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라트』를 보고
* 시라트 : 아랍어로 ‘길’을 뜻하며, 이슬람 전통에서 지옥 위를 지나 천국으로 향하는 좁은 다리를 의미한다.
모처럼 단잠을 자고 난 일요일 아침. 오전 할 일을 끝내고 무엇을 할까 하다 최근에 지인이 추천해 준 영화를 한편 보기로 했다. 나의 취향을 꽤 많이 알고 있는 영화 유튜버가 최근에 추천해 준 작품이 3편인데, 그중에 2편은 아직 안 올라와서 사실 제일 망설여졌던 것을 택하게 되었다.
왜 망설여졌냐면 영화가 전체적으로 매우 우울하다고 해서였다. 그래도 최근에 건강한 식생활 덕분에 대체적으로 기분이 좋은 편이고, 특히나 꿀잠을 자고 난 후라 컨디션이 좋아서 우울한 영화일수록 내가 우울할 때 보는 것보다는 이럴 때 보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보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초반에는 집중이 확 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폰으로 가볍게 영상을 만들면서 귀로는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영상은 띄엄띄엄 보았다. 다행히 자막이 많은 영화가 아니라 그 정도로도 전체적인 분위기나 내용을 파악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중반부에 등장한 충격적인 사고 장면부터 슬슬 영화에 시선이 더 가기 시작했다.(물론 그즈음 만들던 짧은 영상이 마무리되어서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잠깐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의 충격과 허탈감과 아픔에 같이 공감하다가 이내 또 끝도 없이 펼쳐지는 황량한 모래사막과 모래먼지를 뒤집어쓴 사람들의 무미건조한 표정에 지쳐갈 때쯤, 영화는 나에게 충격적인 장면을 보여주었다.
완전히 터질 때까지 밟아!
완전히 터질 때까지!
라고 외치며 모래사막에서 혼자만의 몸짓을 구사하던 사람이 한순간에 펑~하고 사라진다.
아마 영화관에서 더 큰 사운드에 더 큰 화면으로 봤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을 것 같다.
그 장면을 두세 번 다시 돌려봤다. 영화는 그 뒤로도 사람들이 걸어서 아니면 차를 몰고 사막 한가운데의 지뢰밭으로 스스로 들어가 펑~하고 사라지는 장면을 몇 차례 더 보여준다. 하지만 역시 처음의 충격이 가장 강했다.
감독이 그 장면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그 장면을 보고 느낀 점은 하나였다.
죽음의 순간은 저렇게 짧은 것이 긴 것보다 낫겠구나.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느냐 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생각한 대로 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미 결정했다. 삶에서 자립한 젊음을 추구했으니, 죽음에도 똑같은 척도로 임하고 싶다. 삶과 죽음에 관한 나의 기준은 명백하다. 몸을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점 외에는 없다. 간호가 필요하다고 판명되면 사람의 눈을 피해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고 수를 써서 스스로 생을 마감할 생각이다. 그 선택을 흔히 있는 자살로 여겨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 - 『나는 길들지 않는다』, 221p, 마루야마 겐지
https://m.blog.naver.com/2gafour/224165312021
어차피 누구나 죽는다. 그리고 죽으면 끝이다. 그 죽음으로 가는 과정은 사람마다 모두 다를 것이다. 그런데 나는 다른 것보다 나의 죽음의 과정이 제발 길지는 않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그래서 나도 영화 속 펑 터져 버린 여성(나는 그녀가 그 자리에 지뢰가 있는 것을 이미 알고 딱 그 자리에서 완전히 터질 때까지!라고 외쳤다고 생각한다)처럼, 스스로 생을 마감하겠다는 마루야마 겐지처럼 자주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아직은 정확한 방법을 정하지는 못했지만, 우선 겐지의 말에 너무나 공감한다.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고 수를 써서
나의 생을 스스로 마감하기.
다른 사람에게 나의 마지막을 내맡기지 않기.
내 삶의 마지막까지 내가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은
딱 두 가지이다.
맑은 정신을 유지하기 그리고 걸어서 화장실 가기.
내가 정신을 잃기 전에 그리고 기저귀를 차기 전에
나는 펑 터져버리고 싶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남은 사람들을 위해서.
https://youtu.be/Jm1lLahlhZI?si=KzUXAkrksIcgjyxE
그래, 이 영화 컨디션 좋은 낮에 봐서 그나마 다행이다.
우울한데 야심한 밤에 봤더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