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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 창 May 13. 2023

언더독: 재키 로빈슨

영화 '42' (2013)

#오늘의 언더독: 영화 42의 재키 로빈슨


미국에서 인종 차별이 극심했던 시기인 1947년을 꿋꿋이 살아가는 흑인 남자다.

야구 선수다, 니그로 리그 (이름도 참 원색적이고 가혹하다)의 스타플레이어로, 흑인팬의 유입과 팀의 수익 증대를 원한 브루클린 다저스 (현 LA다저스) 단장 브랜치 리키의 오퍼를 받고 팀에 합류한다.

다혈질 성격이다, 원래 그렇게 태어난 것인지, 기본적으로 부당한 것에 항상 참고만 살아야 하는 시대가 만든 성격인지는 모르겠으나 항상 곁을 지키며 지지해 주는 아내 레이첼이 그의 폭주를 제어해 주는 역할을 한다.



#재키는 왜 언더독인가


간단하다. 흑인으로 태어나 야구를 심하게 잘해 그 당시 백인들만의 전유물이던 메이저리그에서 뛰게 된 첫 번째 유색인종 선수이기 때문에 - 이것이 그가 언더독인 이유다.


물론 그가 야구 선수가 아니었어도, 그 당시를 살아가는 한 명의 흑인으로써 매일매일이 쉽지 않았겠지만 (그 당시는 모든 공중 시설도 백인, 비(非) 백인으로 구분되어 쓸 수 있었고, 먼저 예약을 한 비행기도 백인 승객이 나타나면 군말 없이 양보해야만 했던 사회였다), 특히 미국의 국민 스포츠인 야구, 그것도 최상위 프로레벨에 입성 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매 경기, 재키는 상대편 백인 선수들 뿐만이 아닌 모든 백인 관중과도 싸워야만 하는 절대적 약자였다.


상대편 선수들, 기자, 관중, 심판 할 것 없이 모두가 그의 적이었다


#그가 꿋꿋이 싸워갈 수 있었던 이유


그를 지지해 준 사람들 덕분이다, 그들은 재키 편에 섬으로써 함께 언더독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도 기꺼이 그의 함께 한 매우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아내 레이첼은 가족이고 앞에서 살짝 언급했기에 제외한다!)


첫 번째, 그를 영입한 단장 브랜치 리치 - 탁월한 비즈니스 맨이다.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 그는 처음 재키를 영입할 때, 흑인 사이에서 야구가 점점 인기가 많아진다는 것을 알고 영입 제안을 했다. 인종차별에 대항하는 의미가 아닌 다분히 마케팅적인 관점에서 결단을 내렸다.


달러는 흑백이 아닐세, 녹색이지 모든 지폐가 녹색이야!

위의 대사가 그 목적을 분명히 해준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는 진심으로 재키의 지지자가 되는데, 관중들의 야유, 상대팀의 희롱, 수많은 협박 편지들을 받으면서 크게 좌절하는 그의 선수를 바라보며 "동네에서 야구놀이를 하는 흑인 꼬마들에게 자네는 영웅이야"라는 감동적인 멘트를 날리는 그의 얼굴은 마치 양아들을 바라보는 대부같다. 사실 그는 선수 시절 유망주였던 흑인 동료가 인종차별로 인하여 꿈을 접는 것을 방관한 죄책감을 가지고 산 인물이었고, 재키에게 길을 열어 줌으로써 그의 과거의 과오를 조금이나마 만회한다.


그다음으로는 같은 팀 동료들이다.


처음 재키가 팀에 합류했을 때, 다저스 선수들은 엄청난 반대를 했다.

흑인과 뛰기 싫다며 서약서에 사인을 하거나, 심지어 트레이드를 요청하는 선수들도 있었는데, 첫 번째 지지자 리키 단장의 지시를 받은 감독이 선수단을 불러 모아 따끔하게 한마디를 한다.



재키는 우리와 함께 간다, 같이 야구하기 싫으면 그보다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하면 돼, 그만 징징거리고 가서 연습이나 해!

시즌이 시작되고 엄청난 야유 속에서도 꿋꿋이 실력으로 보여주는 재키를 보며 대다수의 선수들도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중에서 두 명 정도를 꼽는다면.


에디 스탠키, 필라델피아의 감독인 밴 채프먼이 과해도 너무 과한 인종차별 적인 폭언을 퍼붓자, 팀의 리더 격이던 그가 나서 불같은 설전을 벌인다 - 재키는 이날 처음으로 같은 팀원, 그것도 팀의 상징적인 존재가 자신을 '쉴드' 쳐주는 것을 보며 힘을 얻는다.


