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넘버원」을 보고
이번 설연휴에 가족들과 함께 보기에 괜찮은 한국 영화 한 편이 나왔다. 아마도 「휴민트」에 밀려 흥행에 크게 성공은 못 하겠지만, 그래도 잔잔하고 소소한 영화를 찾는다면 강추할만하다.
짧지 않은 러닝타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배우들의 연기가 조화로웠으며, 한국인들의 눈물버튼 모성애를 자극하는 정서까지, 고루고루 갖춘 영화였다.
그리고 부산 출신인 나로서는 빨간소고기뭇국, 콩잎무침, 정구지 넣은 돼지국밥 등 추억 속 정겨운 음식들이 자주 등장해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안해지는 느낌이었다.
뭐 비판적으로 접근하자면 또 여러 포인트들이 있겠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다.
이 영화의 마지막에
“당신이 엄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몇 번이나 남았습니까?”
(내 기억 속 문구라 정확하지는 않다.)라는 자막이 화면 한가득 잡힌다.
그리고 영화 중간에 지방에 계신 부모님을 설날과 추석, 일 년에 두 번 뵈러 가면 앞으로 부모님이 20년을 더 사신다고 해도 볼 수 있는 날이 40번 남았다는 대사도 나온다.
또 영화 내내 화면 중간중간 숫자가 등장한다. 365에서 시작한 숫자는 1까지 내려갔다가 마지막에 다시 2가 되는 동안 총 몇 번이나 나왔을까?
아무튼 사실 나는 고등학교는 이과 출신에 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했고, 현재도 청소년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평소에 꽤나 숫자와 친숙한 편일 뿐만 아니라 어떤 내용을 숫자로 인식하면 다른 설명 필요 없이 확 와닿을 때가 많다.
그래서 이 영화의 감독도 평소에 좀 숫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김태용 감독의 작품인데, 탕웨이 남편으로 유명한 그 김태용 감독과 동명이인이다.)
엄마의 집밥 했을 때, 나는 항상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있다.
이제 ‘엄마의 집밥’이라는 단어가 눈물 버튼이 되는 시대도 얼마 안남지 않았을까. 나는 아직까지는 친정에 가서 엄마의 집밥을 먹으면 힐링이 되는 세대이지만, 과연 내 딸은 나중에 어떨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물론 내 나이 또래의 아니면 더 어린 엄마들 중에서도 우리 엄마 세대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매끼 정성스러운 집밥을 차려내는 경우도 있겠지만, 나처럼 그런 정성스러운 집밥은 가끔 차리고, 배달음식이나 외식이나 아니면 한 그릇음식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해서이다.
그래도 얼마 전에 딸이 내가 한 겉절이가 맛있다고 심지어 그동안 사 먹었던 다른 김치보다 제일 나았고, 오늘도 저녁에 먹을 칼국수에 곁들일 겉절이는 다 떨어졌다고 하니 매우 아쉬워하는 걸 봐서는 나중에 성인이 되어 가끔 집밥을 먹게 되면 맛있게 잘 먹을 것 같기는 하다.
나는 이제 친정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산지가 12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보니 엄마의 집밥을 먹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래도 아직은 먹을 수 있는 횟수가 한 자릿수는 아니고 적어도 두 자릿수는 될 거 같다. 그것도 물론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서일까. 나는 오히려 이 영화를 보며 엄마의 집밥 이전에 외할머니의 손맛과 얽힌 추억이 자꾸 생각났다.
외할머니는 우리 애가 4살 때 돌아가셨는데, 영화를 보는 동안 문득문득 돌아가시기 몇 개월 전 외할머니와 엄마와 나와 내 딸, 모녀 4대가 함께 부산의 어느 식당에서 바닷가를 보며 먹은 점심 한 끼가 생각났다. 할머니는 이제 안 계시고, 우리 애는 기억도 못하겠지만 엄마와 나의 기억 속에는 선명하게 남아 있는 그날.
외할머니의 손맛에 대한 기억은 아주 극단적인 2가지가 남아 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아마도 4~5살, 아니면 6~7살. 1살 터울의 이종사촌 남동생들과 외갓집에서 자주 만나 어울려 놀고는 했었는데,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엄마와 이모는 우리들을 자기 엄마에게 맡기고 놀러 나갔었던 거 같다. 아무튼 할머니가 우리들 먹이려고 종종 호박범벅을 해주셨는데, 그 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호박범벅은 아는 사람만 아는 것일 텐데 노랗고 말간 호박죽과는 다르게 색은 조금 더 거무튀튀하고 안에 각종 콩들이 엄청 많이 들어간 음식이다. 어린 우리들은 놀다 말고 할머니가 부르면 셋이 나란히 앉아서 할머니가 떠먹여 주는 호박범벅을 한 숟갈씩 차례대로 받아먹고 또 놀고는 했었다. 그야말로 어미새가 아기새에서 먹을 것을 입에 넣어주는 딱 그 모습 그대로.
나중에 그 얘기를 엄마와 하며 그게 너무 맛있었다고 하니 엄마가 몇 번 해준 적이 있는데 솔직히 말해서 그 맛이 아니었다. 더 맛있고 맛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그 맛이 아닌 것이다. 아무튼 이제 다시는 그 호박범벅을 먹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구나 싶다.
극단적인 거라고 했으니 나머지 하나는 사실 생각하기 싫은 맛이다. 호박범벅을 받아먹던 때로부터 한 20여 년이 지났을 때였을까. 당시 이종사촌 중에 형과 내가 어떤 일 때문인지 외할머니네 집에서 밥을 먹게 된 날이 있었다. 우리 둘도 오랜만에 만난 상황이고, 외할머니 댁에 간 것도 외할머니를 뵌 것도 너무 오랜만이었고, 그 사이에 할머니는 많이 노쇠하신 상황이었다. 하지만 할머니 역시 우리들을 어릴 때 이뻐했던 기억 때문인지 너무 반가이 맞이해 주시며 괜찮다고 하는데도 굳이 밥을 차려주셨다. 이종사촌과 나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그래도 할머니의 마음이니 먹기로 했다.
당시 막내 이모와 둘이 사시던 터라 조그만 동그란 상에는 밥과 생선조림과 각종 김치와 밑반찬들이 놓였던 거 같다. 솔직히 말해서 우선 보기에 손이 가지 않는 비주얼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연세에 그게 당연한 거다 싶다. 그런데 아직 20대였던 그때의 나는 약간은 충격을 받았던 거 같다. 내 기억 속의 외할머니는 항상 단정하고 여성스럽고 깔끔한 분이었는데, 생선조림이 담긴 그릇의 지저분함과 밑반찬 통에 붙어 있는 양념들이 노쇠한 할머니를 말해주는 것 같아 놀라고 힘들고 속이 상했던 날이다.
아무튼 너무 맛있어서 또 먹고 싶은 호박범벅도, 너무 별로여서 입에 넣기 싫었던 생선조림도 더는 이 세상에 없다.
객관적으로 엄마가 외할머니보다는 전반적인 살림솜씨뿐 아니라 음식솜씨가 훨씬 낫지만, 엄마도 더 나이가 들면 외할머니처럼 흐트러지게 될까. 그렇게 되기 전에 정갈하고 고급지면서도 깊은 맛이 있는 엄마의 집밥을 더 많이 먹을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리고 영화에서처럼 반대로 내가 엄마에게 집밥을 해드릴 수 있는 날도 더 많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