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우히어 Jun 28. 2024

161104-05

두 개의 거울



찰칵.


내가 창고 문을 열고 나가는 그때. 학생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사진을 찍었다. 나도 놀랐고 보아하니 그 학생은 나보다 더 놀란 것 같았다. 하긴 나는 그 학생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그 학생은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누군가를 보았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일부러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사과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대걸레를 들고 나왔으니 대걸레에 물을 묻히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 같아 물을 틀며 학생 미안해요. 놀랐나 보네. 하며 고개를 드는데 이미 그 학생은 나가고 없었다.


그냥 조금만 더 있다 나올걸. 대걸레를 빨며 나도 그 학생처럼 거울을 보았다.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밥 먹고 커피 마신 후 살짝 졸다 깬 사람치고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 집을 나설 때 말고는 거울을 본 적이 없었다.


머리는 산발에 오른쪽 뺨에는 잘 때 눌린 건지 대각선으로 자국이 나있고 점심때 먹은 오징어볶음의 고추장이 입가에 묻어 보기에 흉한 모습이었다. 대걸레를 씻다 말고 창고 안으로 들어가 불을 켜고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하고 머리에 물을 묻혀 손질을 하고 로션을 바르고 립스틱을 바르고 나니 그제야 거울 속 내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문만 열고 나가면 바깥에 훨씬 크고 깨끗한 거울이 있는데도 나는 어두운 창고 안의 작은 거울로만 내 얼굴을 편하게 볼 수 있었다. 그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만이 진짜 나의 모습처럼 보였다.


그때 대걸레를 담아둔 통 밖으로 물이 흘러넘치는 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나가 물을 끄고 대걸레의 물기를 짜는데 교직원이 들어왔다. 고생 많으시네요. 바닥에 물기 없게 관리 잘해주세요. 여태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물이 흘러넘치도록 틀어놨던 적도. 이 시간에 교직원을 5층 화장실에서 만난 적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까 그 학생의 핸드폰에서 찰칵 소리를 들은 이후로 무언가 잘못되고 있는 느낌이다. 그 학생이 여느 여학생들처럼 화장실 조명을 받으며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다른 것을 찍고 있었다면? 사실은 창고가 열려있는 것을 알고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나오는 그 순간에 나를 찍은 것이라면? 아까의 그 몰골 그대로 사진이 찍혔을 생각을 하니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반드시 그 학생을 찾아 핸드폰 속의 사진을 확인하고 나의 모습이 있다면 지워야 앞으로 마음 편히 계속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난생처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었다. 중학교 시절 다른 여학생들이 거울을 보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도 주로 책을 읽었었다. 그러다 중학교 겨울방학 때는 장난 삼아 재미 삼아 지금 다시 읽어본다면 정말 유치하기 그지없을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내가 썼던 글의 주인공은 현실의 나와는 다른 외모도 1등, 공부도 1등, 성격도 1등인 인기 많은 여학생이었다. 그 여학생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스쿨로맨스. 내가 쓰는 글을 통해 사춘기 시절의 호기심들을 간접경험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아무리 유치해도 많이 써보면 많이 느는 것이 글이기는 했는지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부터는 여전히 주인공은 10대 소녀이기는 했지만 손발이 오그라드는 스쿨로맨스가 아니라 제법 진지하고 깊이 있는 그러면서도 신선한 내용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정식으로 인정받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첫 당선작 이후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 30편 이상의 단편 소설을 썼다.


글을 쓰면서 항상 상상해 왔던 내용을 썼지 실제 경험한 내용을 쓴 적은 거의 없었다. 경험이 많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내가 경험했던 것 중에서는 글로 쓰고 싶을 정도로 인상적이거나 특별하거나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주 짧은 기껏해야 1~2초 되는 경험이었지만 5층 여자화장실 청소도구함에서 누군가가 나오는 그 순간은 나의 머릿속 생각이 눈앞에 펼쳐지는 아주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날 바로 집으로 돌아가 컴퓨터를 켜고 오랜만에 말 그대로 손가락이 자판을 날아다니는 시간을 보냈다. 앉은자리에서 원고지 60장 분량의 이야기가 샘솟았다.


내 글 속에서 청소 아주머니는 살인마로, 청소도구함은 아무도 모르게 사람이 죽어나가는 공간으로 탄생되었다. 아주머니의 살인동기, 살인대상, 살인방법까지 일필휘지였다. 사진에 찍힌 아주머니의 모습과 손에 들고 있던 대걸레만으로도 일사천리였다.


하지만 시체처리방법에서 손이 멈춰졌다. 청소도구함 안에서 시체를 처리해 아무도 모르게 쓰레기 수거차가 올 때 싣는다는 설정을 했지만 청소도구함 내부에 어떤 도구들이 있는지 모르니 글이 나아가질 않았다. 물론 상상만으로도 쓸 수는 있겠지만 청소도구함 내부를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에 사로잡히자 글이 1도 써지지 않았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아침 일찍 그 건물로 갔다. 그런데 저 멀리서부터 평소와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161104-0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