피 위 리즈, 신시내티 출신인 다저스 선수다. 그의 고향은 그 당시 인종차별자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던 지역이었고, 원정경기를 앞두고 "흑인과 함께 경기를 뛰는 너는 배신자"라는 협박 편지를 받고 움찔하지만, 리키 단장의 설득으로 경기에 출전한다. 경기 당일, 신시내티 관중들의 온갖 비방과 욕설이 쏟아지는 가운데 피 위 리즈는 영웅적인 행동을 보여준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제일 기억에 남았다).


보란 듯이 재키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한 것, 용기를 주는 몇 마디를 건네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이처럼 팀원들은 점점 재키를 자신들과 다르지 않은 팀원 중에 하나로 받아들인다. 처음에는 단지 흑인이라서 심하게 욕을 얻어먹는 재키에 대한 '연민'으로 시작한 마음이지만, 나중엔 다 함께 '연대'로 나아간다. 누군가를 단순히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과 진심으로 너는 우리와 다를 것이 없는 평등한 구성원이라고 여기는 마음 분명 크 차이가 있다.

 

#영화 속 그의 결말


해피 엔딩이다.


재키는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로 팀을 이끌고, 팀은 내셔널리그 챔피언에 오른다. 처음에 그를 향해 미친 듯이 야유를 퍼붓던 다수의 백인 팬들은 어느덧 그의 팬이 되고, 백인 어린이들은 그에게 사인을 요청하기도 한다.


성공적인 데뷔 시즌 이후, 그는 메이저리거로써 훌륭한 커리어를 쌓는다.

수차례 올스타에도 선정되었고, 리그 MVP도 해봤으며, 모든 선수들의 꿈인 월드시리즈 우승멤버가 되기도 했다.

그의 현역시절 번호였던 42번은 전 구단 공통 영구결변이 되었으며, 그가 데뷔했던 4월 15일이 되면 현재 그의 까마득한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그의 번호를 달고 그의 야구 인생을 기린다.



필자는 이번화의 주인공 재키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모든 언더독, 아웃사이더들이 억울하고 힘들겠지만 특히 그는 더 했겠다고, 왜냐?


단지 피부색하나만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으니 말이다.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도 아니고, 그의 부모가 양육과정에서 잘못을 한 것도 아니었고, 경제적인 상황이 힘들어서도 아니었다 - 그냥 1940년대의 미국사회에서 사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인생자체의 출발점이 언더독이었다.


그런 상황을 어떻게든 타파해 보고자, 재키는 버티고 또 버텼다. 그것도 혼자. 그렇게 속으로 삭이는 것에 익숙했던 그는 속에 화가 많은 성인으로 자랐다.

애초에 이 사회의 대부분의 자신의 적이라는 것을 너무 어린 시절부터 깨달았을 그는 누군가를 잘 믿지 못한다, 특히 백인에게는 우선 의심부터 하고 날을 세운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으리라.


나는 너네들이 날 좋아하든 말든 신경 안 써, 친구 사귀려고 여기 온 게 아니야. 존중 받든 말든 상관없어. 난 내가 누군지 아니까. 내가 날 존중하면 돼. 하지만 지는 것만은 싫어

그가 처음 다저스와 계약했을 때 했던 말에서 그의 방어기제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점점 그를 팀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주는 팀원들을 보면서, 그의 사회를 향한 독기는 점점 옅어진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좌절을 준 것도 사람들이고, 희망을 준 것도 사람들인 것이다.

이번 언더독의 이야기를 보면서,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 감정과 에너지를 어떤 방향으로 소비하느냐에 따라서 한 사람의 인생에 전혀 다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더 희망적인 부분은, 그렇게 사람들에 받은 상처를 사람들로 치유받은 한 사람이 또 다른 자신과 같이 힘든 시기를 견디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마치, 재키의 존재가 다른 흑인 선수들, 아니 전 흑인 사회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었듯이 말이다.


참고로, 주인공 재키 로빈슨을 연기한 배우는 채드윅 보스만이다, 바로 그 '와칸다 포에버'로 유명한 '블랙 팬서'의 주연이었던 그 배우. 그는 실제의 삶에서도 젊고 재능 있는 흑인들의 희망으로 살다가 대장암으로 이른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났다, 공교롭게도 그의 기일인 8월 28일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연기된 메이저리그의 재키 로빈슨 데이였다.


RIP.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 네이버 블로거 '도로시' & ML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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