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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권형 Nov 05. 2021

할로윈, “살아있는 게 다 반가워지는 날”

‘이소라’의 <Track 10>(2008년)

2021년 10월 29일 [인천In] '음악가 이권형의 인천인가요' 기고


 여름옷 정리하기 바쁘게 겨울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이제 또 느닷없는 추위에 대비해야겠죠. 그건 아마 고대 켈트(Celt)인들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입니다. 전통 켈틱(Celtic) 축제인 ‘삼하인(Samhain)’은 여름의 종결과 겨울의 시작을 뜻하고 기념한다고 합니다. 여름이 끝나는 10월의 마지막, 한해의 추수를 감사하고 무사히 겨울을 나길 기원하며 제의를 올렸다고 해요. 여름과 겨울, 이승과 저승,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날. 삼하인 축제를 지금은 대중적인 기념일이 된 ‘할로윈’의 유래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합니다.


 할로윈 얘길 꺼낸 건, 오늘 이야기할 곡이 할로윈을 노래하기 때문입니다. 이 곡의 특이한 점이 하나 있는데, 노래에 제목이 없다는 겁니다. ‘이소라’의 일곱 번째 정규 음반 열 번째 수록곡, 그래서 ‘Track 10’으로 표기할 뿐이죠. 청자가 직접 제목을 붙일 수 있게끔 고안된 거라고 합니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건 이소라 7집 음반의 전 트랙이 마찬가지입니다.


 가요 음반치곤 독특한 이소라 7집의 이러한 특징은, 그 안에 알알이 박힌 가요치곤 다소 가라앉은 이미지들과 붙어있습니다. 필자 임의로 나열하자면 - 연인과의 이별(<Track 2>), 외로움과 불안(<Track 5>/<Track 6>), 우울/중독(<Track 7>), 죽은 자에 대한 그리움과 애도(<Track 4>/<Track 8>). 그리고 <Track 9>에서 공연히 세상에 태어난 허무를 노래할 때쯤, 이 곡들이 제목 없이 세상에 던져진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습니다(“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

 초반과 후반 트랙들(<Track 1>, <Track 3>/<Track 12>, <Track 13>)이 대구를 이루며 회귀하는 구조 속에서, <Track 10>이 재생될 땐 음반이 연신 뿜어내던 영기(靈氣)가 묘하게 안착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할로윈’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십니까. 귀신, 유령, 해골, 괴물, 외계인 따위의 ‘공포의 대상’들이 공공연히 거리를 활보하는 풍경이 떠오르지 않나요. 그런데, 할로윈 날 유령이나 외계인으로 이태원이 미어터져도 겁에 질려 발악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것들은 사실, 원초적 공포를 볼만하게 압축한 상징일 뿐이니까요. 사실, 정말 무서운 건 이름도 없을 거예요. 무서워서 쳐다볼 수조차 없을 테니까. 쳐다볼 수 없는, 혹은 쳐다보기도 싫은 무언가를 제대로 이름 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죠. 우리는 낯설고, 그래서 명명할 수 없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이소라 일곱 번째 정규 음반’의 ‘제목 없음’이라는 장치는 우리가 그동안 이름 붙이지 못했던, 그래서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무언가를 들여다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삶의 곳곳에 언제나 존재했지만, 두려워서, 쳐다보기도 싫어서 직면하지 못했던 각자의 마음속 실체를요.


 음반 구성 안에서 <Track 10>이 불러오는 기이한 안식의 정서는 그 안에 녹아있는 축제의 모습과 결을 같이 합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산 자와 죽은 자가 뒤섞이는 ‘삼하인(Samhain)’처럼, 일단 시작되면 직면하기 두려웠던 마음도, 주어진 이름도, 결국엔 자기 존재의 경계마저도 희미해진 채 뒤섞이는 축제의 혼돈스러운 안식 말이죠. 다가오는 할로윈에 무엇이 되어볼지 생각하고 계십니까. 축제가 끝나고 난 뒤에 어떤 존재로서 또다시 살아가길 바라시는지도요. 무엇이든 되어보시길. 어떤 마음이든, 어떤 모습이든, 그 이름이 뭐든 간에 아무 상관 없는, 10월의 끝이니까요. “살아있는 게 다 반가워지는 날”, ‘Happy Halloween’.


  

2008년 발매된, ‘이소라 7집’ 앨범아트. 위와 같은 보라색 커버 외에도 하늘, 초록까지 총 세 가지 색으로 발매됐으며, 수록곡마다 제목이 그림으로 표기된 점이 독특하다.

“할로윈 축제날이야

10월이 가는 날이야

큰 Jack O' Lantern 호박등도

좀 으스스한 분장도 당연한 날


할로윈 축제날이야

환하게 웃는 날이야

Folks Trick or treat 외치면

두 손 가득 달콤한 사탕과 정 넘치는 날     


뛰노는 해골 가면 웃음 속에

불길한 옛 영혼들 뒤섞여 떠도네

썩은 달걀 닮은 기괴한 얼굴의

유령신부 같은 하루


할로윈 축제날이야

새해를 맞는 날이야

먼 옛날 어느 부족들은

여름의 끝인 10월의 끝이 한해 끝이었대


오늘은 잠든 영혼들도 나와

사람들 곁에 잠시 머물다 가는 날

살아있는 게 다 반가워지는 날

여름이 끝난 날

겨울이 물든 날

사랑이 가고 오는 오늘

할로윈

Rest In Peace”

- ‘이소라’ <Track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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