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10일 [인천In] 청년칼럼 기고
얼마 전에 경상남도에 놀러 갔다가 음악하는 분을 만났다. 전에 인천 남동구에 산 적이 있다고 해서 인천 얘기를 좀 했다. 인천에 살 때 어땠냐고 물었더니 골똘히 생각하다 어딘가 아련한 눈빛으로 대답하길, 속된 말로 “왜 내가 X 돼 가는 것 같지?” 하는 느낌이었다고. 그런데 정말 왠지 모르게, 사실 많이 공감됐다. 살아보겠다고 열심인데 오히려 죽어가는 기분.
“벌거벗은 방안에서 하루하루 썩어가네
벌거벗은 하루하루 방안에서 썩어가네
빛이여 빛이여
빛이여 오라”
<만수동 사자의 서>라는 제목의 노래 가사다. ‘사자(使者)의 서(書)’란 고대 이집트에서 미라와 함께 넣어둔 파피루스 문서로 인류 최초의 책으로도 알려졌다. 사후 세계의 안내서 역할로 만들어진 문서이다. ‘사자의 서’에는 천국으로 가기 위해 사후 세계를 지나면서 외워야 할 주문들이 적혀있다고 한다. 그런데 <만수동 사자의 서>라니-.
이 무시무시한 음악의 주인공 ‘홍샤인’. 그는 2000년대 중반부터 인천과 서울을 오가며 연주해온 밴드 ‘아나킨 프로젝트’의 멤버로 2007년 아나킨 프로젝트 1집 음반 [우주정복과 베이다와 별과 시], 2014년 2집 [못배우고 가난하다]를 발표했으며, 두 장의 홍샤인 솔로 앨범 이후 지난 5월 17일 솔로 음반 [K-Goth Pop]을 발매했다.
홍샤인은 홍대 씬에서 주로 연주했으나 만수동 영동 감자탕 집에서 자체 디너쇼를 기획해 진행하는 등 보통 홍대 인디씬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여타 언더그라운드 음악인들과 비교해도 확연히 독특한 행보를 보였다.
그는 만수동 사람(MANSURIAN)이다. 항상 스스로 인천 남동구 만수동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니 그의 동네 만수동 얘길 안 할 수가 없겠다. 나는 상인천중학교 출신이라 만수동이 등굣길이었다. 그래서 만수동엔 친구들이 많이 살지만 자주 만나지 못한다. 인천에서도 외진 변두리 동네라는 인상이 있다. 있을 건 다 있고 자급자족하긴 좋은데 왠지 외진 느낌. 아티스트로서 만수동 출신 임을 굳이 강조한다는 건 자발적인 고립이자 독립적인 태도에 대한 천명일 것이다.
그 증거로 지금껏 아나킨 프로젝트와 홍샤인의 음반은 자체 레이블 ‘내방그라운드’와 ‘밴드캠프’ 음원 유통 채널을 통해 다소 한정적인 소통을 해왔으며, 컴필레이션 음반에 참여한 몇곡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음원 스트리밍 유통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이번 홍샤인의 음반 [K-Goth Pop]은 이례적으로 온라인 스트리밍을 통해 발매됐다. 이는 아주 큰 변화로 볼 수 있다. 무엇이 그러한 그의 변화를 초래했을까.
“안녕 친구들아. 어둠에서 돌아온 홍샤인입니다.
그간 보고 겪은 스산한 이야기들을 노래로 풀어볼까 한다.”
그는 음반 소개 글을 통해 어둠에서 돌아왔다고 전한다. 음반을 작업한다는 것,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내놓는 일은 존재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일이다. 처음으로 음원을 스트리밍 하겠다는 결정은 일종의 간절함이 작용했을 것이다. 변두리의 어둠에서 빛을 구하는 간절함. 그래서 그의 음악은 빛을 부르는 주문이 됐다. ‘사자의 서’는 사후 세계를 지나며 외워야 할 주문 안내서이다, 그래서 <만수동 사자의 서>에서 만수동은 죽음의 세계, 곡 자체는 만수동이라는 죽음의 세계를 지날 때 외우는 주문인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사자의 서, 그것은 죽음 이후에서 또 다른 삶이 펼쳐질 거라는 그들의 세계관으로부터 비롯됐다. ‘만수리언’ 홍샤인이 만수동에서 본 죽음의 풍경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가 읊는 사자의 서는 어떤 또 다른 세계를 염원하는 주문이었을까. 이 만수동 방구석 음악이 반가운 건 그것이 만수동을 넘어 수많은 변두리의 세계를 사유하게 했다는 점이다. 홍샤인의 이번 음반 [K-Goth Pop]은 방구석의 어둠까지도 음악을 통해 또 다른 세계를 그리는 소스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