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도 구찮고 죽기도 구찮다

영화 「사람과 고기」를 보고

by 나우히어


에휴, 저걸 죽이지도 못하겠고 살리지도 못하겠고..


최근에 누군가가 자신의 배우자를 지칭하며 나에게 넋두리로 한 말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아무리 싫고 미워도 어떻게 배우자에게 저런 악담을 퍼부을까 했었는데, 불과 몇 개월 사이에 그 말을 쏟아낸 사람은 오죽하면 저런 심정일까 백분 이해가 되는 요즘이다.


오늘 「사람과 고기」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에 조예가 깊은 지인의 추천이라 더 신뢰가 갔지만 나도 나름대로 검색을 해 본 결과, 이 영화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역시 그 선택은 훌륭했다.



간단하게 리뷰하자면, 나이 들어 최소한의 인격을 유지하면서 살려면 젊은 시절에 돈관리와 건강관리에 더욱 신경을 쓰자~!인데, 이렇게 간단히 평가하고 넘어갈 영화는 아닌 것 같다.


특히나 나의 개인적인 아니 가족적인 요즘의 상황과 결부시켜 본다면 더더욱.


친정아버지와 시어머니가 병중으로 한 분은 부산에 한 분은 분당에 입원해 계신다. 병명이 뭔지, 현 상태는 어떠한지, 주보호자는 누구이며 역시나 고령인 그들의 건강상태는 어떠한지, 병원비는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지(감당할 건지), 앞으로 경과는 어떻게 될 것인지 등을 굳이 밝히고 싶지는 않다.


두 분은 10여 년의 나이차가 있지만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10여 년 전) 그러니까 친정아버지가 60세, 시어머니가 70세 즈음부터 병원 신세를 지게 되셨다. 그로부터 지난 10년 동안은 아주 가끔씩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발달된 의료 기술과 약물의 힘으로 버텨오시다가 작년 말~올해 초 들어 각각 70세, 80세가 되는 시점에 지병이 악화되어 각종 사건 사고들이 끊이지를 않고 있다.


나는 이 와중에 인복이 있는 건지, 친정아버지의 주보호자는 친정엄마여서 하나뿐인 딸인 나는 멀리 있다는 핑계로 그동안에도 그리고 상태가 많이 악화된 지금도 여전히 주보호자의 책임에서는 벗어나 있고, 시댁 쪽도 우선은 시아버지가 계시고 아주버님네가 다행히 2차 보호자 역할을 해주셔서 또 한발 물러서 있기는 하다.


그렇게 그동안에도 양쪽 부모를 생각하면 항상 불안하고 걱정되고 미안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아슬아슬하게 지내왔는데 일주일 전 시어머니가 그야말로 사고를 터트리고야 말았다.


내 나이 40대 중반, 나는 어려서부터 그리고 젊은 시절에도 종종 건강하고 우아하게 나이듦과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을 해왔는데, 나이가 들어가니 그 생각들은 점점 더 강해지고 짙어졌다.

죽음은 너무 무겁다 치더라도 건강하고 우아하게 늙어감에 대한 대화들은 이제 그렇게 낯설거나 피하고 싶은 주제는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러려면 지금부터 건강하고 우아해야 하는 것이지 싶다. 젊은 시절에 건강을 돌보지 않고 막 살았던 사람이 나이 들어서 갑자기 건강을 챙기고 우아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습관이라는 것이 그만큼 무서운 것이고 사람은 살던 대로 관성대로 살아가는 종족이고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이 영화는 각자의 기구한 사연을 지닌 70~80대 할아버지 2명과 할머니 1명이 주인공이다. 이 노인들은 그야말로 누가 누가 더 불행한가 내기의 주인공들이다. 하지만 그런 노인들이 영화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지척에 있어서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과하게 공감이 되어서 아니 이해가 되어서 꽤나 불편했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때 영화 속 노인들이 또 꼭 그렇게 불행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걸을 수 있고 위기의 상황에는 비록 숨이 차 죽을 것 같더라도 뛰어다닐 수 있는 건강한 두 다리가 있었고, 구운 고기를 쌈에 싸서 소주 한잔에 곁들일 수 있는 치아와 소화능력이 있었고, 동병상련이기에 시답잖은 농담, 심지어 죽음을 소재로 한 농담에도 함께 웃을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들은 돈이 없어서 고깃집을 돌아다니며 먹튀를 하다 끝내 덜미를 잡히고 만다.


입맛을 잃어 먹고 싶은 것도 딱히 없다고 하고 어쩌다 먹고 싶은 것이 생겨 가져다 드려도 소화능력이 저하되어 겨우 조금밖에 드시지 못하는 아빠. 무릎이 안 좋아 아파트 입구에서 동으로 들어오는 3~4개의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힘겨워하는 시어머니. 보호자나 주변인들 입장에서는 내 할 일을 제쳐두고라도 아니면 잠깐 여유가 생길 때라도 들여다본다고 봐도 하루 종일 병원에 있는 그들 입장에서는 무료하기 그지없을 하루하루.


그런 내 아빠와 시어머니에 비하면 영화 속 노인들은 그래도 행복해 보인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언제부터인가 영화나 드라마 속 팍팍한 주인공들의 삶보다 가끔은 내 삶이 더 불행하고 힘겹다고 느껴졌던 것 같다.


영화 후반부에 간암 말기의 주인공이 최후를 맞이하러 떠난 강원도 어느 산자락을 거니는 장면에 깔리는 내레이션.



살기도 구찮고 죽기도 구찮다.


그 말이 이제는 죽이지도 못하겠고 살리지도 못하겠다와 같은 뜻으로 들린다.


영화를 보면서 그리고 보고 나서 나는 노년에 내 배우자에게 그리고 내 자식에게 저런 존재로 여겨지지는 말아야겠구나 싶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지만, 쉬운 일도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려서 슬픈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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