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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권형 Oct 27. 2020

나의 친구들과 <보건교사 안은영>

내가 지켜야 할 평범함에 관하여

2020년 10월 26일 [인천In] 청년칼럼 기고


 추석 연휴를 보내고 상쾌한 마음으로 장을 보고 나오는 길에 카톡 메시지를 하나 받았다. “★병무청 입영일자 결정 안내” 입영일이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고, 아마 이런 상황에선 크게 당황하는 게 일반적이겠지만, 최근에 새 음반을 내놔서 그랬을까, 연휴 때 너무 잘 쉬어서 그랬을까, 의외로 덤덤했다.


 그동안, 그러니까, 처음 병역거부하고 수감될 결심을 했을 때부터 병역법이 위헌으로 판결 나서 대체역 대기 심사를 받을 때까지도, 병역거부자에서 대체역 심사 대기자로 인정받아 대기 중이었던 최근까지도 한 치 앞의 상황을 알 수 없었다.


 근 몇 년간 쉬지 않고 직장 일과 지속적인 음반 작업을 병행했던 건, 언제 이런 일상이 끊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비롯된 불안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직장에서는 공연히 도마 위에 올랐다가 생길 수 있는 불편함이 신경 쓰여 몸 사리는 일이 잦았고, 음악 활동에 있어선 야심 찬 계획을 생각하기 어려웠다. 해외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건 코로나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은 덤. 병역을 마치면, 내년에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함께 하자는 동료의 말도, 해외여행 가자는 친구의 제안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랬던지, 웃기게도 입영 통보를 받자마자 깊은 안도감이 들면서 생각을 했다. “아, 이제 평범하게 지내보겠구나.”


 한 친구는 “군대를 다녀오는 데에 ‘잘’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누구보다 잘 다녀오길 바랄 친구이고, 그래서 그 말을 그냥 넘기기가 어려웠다. 내내 생각하다가 왜 그 표현을 했는지 물었는데 흔히 군대 잘 다녀오라는 말에 ‘잘’이라는 수식어가 왠지 낯설게 느껴졌고, 친구의 입대에 그런 표현을 쓰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넷플릭스를 구독해줬다. 덕분에 기대했던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을 볼 수 있었다. 보건교사 은영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젤리’라는 욕망의 흔적을 볼 수 있고, 그래서 남들을 돕는 운명을 지녔다. 은영의 주변에는 유독 피할 수 없는 운명을 가진 존재들이 많고, 그들에게 은영은 마치 자신의 운명을 바라보듯 말한다. “원래 그런 게 어딨어.”


 그날 친구는 왜 그 흔한 ‘잘’이라는 수식어가 그렇게 낯설게 느껴졌을까. 그것에 대해 생각하다가, 또 하루라도 평범하게 살아보길 바라는 은영의 모습을 보다가, 나의 그 이상한 안도감, 그러니까 평범해진다는 생각에 들었던 안도감이 안일하게 느껴졌다. 내가 그동안 당연하게 누린 평범한 일상과 자유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평범함의 바깥에 존재하게 된 이들을 떠올려본다. 은영의 말처럼 원래 그런 건 없으니까.


 나는 그동안 밤길을 혼자 걸어도 무서운  몰랐고, 친구와의 약속 장소로 이동할  크게 불편한 줄도 몰랐다. 좋아하는 사람과 마음만 먹으면 결혼할 자유도 있었고, 역병에 걸려 역학조사를 받는다고 해도 아웃팅 당할 신상도 없었다.


 평범함이란 이름으로 당연히 배제되고 차별받는 존재들에 대해 생각하면서, 사소한 말 한마디도 신경 써서 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데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남들이 그랬던 것처럼 당연한 통과의례를 지나 당연한 듯 평범한 일상을 누리더라도, 이런 친구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만으로 내가 누리는 평범함이 절대 당연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저는 평범한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차별금지법은 평범한 시민들의 역차별법입니다.” 한 인터넷 카페에서 차별금지법에 관한 글의 내용을 봤다. 그가 말하는 평범한 시민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내가 지켜가야 할 평범함의 모습은 어때야 할까.


 내가 앞으로도 그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삶은 드라마가 아니지만, 은영의 친구가 은영에게 해준 말처럼,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친구들이 그런 것처럼 “다치지 말고 유쾌하게, 사람들한테 사랑받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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