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콜리 너마저’의 <보편적인 노래>(2008년)
2021년 08월 26일 [인천In] '음악가 이권형의 인천인가요' 기고
2008년쯤엔 밤새 아이팟 클래식에 음악을 담아 학교에 들고 가 그걸 종일 듣는 게 일이었어요. 돌이켜보면 음악 듣기 좋았던 시기였습니다. ‘인디’라는 경향, 분위기는 한창이었고, ‘인디’의 옷을 입은 다양한 음악이 속속 발매됐습니다. 저는 그때 중학생이었는데, 그때부터 한 번쯤은 홍대에 가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당대의 인디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라고 할 수 있겠네요. <보편적인 노래>가 수록된 동명의 음반 [보편적인 노래]는 그 해, 2008년 발매됐습니다.
사실 처음 이 음악을 접했을 땐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딱 잘라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너무 대중적이고, 정갈하고, 그러니까 너무 가요 같은 거예요. 말하자면, 대학가요제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달라진 시기에 언더그라운드에서 나타난 캠퍼스 밴드류의 감성 뭐 그런 거죠. 인디 음악을 찾아 듣던 중학생에겐 그게 너무 평범해서 싫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시간은 흘러, 그게 벌써 13년 전 얘기가 된 지금 그 평범함이 얼마나 특별했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유감스럽게도, 이 음악의 초기 버전은 현재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되고 있지 않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밴드 내부 사정으로 언젠가부터 처음 발매된 버전의 음원 서비스는 중단되고, 2012년 발매된 리메이크 버전의 음반만 유통 중입니다. 원래 버전으로 들으려면 유튜브를 뒤지거나, 기존에 유통된 CD를 구하는 수밖에 없죠. 웃기게도 그 바람에 CD가 귀해져서, 저도 이 음반 구한다고 큰돈 썼습니다. 그건 이 음악의 가치를 공유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는 말이기도 하겠죠. 무엇이 우리에게 이 음반을 가치 있게 하는 걸까요.
<보편적인 노래>는 사랑 노래입니다. 누구에게든 사랑의 기억이란 특별하죠. 그런데 그 특별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조차 슬퍼지는 순간이 있다는 건, 우리 각자의 존재만큼이나 각자의 기억과 경험도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일 겁니다. 나에겐 특별한 그 기억이 사실 그 수많은 사랑의 경험 중 하나였을 뿐이라는 그 사실이 슬픈 게 아닌가요. 기억은 유독 어떤 날, 어떤 때에 갑자기 찾아와서는 묻습니다. 당신에겐 이제 내가 특별하지 않은 거냐고. 잊어버리는 게 상책 같은데, 그건 그렇게까지 찾아온 기억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화자는 그래서 노래하는 게 아닐까요. 그 슬프고 끈질긴 기억에게 줄만 한 게 뻔하고 평범한 ‘보편적인’ 노래뿐이라서.
사랑의 역사는 도도하게 흐릅니다. 그 위에 그저 사소한 감정 같은 걸 던져 봐야 돌아오는 건 없을 겁니다. <보편적인 노래>가 우리에게 가치 있다면, 그것이 거대한 사랑의 역사 속에 그나마 나만의 기억을 정주시킬 한 시절의 상징, 좌표가 되어주기 때문이 아닐까요. 어떤 보편성 위에 각자의 특별함이 새겨진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하나의 ‘보편적인 노래’로 남는다는 것은 사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요. 그리고 이런 것이 대중음악 작업의 멋진 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 여러분 곁엔 어떤 ‘보편적인 노래’가 흐르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위에 어떤 특별한 기억을 새겨 보내고 계신가요.
“보편적인 노래를 너에게 주고 싶어
이건 너무나 평범해서 더 뻔한 노래
어쩌다 우연히 이 노래를 듣는다 해도
서로 모른 채 지나치는 사람들처럼
그때, 그때의 사소한 기분 같은 건
기억조차 나지 않았을 거야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건 너무 슬퍼
사실 아니라고 해도 난 아직 믿고 싶어
너는
이 노래를 듣고서 그때의 마음을
기억할까, 조금은
보편적인 노래가 되어
보편적인 날들이 되어
보편적인 일들이 되어
함께한 시간도 장소도 마음도 기억나지 않는
보편적인 사랑의 노래
보편적인 이별의 노래에
문득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때, 그때의 그때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건 너무 슬퍼
사실 아니라고 해도 난 아직 믿고 싶어
너는
이 노래를 듣고서 그때의 마음을
기억할까, 조금은
보편적인 노래가 되어
보편적인 날들이 되어
보편적인 일들이 되어
함께한 시간도 장소도 마음도 기억나지 않는
보편적인 사랑의 노래
보편적인 이별의 노래에
문득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때, 그때의 그때
그렇게 소중했었던 마음이
이젠 지키지 못할 그런 일들로만 남았어
괜찮아 이제는 그냥 잊어버리자
아무리 아니라 생각을 해보지만
보편적인 노래가 되어
보편적인 날들이 되어
보편적인 일들이 되어
함께한 시간도 장소도 마음도 기억나지 않는
보편적인 사랑의 노래
보편적인 이별의 노래에
문득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때, 그때의 그때”
- ‘브로콜리 너마저’ <보편적인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