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켜야 할 평범함에 관하여
2020년 10월 26일 [인천In] 청년칼럼 기고
추석 연휴를 보내고 상쾌한 마음으로 장을 보고 나오는 길에 카톡 메시지를 하나 받았다. “★병무청 입영일자 결정 안내” 입영일이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고, 아마 이런 상황에선 크게 당황하는 게 일반적이겠지만, 최근에 새 음반을 내놔서 그랬을까, 연휴 때 너무 잘 쉬어서 그랬을까, 의외로 덤덤했다.
그동안, 그러니까, 처음 병역거부하고 수감될 결심을 했을 때부터 병역법이 위헌으로 판결 나서 대체역 대기 심사를 받을 때까지도, 병역거부자에서 대체역 심사 대기자로 인정받아 대기 중이었던 최근까지도 한 치 앞의 상황을 알 수 없었다.
근 몇 년간 쉬지 않고 직장 일과 지속적인 음반 작업을 병행했던 건, 언제 이런 일상이 끊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비롯된 불안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직장에서는 공연히 도마 위에 올랐다가 생길 수 있는 불편함이 신경 쓰여 몸 사리는 일이 잦았고, 음악 활동에 있어선 야심 찬 계획을 생각하기 어려웠다. 해외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건 코로나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은 덤. 병역을 마치면, 내년에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함께 하자는 동료의 말도, 해외여행 가자는 친구의 제안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랬던지, 웃기게도 입영 통보를 받자마자 깊은 안도감이 들면서 생각을 했다. “아, 이제 평범하게 지내보겠구나.”
한 친구는 “군대를 다녀오는 데에 ‘잘’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누구보다 잘 다녀오길 바랄 친구이고, 그래서 그 말을 그냥 넘기기가 어려웠다. 내내 생각하다가 왜 그 표현을 했는지 물었는데 흔히 군대 잘 다녀오라는 말에 ‘잘’이라는 수식어가 왠지 낯설게 느껴졌고, 친구의 입대에 그런 표현을 쓰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넷플릭스를 구독해줬다. 덕분에 기대했던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을 볼 수 있었다. 보건교사 은영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젤리’라는 욕망의 흔적을 볼 수 있고, 그래서 남들을 돕는 운명을 지녔다. 은영의 주변에는 유독 피할 수 없는 운명을 가진 존재들이 많고, 그들에게 은영은 마치 자신의 운명을 바라보듯 말한다. “원래 그런 게 어딨어.”
그날 친구는 왜 그 흔한 ‘잘’이라는 수식어가 그렇게 낯설게 느껴졌을까. 그것에 대해 생각하다가, 또 하루라도 평범하게 살아보길 바라는 은영의 모습을 보다가, 나의 그 이상한 안도감, 그러니까 평범해진다는 생각에 들었던 안도감이 안일하게 느껴졌다. 내가 그동안 당연하게 누린 평범한 일상과 자유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평범함의 바깥에 존재하게 된 이들을 떠올려본다. 은영의 말처럼 원래 그런 건 없으니까.
나는 그동안 밤길을 혼자 걸어도 무서운 줄 몰랐고, 친구와의 약속 장소로 이동할 때 크게 불편한 줄도 몰랐다. 좋아하는 사람과 마음만 먹으면 결혼할 자유도 있었고, 역병에 걸려 역학조사를 받는다고 해도 아웃팅 당할 신상도 없었다.
평범함이란 이름으로 당연히 배제되고 차별받는 존재들에 대해 생각하면서, 사소한 말 한마디도 신경 써서 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데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남들이 그랬던 것처럼 당연한 통과의례를 지나 당연한 듯 평범한 일상을 누리더라도, 이런 친구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만으로 내가 누리는 평범함이 절대 당연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저는 평범한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차별금지법은 평범한 시민들의 역차별법입니다.” 한 인터넷 카페에서 차별금지법에 관한 글의 내용을 봤다. 그가 말하는 평범한 시민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내가 지켜가야 할 평범함의 모습은 어때야 할까.
내가 앞으로도 그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삶은 드라마가 아니지만, 은영의 친구가 은영에게 해준 말처럼,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친구들이 그런 것처럼 “다치지 말고 유쾌하게, 사람들한테 사랑받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