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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권형 Dec 18. 2019

올해만 일본에 3번 다녀 온 이유

 나의 해외 출국 경험은 총 6회다. 태국에 3회, 일본에 3회 이렇게 총 여섯 번 나가봤다. 처음 태국에 간 건 단순히 관광 목적이었고 그때 태국에 이민 가 영화 하시는 제욱이 형을 만났다. 그 이후로 제욱이 형을 뵈러 한 번 더 태국으로 출국했고, 나머지 한 번의 태국행은 너무 갑자기 나온 입영 영장 때문에 급하게 병역을 미루기 위한 출국이었다. 당시 나는 남은 음악 작업과 직장 생활을 멈출 생각이 없었고, 입영일 전에 출국해 3일간 해외에 체류하면 입영일을 미룰 수 있었다.

 당시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병역 미필자는 단수여권만 만들 수가 있다는 사실을 먼저 얘기해야겠다. 문제는 내가 칠칠치 못하게 그걸 깜빡하고 공항까지 옛날 여권을 들고 갔다는 점이다. 부랴부랴 항공편을 다음날로 미루고서 밤새 잠도 못 자고 아침부터 나올지 아닐지 알 수도 없는 긴급여권을 받아보겠다고 허둥지둥 한 적이 있다. 말이 안 되는 스케줄이었기 때문에, 정말 급하게 (아마 살면서 가장 초인적으로) 움직였다.

  

 아무튼, 그때 태국에 잘 다녀와서 이듬해 12월로 입영일을 지정했고, 그동안 직장 계속 다니면서, 동료들과 만들기로 약속한 컴필레이션 [인천의 포크]와 정규 1집 [교회가 있는 풍경]까지 별 탈없이 발매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게 2017년~2018년에 있었던 일이다.

 그러다 또다시 영장이 날아왔다. 이번엔 미룰 수도 없없다. 바뀐 병역법이 적용되면서 연기 조건이 강화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군대로 갈 생각은 없었다. 병역거부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대 초반에는 군대 언제 가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대답하기 귀찮은 질문이므로 대충 둘러대거나, 구라를 쳐서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정말 집요한 인간이 있으면 병역거부 할 거라고 그냥 솔직하게 받아 쳐버렸다. 그럼 그때부터 대의명분을 요구 받기 시작하는데 솔직히 그땐 뭐하러 그런 자릴 버티고 앉아있었나 싶기도 하다. 많은 병역거부자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헤프닝일 것이다.


 그러다 막상 실제로 병역거부를 하려니 불안한 마음이 컸다. 재판에 넘겨질 것이고, 아마 1년 6개월형을 선고 받고 실형을 살다 나올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자고 일어나보니 내용의 문자가 몇 개 와있었다. 공통적인 내용은 ‘다행이다’였다. 이게 뭔 자다가 봉창두드리는...

 SNS에도 뉴스가 쏟아져서 보니 병역법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에 대한 내용이었다. 구체적인 내용이 파악이 안되고 정신이 없었는데, 급하게 소식을 듣고 평화주의 단체 ‘전쟁 없는 세상’ 집회 현장을 찾아갔다. 평화주의 활동가들과 병역거부자 분들이 모여있었고, 헌재 판결에 대해 기념할 부분과 아쉬운 점에 대해 얘기하는 자리가 이어졌다. 친한 사람이 별로 없어서 뻘쭘하기도 하고, 아직 뭐가 뭔지 모르기도 해서 내내 꿈꾸는 기분이었다.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빚지는 기분이라 창피하기도 했다. 어쨌든 뭔가 변했다는 게 조금은 실감났다. 일단 그날의 결정으로 당장 각오하고 있었던 재판과 감옥행은 보류된 것이다. 2019년 12월까지 대체복무역을 포함한 병역법 제정이 확정될 때까지는.


 그리고 이제 2019년 12월이다. 그날 이후, 나는 행정상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인정받아 ‘대체복무역 심사 대기’ 상태로 지냈다. 주변 병역거부자 지인들 중에는 심사 대기까지 인정 못받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나는 음악 활동을 하면서 남은 기록들(언론 기사, 음반 등등)이 유효하게 작용한 게 아닌가 싶다. 양심 스펙이 꽤 괜찮았다고 할까. (하하)

출국 할 때 마다 병무청에 심사를 받고 매번 단수 여권을 만들어야 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런 불편함이 스트레스였는데, 이제 전보다는 무던하게 넘긴다. 몇 년 전처럼 군대 어떡할 거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별로 없고, 다니는 직장이나 음악 작업도 문제 없다. 전엔 왜 병역거부를 생각 하는 것이냐 물으면 괜히 조급해서 거창하게 얘기하곤 했는데, 이제 주저없이 지금의 일상을 지키는 것이 소중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실 그런 질문 하는 사람도 없다. 자문자답이지. 감사하게도 이제는 내가 하루하루 지켜온 것들을 존중해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여섯 번의 해외 출국 경험 중 올 한 해만 3회가 몰려 있는 건 (그동안 일하느라 못 가보다 늦바람 든 것도 물론 있지만) 미필 나이 제한이나, 대체복무역 심사 등으로 내년부터 해외 출국이 가능성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이제 올해가 지나고 나면 뭐가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가능한 나는 계속 노동하고, 동료들과 함께 열심히 다음 음반을 준비할 생각이다. 더 나은 음악을 꿈꾸다 보면, 더 나은 세계에 살고 있지 않을까. 나는 그 말이 그 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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