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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졔 Jan 13. 2019

우리의 일상은 발자국을 남긴다

세계 3대 슬럼가 키베라에서 탄소발자국을 지우다

탄소 발자국은 개인이나 단체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발생시키는 온실 기체의 총량을 말한다. 전기나 연료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식재료를 소비하고, 물을 사용하는 데에도 탄소 발자국이 측정된다. 쉽게 말해 의식주를 포함한 일상생활에서 누리는 모든 것들이 탄소 발자국을 내는 행위라고 보면 된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지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에 대하여 자유로울 권리는 없다.  


#세계 3대 슬럼가 키베라, 탄소발자국을 지우기 위한 여정

 한국에서 케냐 나이로비까지 비행거리는 왕복 20,802km이고, 비행 거리를 수치로 환산해보면 1인당 2,704k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게 된다고 한다. 우리는 케냐까지 오면서 배출하게 된 온실가스를 나무 심기를 통해 상쇄시켜 ‘탄소중립’을 실천하기로 했다. 평균적으로 1ha의 숲은 연간 7.5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번 원정을 통해 발생된 2,704kg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상쇄시키기 위해서는 1인당 600그루의 나무를 심어야 한다. 하지만 한 사람당 600그루를 심을 시간이 없었으므로 40여 명의 대원과 총 600그루의 나무를 심게 되었다.


 우리가 탄소중립을 실천 한 곳은 ‘키베라’라는 지역이었다. 키베라는 세게 3대 슬럼가이자 나이로비에서 가장 큰 슬럼가로서, 듣던 대로 생활환경이 매우 열악한 곳이었다. 아이들은 해진 옷을 입고 있고, 마을 곳곳에는 쓰레기 더미가 쌓여있으며, 새까만 웅덩이의 물을 가축들이 마시고 있었다. 슬럼가이니만큼 강도, 강간, 살인 같은 중범죄도 많이 일어났던 지역이라며 버스에서 계속 주의를 받았다. 기분 나빠할 수 있으니 사진도 찍지 말고, 눈도 마주치지 말라고 당부하셨고, 키베라로 들어가는 길에 우리를 보호해줄 군인들도 탔다. 군인들까지 타니 키베라라는 지역이 정말 위험한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조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키베라에 있는 학교와 우리팀 아이들

 키베라에 있는 학교에 도착했다. 아이들이 몰려왔고 우리를 신기한 듯 바라봤다. 온 동네의 아이들이 모인 것 같았다. 우리 팀은 남자아이들만 배정이 되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지? 축구?' 머릿속으로 이야기 주제를 고민하며 마주 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서로의 이름을 소개하는데 우리의 이름을 듣고서는 입술이 들썩인다. 한국 이름을 듣고 웃음을 찾는 아이들이 웃겨서 우리도 웃는다. 친구들의 이름을 들었다. 나도 웃음이 터져 나와서 깔깔 웃는데 나도 뭐가 그리 웃겨서 웃는지 모른다. 그냥 웃음 바이러스가 퍼졌다. 


나무를 심으려는 곳 주변에 쓰레기를 보자. 땅을 파면 쓰레기가 무더기로 나온다.

 한 팀당 배정된 친구들이 있었는데, 배정한 의미가 무색하게 그곳에 있는 모든 아이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나무를 세 개씩만 심어도 600그루의 나무를 심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무가 심을만한 곳이 보이면 땅을 파고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어느새 난 우리 팀에 배정된 남자아이들과 떨어지고 7~10살 사이의 아이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꼬맹이들이 내 손을 잡고 따라오는데 너무 귀여웠다. 조그마한 손으로 땅을 파고 나무를 같이 심었다. 맘이 아팠던 사실은 내가 파는 게 일반적으로 생각했던 땅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땅을 파면 흙 반 쓰레기 반이 나왔다. 비닐은 너무나 많아서 식물이 뿌리를 제대로 내릴 수 있을지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이 쪼매난 나무가 언제 자라 내가 배출한 탄소를 다 해치울까 싶었지만, 부지 죽지 않고 자라서 더 많은 탄소 발자국을 상쇄 키길 바랐다. 

 

집 가는 버스로 돌아가는 길.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 600그루의 나무는 저마다의 추억이 담긴 장소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우리 팀에 배정된 친구들과 먹으려고 한국의 과자와 츄잉캔디를 챙겨갔는데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와서 모두에게 나눠줄 수 없었다. 나와 함께 했던 꼬맹이에게 어떻게 몰래 줄 수 있나 고민했다. 여기서 준다면 형들이나 누나에게 빼앗길게 뻔했으니까. 이미 뭔가를 달라고 하는 아이들을 많이 만났고, 다 나눠주지 못하면 슬퍼하는 아이들이 생길 것이다. 마지막에 헤어지려는 버스를 탈 시점에는 더 많은 아이들이 나를 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와 가까워지기 전에 내 손을 잡고 있던 아이들의 손을 뿌리치고, 빠르게 새콤달콤 세트를 품에 넣어줬다. 고마웠어. 집으로 가, 달려가. 아이는 내 말을 듣자마자 짧은 다리로 어디론가 달려가 버렸다.

다시 올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꼭 다시 올게. 내 스스로와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 미니버스에 올랐다.


(+ 그리고 5년 만인 2017년에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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