)
초등학생 수영 선수 준호.
시합만 나갔다 하면 기가 막히게 딱 4등을 한다.
축구 명장 주제 무리뉴는 2등은 루져 중에 1등뿐이라는 명언을 남겼는데 이에 따르면 준호는 루져들 중에 3등일 뿐이다.
준호에게는 헌신적인 엄마가 있다 - 절에 가서도 자신이 아닌 가족들, 특히 큰 아들 준호에 대한 기도를 간절하게 하는 그런 엄마.
그녀는 준호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자식의 성공을 통해 자아실현을 꿈꾸는 듣기만 해도 답답한 사람이다.
준호는 수영 대회에서 1,2,3위와 싸우는 언더독이자, 엄마의 과중한 기대에서 오는 압박감과도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그런 와중에 엄마가 성적을 올리자면서 끌고 간 곳에서 더한 악인을 만난다.
좋은 코치를 만나면 만년 4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 엄마는 광수라는 코치에게 아들을 맡긴다.
광수는 아이들을 욕하고 때리면서 가르치는, 감정이 이성을 지배하는 생또라이 같은 빌런이다.
사실 그는 한국 신기록도 세웠던 잘 나갔던 수영 선수 출신이다. 그러나 자신의 재능을 믿고 음주, 도박등으로 수많은 밤을 허비했고 그저 그런 선수로 은퇴했다. 그는 실패의 이유를 자신 안에서 찾는 대신 오냐오냐 하기만 했던 주변 코치들을 아직도 탓한다. 막장이었던 자신을 더 엄하게 지도했더라면 난 더 잘 됐을 텐데 하는 그의 후회가 현재 아이들을 쥐 잡듯이 패면서 가르치는 폭력코치의 길로 인도했다.
그는 준호도 같은 방식으로 가르치기 시작한다.
폭행이 반복되면서 머리와 상관없이 준호의 몸이 반응한다 - 작은 의미 없는 움직임에도 움찔하는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돼버린 준호.
그는 점점 수영이 하기 싫어진다. 분명 재미있어서 시작한 건데 말이다.
그러면서 근본적인 질문이 마음 깊은 곳에서 피어난다 - 왜 1등을 해야만 할까?
오늘의 언더독은 인생에서 가장 큰 용기를 내 엄마에게 말한다.
준호: 수영 그만둘게. 맞기 싫어
거기서 돌아오는 잔인한 엄마의 속사포.
엄마: 네가 무슨 권리로 수영 그만둬? 엄마가 너보다 더 열심히 했는데 혼자 수영을 그만두냐고 이 나쁜 놈의 새끼야!
...
할 말이 없다.
준호는 밖에서 시련을 겪더라도 무조건적인 지지를 받아야만 하는 안식처 같은 곳, 가정에서도 얻어터지는 언더독임이 입증되었다.
어린 나이에 큰 상처와 상실감을 겪은 준호.
시간이 흐르고 혼자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하면서 그는 깨닫는다.
아 내가 수영을 정말 순수하게 좋아하는구나.
그러면서 그의 인생에서 두 번째로 큰 용기를 내 광수를 찾아가 부탁한다 - 때리지 않는 조건으로 다시 가르쳐 달라고. 그런데 폭력코치 입에서 생각도 못한 말이 나온다.
니 혼자 해봐라. 그럼 금메달 딴데이
뭘 잘못 먹은 걸까, 아니면 나를 너무 때려서 미안해서 그냥 하는 말일까.
의문이 있었지만 혼자서 수영을 열심히 한다 - 한다는 표현보다 즐긴다. 엄마 그리고 광수의 압박감 따위는 훌훌 벗어던지고.
그리고 그는 1등을 했다.
이기고 싶은 마음, 1등을 하고 싶은 마음은 절대 잘못된 것이 아니다.
탑독을 이겨보고자 최선을 다하는 언더독들의 노력을 '결과에만 너무 집중한다'며 폄훼한다면 필자가 이런 글을 쓸 필요도 없을 거다 - 과정에 따른 결과가 나와줘야 통쾌하고 즐겁지 않겠는가.
판을 엎어보고자 하는 동기부여가 어디서 오느냐가 본질이지 않을까.
준호가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코치에게 맞지 않기 위해서 했던 수영과 본인이 정말 하고 싶어서 했던 수영의 질과 결과가 완전히 달랐던 것처럼.
2002년 월드컵에서 히딩크가 본인의 커리어만을 생각해서 선수들을 훈련장에 묶어놓고 채찍으로 때리면서 훈련했다면 결과는 뻔했을 거다.
선수들은 '본인들이 정말 잘해보고 싶어서' 독하게 모든 과정들을 견뎠고 4강이라는 말도 안 되는 결실을 맺었다.
언더독들에게는 내적동기가 이렇게 중요하다는 걸 초등학생 준호를 통해 배운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