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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마흔_01

그녀는 실수한걸까?

by 나우히어
미안, 나 갑자기 일이 생겼어, 니들끼리 만나~


아 또 시작이네. 약속 시간을 30분 정도 남겨두고 김 빠지는 카톡이 왔다. 보낸 이는 역시나 수민.

정말 힘들게 잡은 약속이었다. 두 달에 한 번씩 만나던 자리가 코로나 때문에 6개월에 한 번, 1년에 1번으로 줄다가 작년 한 해는 아예 보지 못했었다. 그동안 회비는 계속 쌓여 어느덧 꽤 큰 목돈이 되어버렸다. 마흔 되기 전 다 함께 해외여행 떠나자고 다들 어느 정도 자리 잡은 30살부터 시작한 계였다.

5명이 한 달에 3만 원씩. 1년이면 180만 원. 5명 전원이 모일 때만 곗돈에서 지출을 하는 것으로 처음부터 합의를 했던 터라 그동안의 지출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다. 그러다 2020년부터는 만남 자체가 줄어 이제는 5명이 크루즈 여행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이 쌓였는데, 크루즈는 커녕 얼굴 보는 것도 쉽지 않은 요즘이다.

거리두기가 완화되고 추위가 끝나갈 즈음, 오랜만에 단톡방에 메시지가 떴다. 보낸 이는 역시나 수민.

다들 뭐하고 살아? 바빠?

언제나 제일 바쁜 건 자기면서 꼭 이렇게 우리 보고 바쁘냐고 물어본다.


우리는 실제 다 바쁘기도 하고 또 만나서 얼굴을 보며 이야기하는 것을 대화라고 여기는 사람들이라 가끔 수민이 안부 톡을 올려도 각자 띄엄띄엄 단답형으로만 안부를 주고받는다. 그래서 바로 확인을 못하고 몇 시간 뒤에 확인해봐도 쌓인 대화가 그리 많지는 않다.


하지만 만난 지가 너무 오래되었나 보다. 이번에는 수민의 톡이 마중물이 되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기 이야기를 쏟아내느라 카톡 창이 빠르게 올라가는 중이다. 자기 얘기하면서 동시에 다른 얘기에 참견하느라 서로서로 정신없는 와중에 일순간 카톡 안에서 정적이 흘렀다.


효인님이 나갔습니다.


가끔 단체방에서 설정을 바꾸려다 실수로 나가기 버튼을 눌러 본의아니게 나가지는 경우가 있다. 다른 사람이 나갔다면 그런 줄 알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시 초대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효인이다. 효인이는 그런 실수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다들 상황을 파악하려고 잠깐 대화를 멈췄다.


잘못 누른 거겠지? 다시 초대할까? 아님 전화해볼까?


우리 중에 제일 다정한 수민이 먼저 말을 꺼냈다.

잘못 누른 건 아닌 거 같아. 아까부터 효인이는 말이 없었잖아.


우리 중에 제일 분석적인 륜이 말했다.


야, 카톡으로 이러지 말고 우리 만나서 얘기하자. 어때?


우리 중에 제일 촉이 좋은 은재가 말했다.


좋아 좋아~나 니들이 카톡 너무 빨리 쳐서 내 얘기 하나도 못했어. 나 대박사건 있어. 만나자 만나~


우리 중에 제일 가방끈이 긴 유정이 말했다.




그렇게 무려 1년 만에 우리는 만나기로 한 건데, 약속 시간 30분 전에 수민이 못 나온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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