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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Jun 27. 2024

161104-04

두 개의 거울



도대체 누가 화장실에 들어와서 볼일은 안 보고 가만히 있다 나가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이곳은 힘들게 찾아 마련해 놓은 나만의 공간인데 왠지 다른 누군가에게 들킨 것 같았고 머지않아 빼앗기게 될 것 같아 불안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창고 문을 열고 내가 나가면 밖에 있는 저 사람이 창고의 존재까지 알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문손잡이를 잡은 채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조용히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 총 3번. 그동안의 시간대를 유추해 보니 3시 전후였던 것 같다. 다음에는 그 시간대에 창고 문을 티가 나지 않게 살짝 열어놓고 안에서 확인해 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생각보다 바빠 5층 창고에서 여유 있게 쉴 수 있는 짬이 나질 않았다. 수요일에도 출근해서 점심시간이 훌쩍 지날 때까지 건물 이곳저곳을 청소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잠깐의 여유가 생겼다.


2시쯤 5층 화장실 안 창고에서 급히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을 하며 간이침대에 몸을 기대었다. 그 채로 깜빡 잠이 들었었나 보다. 누군가 화장실 문을 여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창고 문을 보니 살짝 열려 있었다. 시간을 보니 2시 50분경.


칸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안 나는 걸 보니 그 학생인 것 같았다. 간이침대에서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조심 몸을 일으켜 문 쪽으로 갔다. 창고 문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공간은 세 개의 수도쪽지 중 오른쪽 2개와 벽에 붙은 전면 거울 중 오른쪽 2/3에 해당하는 공간이었다. 그 학생은 다행히 가운데 부분에 서서 거울을 보고 있었다. 뒷모습과 거울 속에 비친 앞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은 딱 봐도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민낯이었다. 머리도 긴 생머리를 하나로 묶은 형태였고 옷차림도 청바지에 운동화, 학교 로고가 찍힌 점퍼 차림이었다. 여자 대학생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자신의 외모에 자신감이 넘치며 그것을 관리하고 더 돋보이게 하는데 온 신경을 쏟는 부류와 외모보다는 다른 것에 더 관심이 많은 부류. 일단 그 학생은 후자로 보였다.


소리를 죽인 채 거울 앞에 가만히 서 있는 학생을 보고 있자니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퇴근 전에 한 번 더 이곳에서 쉬려면 마냥 거울 속의 학생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문 옆에 세워 둔 대걸레를 들고 문을 여는 그 순간 학생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 화장실을 발견하고 처음에는 남들이 보면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큰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만 한참을 뜯어보다 그냥 나오곤 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원하는 만큼 오래오래 내 얼굴을 보곤 했다. 한창 외모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중학교 1학년 때 쉬는 시간 화장실에서 내가 설 자리를 찾지 못했던 것 때문일까? 그때 이후로 거울을 가까이 두었던 적이 없었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서 거울을 보지 않다 보니 집에서도 화장실이나 방에 있는 거울은 그저 혹시라도 얼굴에 뭐가 묻었거나 머리가 엉클어졌나를 확인하는 도구에 불과했다.


10년 가까이를 거울을 스쳐지나다녀서인지 10여 년 만에 들여다보는 내 얼굴이 예쁘다거나 못생겼다의 기준을 넘어서서 신기하게 다가왔다. 피부는 깨끗한 편이고 눈썹은 정리가 안 되어서 그렇지 진한 편이고 옅은 쌍꺼풀에 얇은 코와 붉은 입술. 하나씩 뜯어보니 봐줄만하다 싶기도 했다.


그렇게 내 얼굴만 들여다보다 하루는 문득 거울 속에 비친 내 뒤를 보았다. 화장실 문이 3개가 있었고 그 옆으로 얼핏 보면 화장실 문과 비슷한데 손잡이 부분이 다르게 생긴 문이 하나 더 있었다. 그리고 그 문에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청소도구함.


그리고 그 순간 왜인지는 설명할 수 없지만 저 안에 어떤 사람이 있어서 그동안 거울을 들여다보던 나를 계속 지켜봐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온몸의 털이 쭈뼛쭈뼛 서고 소름이 돋았다. 바로 나가고 싶었지만 그때 머릿속에서 이야기가 떠올랐다.


거울 속에 비친 청소도구함, 그 안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 그동안 내가 써왔던 소설들은 내 머릿속에서만 내 손 끝에서만 존재하고 만들어졌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실재하는 공간을 배경으로 어쩌면 진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장들이 막 생각났다. 생각난 문장들을 빨리 타이핑하고 싶어졌다. 이 공간을 사진으로 남겨두면 집에서도 문장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머니에 들어있는 핸드폰을 꺼내 거울 속에 비친 청소도구함을 찍는 그때.


그 안에서 정말로 누군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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