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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권형 Nov 30. 2021

이야기가 멈춘 자리에

‘조동진’의 <차나 한 잔 마시지>(1985년)

2021년 11월 27일 [인천In] '음악가 이권형의 인천인가요' 기고


 스릴러 장르엔 숨죽이고 긴장하게 만드는 장치들이 있습니다. 요즘 같으면 속도감 있는 액션을 먼저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정적을 타고 조여드는 긴장과 불안이야말로 스릴러의 본질에 가까운 정서라고 할 수 있죠. 라디오 방송 중에도 오디오가 5초 이상 비면 방송사고가 되는 것처럼, 정적은 존재감이 강해서 일상에서도 긴장을 유발하곤 합니다.


 대화 도중 음악이 멈추거나 소음의 부재가 의식될 때의 어색함을 느껴본 적 있으신가요. 필자는 말이 많다는 얘길 꽤 들어왔는데, 누군가와 함께 느끼는 정적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편인 탓이 큰 것 같습니다. 어색함을 쉴새 없이 말로 채우다 보면, 공허한 말을 던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땐 분위기를 채울 음악을 찾아보기도 하고, 의도적인 침묵 뒤에 숨어 경직됐던 적도 많습니다. 정적에 취약한 이들은 수다쟁이가 되기 일수예요.


 그리고 ‘기타노 다케시’ 감독 연출작, 영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1992)의 두 주인공을 보면 저와는 대조적입니다. 듣고 말하지 못하는 ‘시게루’, 그리고 항상 그의 곁에 머무는 ‘다카코’ 역시도 말이 없거든요. 카메라는 별다른 개입 없이 시종일관 두 주인공을 관조합니다. 영화를 마주하는 우리는 오롯이 그들의 침묵을 지켜만 봐야 하는 겁니다. 오랜 시간 누군가의 침묵을 지켜보기만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하지만 그래도 그 시간이 견딜만하다면, 그건 음악 감독 ‘히사이시 조’의 사운드트랙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음악이 영화를 보는 우리를 대신해 마음껏 수다쟁이 노릇을 해주는 거죠. 다르게 생각하면, 캐릭터들의 침묵과 그를 바라보는 카메라의 정적이 있었기 때문에 음악이 아름답게 개입할 수 있었던 셈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삶은 영화가 아니고, 여전히 정적이 의식되면서 긴장하곤 할 때면 ‘조동진’ 3집 음반, 특히 (건전가요 트랙을 제외한) 마지막 트랙 <차나 한 잔 마시지>를 찾곤 합니다. 곡의 화자는 음악이 끝난 뒤의 정적과 사연 모를 슬픔을 겪고 말을 잃어가는 친구 곁에서 속절없이 이야기꾼이 되어갔던 경험을 노래합니다. 그리고 이 곡의 탁월함은 이 한 마디에 응축되어 나타납니다. “차나 한 잔 마시지”


 이때 음정에 따라 부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닙니다. 내레이션(Narration), 그저 읊조림이죠. 이때 왠지 결연함이 느껴진다면, 그건 자신의 긴장과 불안까지도 응시하려는 태도의 결연함입니다. 실어(失語)에 빠져가는 친구의 침묵 앞에서, 조여오는 정적 앞에서, 수다쟁이가 되기보다는, 그냥 차 한잔하자고 할 수 있는 여유에서 비롯된 결연함 말이죠. 그리고 장면은 전환됩니다. 침묵 앞에서 전전긍긍했던 화자의 경험담은 이제 멈추고, 남은 곡의 반 이상은 뜻 없는 허밍(Humming)으로 흘러갑니다.


 그러니까, “차나 한 잔 마지시”라는 제안은 일종의 결단입니다. 정적을, 사실은 스스로의 긴장과 불안을 이야기로 채우려는 부질없는 시도를 멈추고 가만히 바라보겠다는 결단이요. 이 곡 <차나 한 잔 마시지>는, 그 잠깐의 결단만이 무시무시한 정적마저 음악으로 바꿔줄 수 있게 해줄 거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멈춘 자리에 비로소 서로의 리듬이 개입하고, 음악이 들리기 시작할 테니까요.


 마침 차 마시기 좋은 계절이네요. 시간이 허락된다면, 좋은 사람과 차 한잔 어떠신가요.


1985년 발매된, '조동진 3집' 앨범아트

“음악은 끝나고 시계소리 슬픔도 지나고 바람소리

방 안에 길게 누운 나의 친구 그는 점점 말이 없어지고

날이 갈수록 말이 없어지고 나의 긴 이야기 종잡을 수 없네

음 차나 한 잔 마시지”

- ‘조동진’ <차나 한 잔 마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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