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7일 [인천In] 청년칼럼 기고,
실제 지면에는 "경계인의 운명"이라고 바뀐 제목으로 연재 됐으나, 원제로 업로드 함.
지난 8월, 제15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개최됐다. 이번 제천영화제는 개막 전부터 논란이 많았는데, 217편의 상영작 중 7편이 ‘일본 관련 영화’라는 이유에서였다. 심지어 제천시의회가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등으로 민감한 한일 관계를 고려해 일본영화 상영 취소를 촉구한다’는 성명을 내면서 논란을 키웠다. 결론적으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사무국은 상영을 취소하지 않았다. “순수한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일본의 영화인들이나 그들의 작품에 대해선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국제영화제가 취해야 할 태도라고 생각한다”라는 것이 사무국의 입장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 장률 감독의 영화 <후쿠오카>가 제29회 후쿠오카아시아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상영됐다는 소식이 있었다. 장률 감독의 이전 영화 네 편이 특별상영되기도 했다고 한다. 소식을 전한 언론은 이렇게 적었다. “개막식 이후 3번에 걸쳐 상영된 ‘후쿠오카’는 370석 자리가 매번 거의 모두 찰 정도로 성황을 이뤄, 한·일 양국이 정치·경제적으로 갈등을 빚는 것과 대조를 이뤘다.”. ‘대조를 이뤘다’라는 표현은 장률의 영화, 혹은 <후쿠오카>가 한국의 정서를 대표하는 ‘한국영화’라는 가정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 대목은 얼핏 맞는 말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무슨 말인고 하면, 일단 영화감독 장률의 얘기를 더 해야 할 것 같다.
장률 감독은 재중동포 출신이다. 국적은 중국이며, 실제로 그가 영화를 시작한 토양도 중국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는 초기작들에서 중국 변방의 이미지를 다루지만, 한편으론 한국 자본의 투자를 받기도 했다. <이리>, <풍경>, <경주>, <춘몽> 가장 최근에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까지 근래 개봉한 장률 영화의 토양은 명백히 한국이다.
그렇다면 떠올릴 수 있는 질문들. 후쿠오카에서 상영된 그의 영화들은 한국영화인가, 중국영화인가? 혹은 그는 한국 감독인가, 중국 감독인가? 일본에서 찍었는데 일본영화 아닌가? 아시아 영화제에 초청됐으니 ‘아시아영화’ ‘아시아 감독’이라고 해야 하나?
장률의 시선은 언제나 경계에 머물렀다. 북경 변두리의 조선족 여성, 중국과 몽골 경계의 사막화 지역, 이리역 폭발사고 피해자, 두만강 변의 탈북민들, 한국의 이주노동자들. 그러한 그의 시선은 재중동포라는 그의 출신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후쿠오카>를 볼 기회는 아직 없었지만, 장률 감독의 필모그래피와 전사(前史)를 살폈을 때, 만약 그의 영화가 일본의 영화제에 어떤 정서를 대표해 출품됐다고 하면, 그것은 ‘한국’의 무엇이라고 규정하기 힘든 경계인의 정서, 변방의 정서에 가까운 것이라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이전 영화들이 특별상영 됐다고 하면 더더욱.
그렇다면 우린 다시 질문해야 하지 않나. 장률 감독의 영화가 일본의 영화제에서 흥행한 일이 한·일 양국의 정치 상황과 대조를 이룬다는 표현이 과연 적절한가?
상계동에서 태어나, 미아, 구리 등을 이주해 다니다가 7살 때 인천으로 이주했다. 인천 출신이라고 소개는 하지만, 출생지는 서울이다. 그리고 지금 인천 지역 언론 ‘인천in’에 기고할 칼럼을 작성 중이다. 난 인천 사람인가? 서울 사람인가? 아니, 애초에 그런 게 중요한가?
장률 감독의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30년대에 우리 큰할아버지랑 할아버지랑 만주에 가셨대, 근데 거기서 사시다가, 우리 할아버지는 돌아오고 우리 큰할아버지는 계속 거기서 살았어. 근데 우리 할아버지가 거기서 안 돌아오고 계속 만주에 살았으면, 나도 조선족이네? 이게 다 우연이야 우연.”
생각해 볼 일이다. ‘나는 지금 어떤 우연 가운데 살고 있는가?’ 셀 수도 없이 수많은 우연이 작용하는 이 세계에서 어쩌면 우리는 모두 경계인으로 살아가야 할 운명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내가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사무국의 입장과 대처에 동감하고, 후쿠오카로 날아간 장률 감독의 새로운 영화를 기다리는 이유이다. 한 명의 경계인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