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하는 사람이나 반발하는 사람이나

오랜만에 찾은 대중목욕탕에서

by 나우히어


목욕탕 풍경


목욕탕은 나에게 일종의 노인정이며 두세 시간 동안 핸드폰이나 다른 매체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게 해 준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꼭 필요한 시간이다. 혼자 시간을 많이 보내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과 말을 주고받고 사람들 안에서 사는 이 시간이 내겐 소중하다. 다양한 세대를 관찰할 기회를 준다. 무엇보다 건강에 좋다. - 『즐거운 어른』, 이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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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한 달 아니 정확히는 3주.

딸과 나름대로 식단관리 + 유산소 운동을 하며 각각 5kg씩 감량에 성공을 했다.


https://youtu.be/GkfpNqsW5n8?si=SVqQnQ58bfvTrlMQ

3주동안 5kg 감량에 성공



고생한 우리를 위해 토요일 저녁엔 짜파구리 한 개 반과 지코바 숯불구이 치킨으로 소소한 치팅을 하고 일요일에는 땀을 빼러 찜질방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늦잠을 자버린 딸 덕분에 찜질방은 못 가고 대신 시설이 괜찮다는 사우나를 가게 되었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사우나실에 들어갔다. 문을 열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딸과 나도 자리를 잡아보려고 하는데, 딱 봐도 사우나의 터주대감 같아 보이는 분이


“언니들~~ 머리에 수건 두르세요~” 한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벌거벗은 우리를 쳐다보는 상황은 피하고 싶어서, 우리 둘은 얼른 나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다시 들어갔다. 초반에는 생각보다 땀이 안 나서 딸은 자꾸 나가자고 했지만, 내가 조금만 더 버티자고 했다. 그렇게 버티다 보니 어느새 몸에서 땀이 뚝뚝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고, 이제는 내가 숨이 차서 딸보고 나가자고 하니 반대로 딸이 조금만 더 있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가 버티는 동안 아까 수건을 안 두르고 들어간 우리에게 지적질을 했던 분은 역시나 사우나실 안에서 쉴 새 없이 수다를 떨었다. 처음에는 딱히 대화의 상대가 없는 채로 혼잣말처럼 띄엄띄엄 말을 하더니, 잠시 후에 일행이 들어오자 본격적으로 수다를 시작했다.


수다의 내용은 사우나가 있는 동네(서울 광진구)에 대한 자랑, 자신의 팀장에 대한 칭찬과 욕, 김치나 된장을 담그는 비법, 강아지를 데리고 갈 수 있는 리조트 중 어디가 좋은지, 90대 노령의 어머니를 집에서 모실지 요양병원으로 옮길지에 대한 고민 등 실로 다양했다.


그렇게 주되게 2명이 대화를 나누고 비슷한 또래의 몇몇이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에도 사우나실의 문은 간간이 열렸다 닫히며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고 앉아있던 사람들이 나가고 했다.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올 때 우리처럼 머리에 수건을 안 두르고 들어오면 여지없이

“언니~머리에 수건 두르세요. 저기 쓰여 있잖아요.” 했다.


머리에 수건을 두르라는 이유가 나는 처음에는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 때문이라고 생각을 했다. 물론 그 이유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들의 대화에서 알게 된 것은 젊은이들이 머리에 수건을 안 두르고 들어오면 냄새가 확 난다는 것이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젊으면 호르몬 분비가 왕성하기 때문에 그들이 들어올 때 사우나실 안에 젊은이의 (머리) 냄새가 확 풍긴다는 것이고 그래서 꼭 수건을 두르라는 것이다.


그 말을 하는 뉘앙스는 뭐랄까, 늙은 자신들에 비해 젊은이들에게 풍기는 그 냄새가 조금 거슬린다는 느낌이었는데,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부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그들이 말하는 냄새가 뭔지 잘 모르겠는 나는 아직 덜 늙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속으로 조금만 조용히 해주면 좋겠다 싶었다. 그렇게 듣고 싶지 않고 알고 싶지 않은 얘기가 계속 내 귀에 들어오던 그때, 사우나 실 문이 열리며 상대적으로 시원한 공기가 들어왔고, 또 어김없이


“언니~머리에 수건 두르세요.” 했다.


참 들어오는 사람마다 일일이 지적을 하는 것도 대단하다 싶었다. 땀도 흘릴 만큼 흘렸고, 계속 반복되는 이야기도 지겹고 어차피 자리도 거의 없는 상황이라 슬 일어나려고 하는데 이번에 지적질을 받은 사람은 제법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이었는지,


“왜요?” 한다.


딸과 나는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아마) 다음 상황이 궁금해서 일어나려다 말고 잠깐 멈췄다.


“저기 쓰여 있잖아요. 머리에 수건 두르고 들어오라고~”


“아니 왜 꼭 그래야 하는데요? 이런 데는 처음 봤네~” 하며 수건을 안 쓴다.


더 구경하고 싶었지만 이미 일어났던 상황이라 다시 앉기도 뭣해 자연스럽게 딸과 나는 밖으로 나오게 되었고, 그다음 상황이 조금 궁금하기는 했다.


머 젊은이가 결국에 수건을 둘렀던지, 아니면 늙은이들이 계속 잔소리를 했던지 둘 중에 하나겠지.


아무튼 오랜만에 간 사우나는 나에게는 약간의 스트레스였다.


굳이 자기들의 기준을 강요하는 기성세대나 또 굳이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으려는 MZ세대나 둘 다 나에게는 피곤한 존재들이었다. 보통 4~50대를 끼인 세대라고 하는데,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찜질방을 대체할 곳을 찾다 보니 1인 사우나, 1인 스파 시설들이 생긴 거 같던데, 사우나실의 불필요한 수다와 지적질과 실갱이가 싫으니 다음부터는 돈을 조금 더 내고라도 그런 곳을 가던지 해야겠다.


이런 나도 나중에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이옥선 할머니처럼 다른 사람들과 말을 주고받을 수 있고,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는 대중목욕탕을 다시 찾게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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